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서 ‘대한민국사의 재인식’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토론회
뉴라이트 건국론은 헌법 아닌 보안법에 뿌리
이승만 국부 추앙 국가폭력·식민지배 정당화 ‘건국 60년 행사’는 끝났지만, ‘건국 논쟁’은 계속된다. 지난 18일 참여사회연구소와 의제27, 코리아연구원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건국’이라는 용어 아래에 깔려 있는 현대사 인식 문제에 대해 민주개혁 진영이 본격적인 학술토론회를 열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병천 강원대 교수)에서 비롯한 자리였다. 그동안 역사학자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는데, 이날은 정치학·사회학·법학 등을 전공한 사회과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건국 담론’이 역사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확장되는 형국을 웅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 뉴라이트의 장기 기획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건국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법적·정치적·윤리적 정의가 무엇인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이며 누구이고자 하는지 등을 다투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물음에 대해 뉴라이트 진영이 내놓은 답은 ‘자랑스런 반공주의 대한민국’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뉴라이트가 회복하겠다고 아우성치는 국가 정체성은 1948년의 제헌헌법 정신이 아니라 초헌법적 국가보안법이 지배했던 1949년의 반공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뒤, 한 해 동안만 132개의 정당·사회단체를 해산시키고 11만8621명을 검거·투옥했다.
■ 국가 폭력의 정당화
그런 이승만을 왜 ‘국부’로 추앙하려는 것일까.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국부’라는 말은 국가를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최고 통치자가 국민의 생존 여부까지 결단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이승만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며 “저항 가능성이 있는 대중 전체를 목표 삼아 반공을 신념화하지 않은 사람들을 국민의 범주에서 추방하고 죽였다”고 말했다. 결국 이승만의 복권은 “저항하는 국민을 적으로 상정하는 국가 폭력”을 당연시하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병천 교수(경제학)는 “공산독재와 자유대한이라는 이분법적 구호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국가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기억을 국민들이 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일본 역사 도발에 빌미 제공
건국 담론은 대외정책에도 악영향을 준다. 서희경 진실화해위원회 팀장은 “일본은 1910년의 한일합방이 합법적이고, 그 시기 한국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는 일본제국이었으며,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생겨난 신생국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건국 담론이 일제 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잇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제 강점기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이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률은 헌법적 근거를 상실한다”고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가 말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역사학)는 “‘건국 60년’을 정부가 인정하면, 191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이 한반도 전체를 합법적으로 통치했다는 논리가 되고 이는 독도 문제 등 최근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도발에 한국 정부 스스로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 임정 강조론도 지양해야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주장을 넘어서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역사학)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는지, 이승만에 있는지를 따지는 논쟁에만 집중하면, 다른 독립운동 세력을 배제하면서 결국 뉴라이트 진영이 목적하고 있는 ‘국가 정통성’ 강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정치학)도 “임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최근의 건국 논쟁을 ‘민족주의 대 반공주의’ 논란으로 좁히는 것”이라며 “갈등적 가치·이념이 제도적 합의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관리되는 민주주의적 국민국가 형성”을 잣대 삼아 해방정국을 돌아볼 것을 제안했다. ■ 제헌헌법을 탈환하자 1948년 8월15일로부터 이승만이 아니라 제헌헌법을 재발굴하자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선언에 그쳤던 제헌헌법의 민주공화국 이념을 친일파 민족 반역자에게 탈취당했고, 이를 되찾는 장기 과정이 바로 민주화였다.”(한홍구 교수) “뉴라이트의 건국 담론은 해방정국의 보수 세력이 만든 제헌헌법의 내용까지 왜곡·날조하고 있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함께 품고 있는 제헌헌법의 국가 정체성을 민주개혁세력이 탈환해야 한다.”(이병천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현행 헌법은 국가 정체성을 3·1 운동과 4·19 혁명에서 찾고 있는데, 두 사건 모두 현존하는 ‘불완전한 국가’를 국민주권의 힘으로 끊임없이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데 핵심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헌법정신”이라고 말했다. 임지봉 교수는 “권력독점·경찰기구에 의한 테러·세계관의 절대주의가 횡행하는 전제국이 아니라, 국민주권·권력분립·법치주의·세계관의 상대주의 등이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현행 헌법인 만큼, 이를 위해 정부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건국 기념’보다 훨씬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이승만 국부 추앙 국가폭력·식민지배 정당화 ‘건국 60년 행사’는 끝났지만, ‘건국 논쟁’은 계속된다. 지난 18일 참여사회연구소와 의제27, 코리아연구원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건국’이라는 용어 아래에 깔려 있는 현대사 인식 문제에 대해 민주개혁 진영이 본격적인 학술토론회를 열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병천 강원대 교수)에서 비롯한 자리였다. 그동안 역사학자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는데, 이날은 정치학·사회학·법학 등을 전공한 사회과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건국 담론’이 역사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확장되는 형국을 웅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건국 담론은 대외정책에도 악영향을 준다. 서희경 진실화해위원회 팀장은 “일본은 1910년의 한일합방이 합법적이고, 그 시기 한국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는 일본제국이었으며,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생겨난 신생국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건국 담론이 일제 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잇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제 강점기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이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률은 헌법적 근거를 상실한다”고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가 말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역사학)는 “‘건국 60년’을 정부가 인정하면, 191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이 한반도 전체를 합법적으로 통치했다는 논리가 되고 이는 독도 문제 등 최근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도발에 한국 정부 스스로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 임정 강조론도 지양해야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주장을 넘어서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역사학)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는지, 이승만에 있는지를 따지는 논쟁에만 집중하면, 다른 독립운동 세력을 배제하면서 결국 뉴라이트 진영이 목적하고 있는 ‘국가 정통성’ 강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정치학)도 “임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최근의 건국 논쟁을 ‘민족주의 대 반공주의’ 논란으로 좁히는 것”이라며 “갈등적 가치·이념이 제도적 합의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관리되는 민주주의적 국민국가 형성”을 잣대 삼아 해방정국을 돌아볼 것을 제안했다. ■ 제헌헌법을 탈환하자 1948년 8월15일로부터 이승만이 아니라 제헌헌법을 재발굴하자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선언에 그쳤던 제헌헌법의 민주공화국 이념을 친일파 민족 반역자에게 탈취당했고, 이를 되찾는 장기 과정이 바로 민주화였다.”(한홍구 교수) “뉴라이트의 건국 담론은 해방정국의 보수 세력이 만든 제헌헌법의 내용까지 왜곡·날조하고 있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함께 품고 있는 제헌헌법의 국가 정체성을 민주개혁세력이 탈환해야 한다.”(이병천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현행 헌법은 국가 정체성을 3·1 운동과 4·19 혁명에서 찾고 있는데, 두 사건 모두 현존하는 ‘불완전한 국가’를 국민주권의 힘으로 끊임없이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데 핵심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헌법정신”이라고 말했다. 임지봉 교수는 “권력독점·경찰기구에 의한 테러·세계관의 절대주의가 횡행하는 전제국이 아니라, 국민주권·권력분립·법치주의·세계관의 상대주의 등이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현행 헌법인 만큼, 이를 위해 정부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건국 기념’보다 훨씬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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