박삼수 교수
‘왕유시전집’ 낸 박삼수 교수
현존 시 308편 국내 첫 번역
현존 시 308편 국내 첫 번역
왕유(701~761)는 이백(701~762) 두보(712~770)와 함께 중국 당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남종수묵화의 창시자로도 알려졌다. 시와 그림 두 분야에서 우뚝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그는 시불(詩佛)로 불린다. 이백이 시선(詩仙), 두보가 시성(詩聖)이라면 왕유는 시를 짓는 부처라는 존숭의 비유다. 왕유는 인생의 후반기 불가 사상에 깊이 빠져들면서 불교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시에 투영되었다.
자연시에서는 이백, 두보보다 낫고 시가 그림이자, 그림이 시라는 평가를 받아 온 왕유의 시 전편이 우리말로 옮겨져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왕유시전집>(박삼수 역주·현암사). 현존하는 왕유의 시 308편 376수를 모두 담았다. 당나라 3대 시인 가운데 우리말로 된 시 전집 출간은 처음이다. 10여 년 이상 번역 작업에 매달려 온 박삼수 울산대 교수는 왕유 시의 매력을 그의 특이한 삶의 철학에서 찾았다. 역관역은(亦官亦隱)이 그것이다. 몸은 벼슬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다.
왕유는 비록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평생 관료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인생 중반기 당 현종의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그의 고뇌가 시작됐다. 이임보와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의 전횡은 그를 항거와 은둔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흔들어 놓았다. 그는 적극 항거하지도 못하고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지도 못한다. 역관역은은 이런 복잡한 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왕유의 삶은) 도회의 삶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과 닮았습니다.”
고뇌만으로 시가 빛나지는 않을 것이다. “왕유는 고뇌에 찬 삶을 살면서도 비관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고결한 모습을 지켜 냅니다.” 역관역은에 배어 있을 고뇌를 직접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내면세계에서 녹여내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불평불만이 울릴 수 있는 상황에서 안온한 정조가 발산되는 데서 왕유 시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소동파는 왕유의 시 속에 그림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시가 회화적이라는 얘기다. 실제 그의 자연시는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의 소묘라고 할 만하다. ‘붉은 연꽃은 시든 꽃잎을 떨쳐버리는데/저만치 나루터에 밝힌 등불 솟치며’(산장의 경물을 노래하다) ‘붉디붉은 열매는 산 아래에서 살며시 껍질을 열고/맑디맑은 향기는 날씨 차가우며 더욱 짙게 풍기나니’(산수유) 박 교수가 왕유에 빠져든 것도 이런 자연시편 때문이다.
유독 성당(盛唐) 시기 시들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뭘까? “시인들의 예술가적 자질이나 앞선 문학적 전통 이외에 안록산의 난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8년 가까이 계속된 이 난을 겪으면서 당나라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이런 격변의 역사가 이백 두보 왕유의 시정에 녹아들어 예술적 표현으로 조탁되었다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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