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사회란 ‘창간목표’ 유효
사익 도구화한 신문폐해 문제제기
‘사상의 게릴라전’ 다시 펼칠 것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가장 ‘불온했던’ 저항매체로 꼽을 수 있는 <씨

의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죽하면 이 잡지를 발행하는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이사장 이문영)의 편집장 김영호(66·위 사진) 인하대 교수(철학)가 2008년 5·6월호에 “(그 잡지) 아직도 나옵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글을 썼을까. 게다가 그 글의 제목은 ‘<씨

의 소리>를 아직도 내야 하나’였다.
물론 <씨

의 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고, 또 앞으로도 당연히 나와야 한다. 더욱이 “시대 변화에 맞춰 체제와 내용을 일신해서 더 힘차게 재출발하겠다”는 사뭇 전투적인 의욕까지 보이고 있다.
<씨

의 소리>가 이번 5·6월호로 창간 38년 만의 200호, 그리고 복간 20년 기념호를 맞았다. 여기에 ‘혁신호’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김 편집장은 “지금까지는 2000부를 찍어 600여 회원들 중심으로 배포했다. 일반 시판도 했지만 책이 깔린 곳은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몇 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엔 일단 3000권을 찍었고 홍보와 판매 쪽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진 90~100쪽 정도 분량에 값은 권당 2000원이었으나 이번 호는 250쪽 분량에 값을 5000원으로 매겼다.
지난 10일 발행된 이후 반응은? “굉장히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침내 <씨

의 소리> 르네상스가 오나, 하는 기대들을 나타냈다.” 그러나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는 쪽은 바로 김 편집장 등 잡지 관계자들이 아닐까.
“<씨

의 소리>가 애초 내걸었던 사회 비판, 정신 변혁의 목표가 제도적 민주화만은 아니었다. 우리 목표는 인간다운 사회로의 진화였다. 그게 달성됐나? 아니다. <씨

의 소리>는 일간지나 다른 잡지들이 해낼 수 없는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체계적으로 해낼 것이다. 그게 존재 이유다.”
지난해 12월 씨

사상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흡수 통합한 함석헌씨

사상연구원 원장직(자동으로 잡지 편집장이 된다)을 떠맡은 김 편집장은 그러면서 이 잡지를 만든 함석헌이 ‘헌법’이라 불렀고 자신은 ‘헌장’이라 칭한 8개항의 창간 신조 ‘우리가 내세우는 것’을 인용했다. 그중 여섯번째는 이렇다.
“씨

은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압니다.”
함석헌은 ‘왜 <씨

의 소리>를 내나’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 창간 이유로 제구실을 하지 않는 언론을 들었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교회·극장·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사실 옛날 예수·공자·석가가 섰던 자리에 오늘날의 신문이 서 있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신문입니다.” 신문이 강도의 앞잡이였던 시대에 <씨

의 소리>로 강도들을 쳐부수는 “사상의 게릴라전을 펼치자”고 그는 외쳤다. 김 편집장은 그때로부터 38년이 지나 쓴 ‘<씨

의 소리>를 아직도 내야 하나’에서 시대 사정이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언론 자유가 더할 수 없이 신장됐다면서도 “소수 신문과 인터넷 매체, 일부 방송을 제외하고는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한 족벌신문 매체들이 자유와 더불어 수반되는 공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익의 도구로 전락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했음에도 사회여론 주도매체는 여전히 “자신들의 사익에만 몰두하는 보수 일간지들”이라고 본다.
1970년 4월19일 창간된 <씨

의 소리>는 그해 5월31일 잡지 등록취소 통보를 받았으나 71년 7월 13개월여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복간했다. 80년 신군부의 쿠데타 뒤엔 88년 12월까지 무려 8년여를 강제 폐간당했다. 민주화 이후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잡지는 91년 4월부터 휴간에 들어갔고 94년 11월부터 98년 12월까지는 <씨

마당>이라는 제호의 회원지 형식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이제 다시 혁신된 <씨

의 소리>가 지배적 매체와 주류 가치에 대한 ‘사상의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공익 정신에 충실한 시대의 양심, 각계각층 씨
100인의 필자를 새로 모시고” 160~200쪽 분량을 유지하면서 “물신숭배와 사익에 찌든 세상을 뒤엎겠다던 함석헌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김 편집장은 다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