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북쪽의 ‘798 예술구’ 간판(오른쪽)과 거리의 조각상. 베이징/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중 현대미술 요람+올림픽 특수 ‘톡톡’
한때 군수공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베이징 동북쪽의 ‘798 예술구’. 지금은 중국 현대 미술의 최전선으로 변신한 이곳에 올림픽 바람이 거세다.
14일 아침 798 예술구에 있는 ‘스위스 하우스’ 입구에 긴 줄이 늘어섰다. 대학생들, 손자 손을 잡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들 즐거운 표정이다. 스위스 정부가 올림픽을 맞아 자국 문화와 기업들을 알리려고 지난 1일 문을 연 이곳은 이미 7만명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올림픽의 주요 명소가 됐다.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정부 홍보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는 첨단 문화와 미술의 거리로 유명한 798 예술구에 둥지를 마련했고, 신선한 발상이 적중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장정(20)은 “올림픽을 맞아 왔는데 자유롭고 쿨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가 가끔 이곳에 온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798 예술구가 자리한 곳은 원래 중국의 첫 원자폭탄과 인공위성 부품을 만들던 군수공장들이 즐비했었다. 하지만 90년대 산업 재조정으로 줄줄이 문을 닫았고, 싼 작업장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을씨년스러운 폐공장들에 몰려들었다. 이제는 300여 개의 화랑이 들어선 중국 현대 작가들의 요람이다. 최근 중국 미술가들의 작품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이곳은 서구인들이 베이징에서 자금성과 만리장성 다음으로 가고 싶어하는 명소가 됐다.
베이징 올림픽 열기는 ‘798’에 또 한 차례의 ‘진화’ 기회를 선사하고 있다. 올림픽 기간에 103개의 전시회가 열리고, 복잡한 골목을 따라 서양 관광객과 중국인들이 새로운 예술을 만나는 즐거움에 빠져 발길을 재촉한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올림픽 6대 여행 중점지역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798’은 중국인들이 올림픽을 통해 세계를 향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새 중국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곳이다.
뉴욕의 유서 깊은 화랑인 페이스윌덴스타인 갤러리가 올림픽을 맞아 지난 2일 옛 화약공장 건물을 개조한 ‘페이스 베이징 갤러리’를 개관한 것도 화제다. 이곳 관장이자 중국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큐레이터인 렁린은 “세계 미술계에서 중국 작가들은 매우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 갤러리도 그런 흐름에 함께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며 “특히 올림픽을 맞아 세계에서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예술의 새로운 모습을 알리고 싶어 올림픽에 맞춰 개관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798’에는 이제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없다. 이곳이 유명해지자 임대료가 폭등했고, 예술가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베이징 외곽으로 흩어졌다. ‘798’은 현대 중국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베이징/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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