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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국악은 청량음료 아닌 생수”

등록 2008-05-08 18:16수정 2008-05-09 01:00

가야금 명인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국악 대중화 ‘기획자’로 나선 가야금 명인 황병기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야금 줄이 팽팽하게 울었다. 마지막 소리가 물결처럼 잦아들자 300석짜리 작은 공연장에 박수가 울려퍼졌다. 북을 잡고 있던 황병기(72·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선생이 일어나자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다. ‘황병기 명인의 산조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가야금산조 여덟바탕전>이 끝나는 날이었다.

해설 곁들인 ‘엄마와…’ ‘사랑방 음악회’ 호응
20대 위한 양악-국악 섞인 뮤지컬 공연 작업중

“1시간 넘는 산조를 함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 감독의 말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산조는 존재하는 가야금 산조 중에서도 연주시간이 가장 길어 1시간10분이나 된다. 그가 산조의 유래와 특징을 구수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네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설명하듯 편안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객석에선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를 퇴임한 뒤 그는 오히려 더욱 바쁘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대에 오르는 시간도 훨씬 늘었다. 자기 연주 때문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요즘은 해설자로 더욱 이름을 날린다. 지난 4월23일 막을 내린 서울 남산국악당의 ‘가야금 산조 여덟바탕전’을 직접 해설했고, 올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시작한 ‘사랑방 음악회’에서도 정기적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006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맡은 뒤 그는 ‘국악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국악을 들어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를 올해 전면 개편해 대성공을 거두었고, 지난해 시범사업이었던 사랑방 음악회는 올해 상설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당대의 거장이 직접 해설자로 나선다는 점은 당연히 관객들에겐 귀가 솔깃한 소식.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매달 열리는 사랑방 음악회는 늘 만원이다.

거실에도, 방에도 어디를 가나 가야금이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황병기 선생의 자택에는 수십개의 가야금에 온갖 전통악기들과 책들이 빼곡했다. 황 선생은 “백남준 선생 댁은 우리집보다 더 정신이 없어서 소파에도 앉을 자리가 없더라”며 웃었다.
거실에도, 방에도 어디를 가나 가야금이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황병기 선생의 자택에는 수십개의 가야금에 온갖 전통악기들과 책들이 빼곡했다. 황 선생은 “백남준 선생 댁은 우리집보다 더 정신이 없어서 소파에도 앉을 자리가 없더라”며 웃었다.
그는 서양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는 김홍재 울산시향 지휘자에게 국악관현악단 지휘를 맡기고, 첼리스트 장한나와 함께 로비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새로운 변화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기량이 뛰어난 관현악단원들은 독주와 중주를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음악회 등을 통해 따로 선보여 단원들의 사기도 충천했다.


다가가는 만큼 나오는 호응에 힘입어 그는 또다른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뮤지컬 형식으로 양악과 국악이 뒤섞인 “완전히 새로운 연주회”다. 연주자들이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면서 연주도 하는, 한판 뮤직비디오 같은 그런 공연을 지향한다. 장영규, 김만석 등 쟁쟁한 작곡가들이 11월 공연을 목표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대중과의 교류 속에서 훌륭한 전통이 만들어진다고 확신한다. “결국은 전통이 창작이고, 창작이 전통이 됩니다. 아악곡 중 가장 방대한 ‘여민락’만 해도 <세종실록>에 실린 것과 국립국악원이 연주하는 것이 전혀 달라요. 수백년을 통해서 계속 달라져온 거지요. 전통 그냥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하려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음악이에요.”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 작곡자, 전통과 전위를 결합한 현대 예술가, 가야금 명인, 그리고 교육자, 이제는 기획자까지…. 그의 모습 중 어느 것이 가장 자신과 가까운지 물었다. “결과적으로는 음악계에 보탬이 된 것은 작곡이 아닐까 싶어요.” 그는 고심 끝에 대답했다.

<미궁> 같은 전위적 작품들을 선보였기 때문에 그는 전통보다는 퓨전에 가깝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흔히 알려진 퓨전, 크로스오버 음악과 자신의 음악은 별개라고 말한다. “퓨전, 크로스오버, 물론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결과적으로 편곡적인 면에서 변화를 준 것이지 퓨전 가야금 곡을 쓰려 한 것은 별로 없어요. 국악의 세계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국악은 원래 세계인이 국경을 초월해서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그 예로 1974년 작곡한 <침향무>를 유럽 각국에서 연주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세계와 통할 음악을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 한국적이면서 크게는 범아시아적인 곡을 만들고 싶어 지은 것이 <침향무>였는데 예상밖으로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파리 공연 마지막날 소설 <25시>의 작가인 게오르규가 공연이 끝나고 찾아와 <침향무>에 너무나 감동했다고 전해주고 갔을 정도였다.

그가 생각하는 국악 대중화의 의미를 물었다. “여러 음료수 회사들이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맛을 개발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찾습니다. 우리에겐 우리 국악이 그런 맛이라고 봐요. 나는 순수한 물을 더욱 많이 마실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거고요.” 그는 그런 음악이 나오면 대중들은 분명 알아보고 사랑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대중들이 저보다 더 높은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음악을 대중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휘말리지 말고, 자신만의 예술적 경지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히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글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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