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박완서씨
원로작가 박완서씨 ‘남대문 애도의 글’ 화제…‘문화의 힘’ 역설
원로 작가 박완서(77)씨가 불타버린 숭례문을 애도하는 글을 발표했다.
<현대문학> 3월호에 실린 ‘아아, 남대문’이라는 산문에서 박씨는 여덟 살 때 처음 숭례문을 만난 체험과 초기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묘사했던 전쟁통의 숭례문 모습을 소개하면서 숭례문 화재에 비친 우리 사회의 경제제일주의를 비판하고 숭례문으로 상징되는 문화의 가치와 힘을 역설했다. 작가는 이 글에서 숭례문을,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어서 익은 ‘남대문’으로 칭했다.
작가가 숭례문을 처음 만난 것은 고향인 개성에서 처음 서울에 올라온 여덟 살 때였다. 어리숙한 시골뜨기를 놀리는 말로 ‘남대문 입납’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무렵이어서 숭례문이 크고 위압적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실제로 본 숭례문의 모습은 인자하고 편안해 보였다. “남대문의 석축이 그렇게 부드럽고 여성적으로 보였다. 저 문안의 도성이 살 만한 데가 될 것 같은 안도감이 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울 사람이 됐다.”
남대문의 너른 품 안에서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기른 박씨는 늦은 나이에 작가로 등단했으며, 등단 초기인 1974년에 쓴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전쟁통에 피난을 가는 주인공의 눈에 비친 남대문을 이렇게 그렸다.
“눈발은 성기고 가늘어서 길엔 아직 쌓이기 전인데 기왓골과 등에만 살짝 쌓여서 기와의 선이 화선지에 먹물로 그은 것처럼 부드럽게 번져 보이는 게 그지없이 정답기도 했지만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볼 땐 산처럼 거대하고 준엄해 내 옹색한 시야를 압도하고도 넘쳤다.(…)나는 거의 종교적인 경건으로 예배하듯이 남대문을 우러르고 돌아서서 남으로 걸었다. 이상하게도 훨씬 덜 절망스러웠다.”
박씨는 소설 속 주인공의 처지를 빌려서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덜 절망스럽게 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거야말로 바로 문화라는 것의 힘”이라고 강조하면서, 방화범의 범행 동기에서부터 사후 대책을 책임져야 할 고위층들이 입만 열면 내뱉는 “돈, 돈, 돈” 하는 말에서 보이는 경제제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첫머리 중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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