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오른쪽)씨가 동료 화가 조권능(왼쪽)씨와 함께 자신들이 그리고 있는 벽화 앞에서 웃고 있다.
2002년 참사 개복동, 예술공간으로 ‘꿈틀’
미술인 이상훈씨 벽화부터…‘동지’들 가세
미술인 이상훈씨 벽화부터…‘동지’들 가세
“지금은 초라한 거리지만, 예술인들이 힘을 합치면 꼭 살아 숨쉬는 예술의 거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느린 걸음으로 하나씩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2002년 1월29일 낮 11시50분께 전북 군산시 개복동 7-13, 대가·아방궁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나서 갇혀 지내던 접대원 여성 14명이 희생됐다. 그 뒤 화재 현장 주변은 거의 방치된 상태가 됐고, 상권이 쇠퇴해 을씨년스럽게 변해 버렸다.
이곳에서 문화가 있는 ‘예술의 거리’를 꿈꾸는 미술인이 있다. 비디오와 사진 등을 전공한 군산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이상훈(37)씨.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을 독일 드레스덴 예술대학에서 유학한 그는 지난 2월부터 예술촌 건설을 꿈꾸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카페와 전시관으로 가득 찬 예술공간으로 바꾼 베를린의 쇼이네 거리처럼, 이곳을 예술공간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한상숙, 조권능씨 등 4명이 작업공간을 잇달아 이곳에 열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로 ‘예술의 거리’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일부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 외지에 사는 건물주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고, 낙후된 건물의 개·보수 비용과 작업도 만만찮은 걸림돌이다. 행정기관에서도 관심은 있지만, 거리와 가로등 정비 등을 일정한 기준 없이 지원해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상주 예술인이 10명을 넘어 가시적 움직임이 보여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씨 일행은 우선 허용되는 공간부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기한을 정하지 않고 게릴라전을 치르듯,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 이해 부족으로 벽화 그리기를 허락한 건물주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이씨는 최근 자신의 작업장 입구 상점 벽에 파랑새를 그려 발전과 희망을 기원했다. 7일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미대 학생들까지 참여해 또다른 벽화작업을 도왔다. 벽화를 그린다고 하자 동사무소에서는 물감 전량을 대주기로 약속했다. 이런 뜻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한국미술협회 군산지부 회원 30명이 참여해 20일까지 이곳에서 예술의 거리 전시회도 연다.
“아직도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처지에 무모하게 겁없이 덤벼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이씨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개복동 예술의 거리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365일 전시와 음악 공연이 펼쳐지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군산/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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