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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첫 소설 ‘흉터와 무늬’ 펴낸 시인 최영미씨

등록 2005-05-11 18:56수정 2005-05-11 18:56

가족의 고통과 슬픔 137장면으로 펼쳐

희미한 낙서 같은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다.”(‘거울 앞에서’)

그가 흡사 자잘한 시구를 닮은 문장들을 던져 만든 첫 소설의 첫 글귀는 이렇다. 주인공 정하경은 가족의 상처를 저 깊이 숨겨둔 40대 방송작가다. 그러나 거울 앞에 훤히 드러나는 자신의 생채기마냥 이제 막 가족의 상처를 하나하나 들추며 시간을 거스르고자 한다.

이례적으로 발간 첫해 50만부 이상이 팔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작가 최영미(44)씨가 첫 소설을 냈다. <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중앙 펴냄)는 하경의 가족이 20세기 하반기를 견디며 얻은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언니 윤경과 아버지 일도에게 얽힌 슬픈 비밀이 추리 소설 양식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마지막에 하경이 가족의 상처를 극복하며 흉터는 무늬가 된다. 한두 쪽 분량의 137개 대목이 영화 컷처럼 이어지며 종국엔 긴밀하게 얽힌 하나의 장편이 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어느 바보의 일생>을 닮았다.

“가장의 평탄하지 않은 삶으로 비틀린 가족의 고통을 담았습니다. ‘가족’처럼 ‘가장 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네 가족은 한 집 건너 하나씩 지붕을 열고 들여다보면 모두 소설이 될 거예요.”

꼬박 4년이 걸렸다. “지난 4년은 시인이었던 과거의 나와 소설가가 되려는 내가 서로 투쟁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천매가 넘는 분량을 써내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시와 소설은 글의 밀도나 문장의 호흡이 극명하게 갈린다. “늘였다 줄였다 열 차례 가량 반복했더니 마지막 글이 처음 글을 닮아 있는 거예요. 신기했고 분했죠. 결국 처음 나오는 대로 풀어내는 게 바로 내 글이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트레스도 퇴고도 잦으니 병도 잦다. 목 뒤 인대가 늘어나 고개를 젖힐 수가 없어 결국 병원까지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본래 소설가가 오랜 꿈이었다니 모두 제 스스로 예고한 천형인 셈이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이미 습작 소설을 완성했었어요. ‘세 번 가량 고치면 소설이 되겠다’는 문단 선배의 평도 들었었죠. 하지만 어떻게 그 긴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결국 나이 마흔이 떠밀었습니다. 으레 그렇듯 인생을 돌아보고 그 끝을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했죠.”

최씨는 시로 성장한 이다.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석사 학위를 받은 매춘부의 언어’(<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두고)라는 혹평도 견디며 세계와 다퉜다. “시로 문학동네에 들어와 빚어졌던 많은 갈등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이젠 과거의 저와 화해도 했죠.”

이제 연애 소설 3부작을 준비하고 있다. 첫 습작을 바탕으로 한 80년대 배경의 연애 소설이 시작이다. 이어 90년대, 2천년대를 관통하는 다른 빛깔의 사랑을 그려낼 참이다.

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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