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경복궁팀 팀원들이 지난해 말 제자리에 복원한 광화문 석축 홍예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최맹식 유적조사실장, 최인화·이인숙 학예사, 신희권 학예관. 아래 사진은 광화문터 옆 해태상을 살피는 팀원들.
[2009 문화현장] 이곳을 주목하라
④ 문화재연구소 경복궁팀
④ 문화재연구소 경복궁팀
“아, 드디어 아치문이 섰네요! 이젠 정말 옛 광화문 모습이….”
모두들 환상 같다고 했다. 눈앞의 큰 덧집 안에 돌로 만든 아치형 무지개문(홍예문) 3개가 장중하게 서 있었다. 임금과 문무 신하들이 지나던 본디 길목에 터 박은 광화문 석축과 세 개의 문. 이 문들이 제자리 서기까지 얼마나 숱한 파란이 있었던가.
지난 6일 낮 광화문터 들머리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경복궁팀’은 감회 어린 얼굴로 석축 위 아래를 훑어 내렸다. 콘크리트 광화문을 헐어 낸 2007년 여름부터 복원에 앞서 터를 발굴하며 동고동락해 온 최맹식(52) 유적조사실장, 신희권(39) 학예연구관, 이인숙(30)·최인화(28) 연구사. 네 사람은 문 옆의 해태상 비늘을 매만지며 “이제야 새해 덕담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표정을 편다. 2년여 동안 광화문터를 발굴·조사하며 환희와 불안, 기대감에 휩싸였던 그들 앞에 올해는 어떤 땅 속 결실들이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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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복원 2년째 발굴작업 구슬땀
서쪽 담장·어구·연지 발굴 새 과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장기계획 필요” “저 당당한 홍예문처럼 발굴도 의연히 가야죠. 다만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마지막 해라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게….” 풍납토성 성벽 발굴로 이름이 알려진 신희권 연구관이 말꼬리를 흐린다. 올 연말 광화문 얼개 복원이 얼추 마무리되고, 내년 연말까지 부근 일대 복원이 끝나는 일정 탓에 발굴도 ‘군사작전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지 않다. 옛 기와가 전공인 이인숙 연구사도 “복원을 전제로 한 대형 발굴이다보니 항상 시간과 여론을 의식한다”며 “마음 한구석에 늘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남은 발굴감들은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까지 광화문~동십자각의 문 동쪽 담장터를 찾아냈고, 올해는 일제 때 효자동길 차도를 닦는 과정에서 사라진 궁 남서 모퉁이 서십자각터까지의 서쪽 담장이 주된 조사 대상이다. 여기에 광화문 남쪽 담장 밑 수문을 거쳐 궁궐 근정전 내부 금천교로 이어졌던 내부 물길인 ‘어구’와 그 어귀의 작은 연못 ‘연지’를 발굴하는 것도 과제다. 서십자각의 경우 전찻길 부설 등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정확한 위치 찾기와 전각, 연결담장 복원이 민감한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경복궁 유적 발굴사업은 올해로 벌써 20년째입니다. 1990년 침전 발굴을 시작으로 사극 <대장금>의 실제 무대였던 궁내 소주방터와 태원전, 흥복전, 함화당터 등의 발굴을 통해 궁궐 내 건물 배치 구조의 실체를 상당 부분 파악했지요. 그럼에도 이런 학술적 성과가 잘 알려지지 않아, 일반인들에게는 현판 교체 논란 등을 낳은 광화문 권역이 발굴의 마무리가 아닌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신희권)
곡절은 있었지만, 2007년 여름 시작된 광화문터와 부근 발굴은 고고학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통일신라 후대의 유적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던 학계에 조선시대 고고학의 지평이 열렸다. 특히 2007년 9~10월 발굴한 원래 광화문터와 월대(고급 건축물 앞의 조망시설) 유적의 발견은 파장이 컸다. 고종 때 중건한 문터는 물론, 그와 거의 규모가 같은 14세기 태조 때의 문터가 훨씬 양호한 상태로 드러난 것이다. 이인숙 학예사는 “무엇이든 파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고고학적 진리를 새삼 깨달은 체험이었다”며 “조선시대 유적 발굴에 대한 문헌사학계의 인식도 바뀐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화문은 올 4월 석축 위 목조 누각 공사를 시작해 12월께 복원된 전체 윤곽이 드러난다. 주변 담장과 시설물까지 포괄한 문 일대의 일반 공개는 내년 12월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일정에 치이면서도 실록 등 사서에 전해지는 내용과 발굴 성과를 맞춰보는 ‘짜릿한 재미’로 살았다는 팀원들. 그들에겐 광화문 복원 못지 않게 간절한 희망이 하나 더 있다.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발굴하지 않기를 바래요. 20년 이상의 장기 조사 계획을 세워야죠. 복원 시점에 쫓겨 작전하듯 발굴하는 관행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기를….”(최인화)
글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서쪽 담장·어구·연지 발굴 새 과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장기계획 필요” “저 당당한 홍예문처럼 발굴도 의연히 가야죠. 다만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마지막 해라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게….” 풍납토성 성벽 발굴로 이름이 알려진 신희권 연구관이 말꼬리를 흐린다. 올 연말 광화문 얼개 복원이 얼추 마무리되고, 내년 연말까지 부근 일대 복원이 끝나는 일정 탓에 발굴도 ‘군사작전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지 않다. 옛 기와가 전공인 이인숙 연구사도 “복원을 전제로 한 대형 발굴이다보니 항상 시간과 여론을 의식한다”며 “마음 한구석에 늘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남은 발굴감들은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까지 광화문~동십자각의 문 동쪽 담장터를 찾아냈고, 올해는 일제 때 효자동길 차도를 닦는 과정에서 사라진 궁 남서 모퉁이 서십자각터까지의 서쪽 담장이 주된 조사 대상이다. 여기에 광화문 남쪽 담장 밑 수문을 거쳐 궁궐 근정전 내부 금천교로 이어졌던 내부 물길인 ‘어구’와 그 어귀의 작은 연못 ‘연지’를 발굴하는 것도 과제다. 서십자각의 경우 전찻길 부설 등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정확한 위치 찾기와 전각, 연결담장 복원이 민감한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1867년 고종 때 중건한 광화문과 그 앞 월대의 옛 모습(왼쪽 위). 옛 광화문은 한국전쟁 때 불탔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옛 경복궁 건물터를 발굴 중인 인부들의 모습.(왼쪽 아래)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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