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75·사진)
등단 50돌 기념시집 ‘허공’ 출간한 고은
“시의 신도로 광기의 여생 살고파”
중등때 손 놓은 그림전도 4일부터 원로 시인 고은(75·사진)씨가 올해로 등단 50돌을 맞았다. 그는 1958년 <현대시> 1집에 시 ‘폐결핵’이 발표된 데 이어 같은 해 <현대문학> 11월호에 서정주의 단회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어언 반세기에 이른 문단 경력을 기념하고자 시인은 신작 시집 <허공>(창비)을 출간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씨를 선보이는 전시회 ‘동사를 그리다’를 마련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집을 낼 때마다 이제 방금 시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의 미래가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후기의 삶이라는 것이 전반기에 대한 결산이나 해답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충분히 산 나머지 원만해진 인간의 금도나 유지하면서 내 삶이 잠들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광기와 화염을 아우르는 나머지 생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1일 낮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은 시인은 세월이 지나도 늙거나 시들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과시했다. 그는 “나에게 근대시 100년은 역사가 아니라 자유였다”며 “언어는 나의 집이 아니라 전혀 낯선 세계이며, 모국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새로운 외국어”라고 선언했다. “오늘도 가갸거겨의 무기수 감방에서/ 하루를 중얼중얼 보냈구나/ 취침나팔/ 잠들어라/ 가갸거겨도 잠들어라”(‘어느 시론(詩論)’ 부분) “젊은이는 늙은젊은이이지/ 가까운은 먼가까운이지/ 안은 밖안이지 안팎이지//(…)// 죽어야 하지/ 아니 살아죽어야 하지/ 죽어살지// 그래서 고왕조 소년 파라오가 미라 사천세나 처먹었지/ 어휴 이 늙은젊은이”(‘테베에서’ 부분) 신작시 107편을 한데 묶은 새 시집에서도 고은 시 특유의 비약과 전복, 생략과 직관의 힘은 여전하다. 시인 자신은 시집 제목에 별 뜻을 담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가령 ‘허공에 쓴다’와 같은 작품은 부단한 갱신과 신생에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로부터 내 어이없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 맨몸/ 맨넋으로 쓴다/ 허공에 쓴다// 이로부터 내 문자들 버리고/ 허공에 소리친다/ 허공에 대고/ 설미쳐 날궂이한다”(‘허공에 쓴다’ 부분)
한편 시인은 오는 4~12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 그림전에 아크릴화 37점과 글씨 19점을 선보인다. “교내전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4학년 때 한국전쟁이 나면서 제 수채화는 끝이 났습니다. 한때는 책상 위에 ‘고흐 아니면 무(無)다’라는 쪽지를 붙여 놓기도 했지만, 전쟁 뒤에 제가 살아남은 장소는 폐허였습니다. 요컨대 그림의 세계에서는 너무 멀리 떠내려가 있었죠.” 그래도 <이중섭 평전>을 쓰고 변종하·박고석·천경자 등 화가들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미술에 문외한은 아니었다”고 시인은 덧붙였다.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여름, 평택에 사는 조각가 구성호씨의 작업실을 빌려서 17일 동안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은 작지 않은 화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강렬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은 매우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새삼스럽게 그 여백의 깊이 같은 것에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내면의 경험을 했습니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같은 문인화적 여기(餘技), 노련한 결말의 세계는 감히 사양하고 싶어요.” 시인은 “경제를 좇으면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라며 문단 일각에 스며든 경제주의와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시가 멀어졌느니 죽었느니 하는 말도 있는데, 시의 죽음은 새로운 시의 부활에 닿아 있는 것”이라며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한 시의 신도로서 새로운 시의 생활을 살 결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중등때 손 놓은 그림전도 4일부터 원로 시인 고은(75·사진)씨가 올해로 등단 50돌을 맞았다. 그는 1958년 <현대시> 1집에 시 ‘폐결핵’이 발표된 데 이어 같은 해 <현대문학> 11월호에 서정주의 단회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어언 반세기에 이른 문단 경력을 기념하고자 시인은 신작 시집 <허공>(창비)을 출간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씨를 선보이는 전시회 ‘동사를 그리다’를 마련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집을 낼 때마다 이제 방금 시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의 미래가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후기의 삶이라는 것이 전반기에 대한 결산이나 해답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충분히 산 나머지 원만해진 인간의 금도나 유지하면서 내 삶이 잠들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광기와 화염을 아우르는 나머지 생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1일 낮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은 시인은 세월이 지나도 늙거나 시들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과시했다. 그는 “나에게 근대시 100년은 역사가 아니라 자유였다”며 “언어는 나의 집이 아니라 전혀 낯선 세계이며, 모국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새로운 외국어”라고 선언했다. “오늘도 가갸거겨의 무기수 감방에서/ 하루를 중얼중얼 보냈구나/ 취침나팔/ 잠들어라/ 가갸거겨도 잠들어라”(‘어느 시론(詩論)’ 부분) “젊은이는 늙은젊은이이지/ 가까운은 먼가까운이지/ 안은 밖안이지 안팎이지//(…)// 죽어야 하지/ 아니 살아죽어야 하지/ 죽어살지// 그래서 고왕조 소년 파라오가 미라 사천세나 처먹었지/ 어휴 이 늙은젊은이”(‘테베에서’ 부분) 신작시 107편을 한데 묶은 새 시집에서도 고은 시 특유의 비약과 전복, 생략과 직관의 힘은 여전하다. 시인 자신은 시집 제목에 별 뜻을 담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가령 ‘허공에 쓴다’와 같은 작품은 부단한 갱신과 신생에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로부터 내 어이없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 맨몸/ 맨넋으로 쓴다/ 허공에 쓴다// 이로부터 내 문자들 버리고/ 허공에 소리친다/ 허공에 대고/ 설미쳐 날궂이한다”(‘허공에 쓴다’ 부분)
한편 시인은 오는 4~12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 그림전에 아크릴화 37점과 글씨 19점을 선보인다. “교내전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4학년 때 한국전쟁이 나면서 제 수채화는 끝이 났습니다. 한때는 책상 위에 ‘고흐 아니면 무(無)다’라는 쪽지를 붙여 놓기도 했지만, 전쟁 뒤에 제가 살아남은 장소는 폐허였습니다. 요컨대 그림의 세계에서는 너무 멀리 떠내려가 있었죠.” 그래도 <이중섭 평전>을 쓰고 변종하·박고석·천경자 등 화가들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미술에 문외한은 아니었다”고 시인은 덧붙였다.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여름, 평택에 사는 조각가 구성호씨의 작업실을 빌려서 17일 동안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은 작지 않은 화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강렬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은 매우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새삼스럽게 그 여백의 깊이 같은 것에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내면의 경험을 했습니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같은 문인화적 여기(餘技), 노련한 결말의 세계는 감히 사양하고 싶어요.” 시인은 “경제를 좇으면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라며 문단 일각에 스며든 경제주의와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시가 멀어졌느니 죽었느니 하는 말도 있는데, 시의 죽음은 새로운 시의 부활에 닿아 있는 것”이라며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한 시의 신도로서 새로운 시의 생활을 살 결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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