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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정조 독살설은 실록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

등록 2009-03-03 21:33

유봉학 한신대교수(55)
유봉학 한신대교수(55)
‘…정조와 19세기’ 펴낸 유봉학 교수

정조쪽 ‘노론 시파’ 정권에서도
독살 주장 내세운 박영재 파직

19세기 ‘세도정치’만 읽는건 잘못
정조가 키운 ‘청론’ 개혁세력 형성

지난달 18세기 조선 임금 정조(재위 1776~1800년)의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가장 뜨거운 독살설 논란과 더불어 흔히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곧 성군의 치세로 칭송 받는 정조의 사후, 19세기 초 조선의 정치 사회사는 왜 갑자기 ‘세도정치’란 암흑기로 곧장 접어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 역저 <개혁과 갈등의 시대-정조와 19세기>(신구문화사)를 펴낸 역사학자 유봉학 한신대교수(55)는 “단절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정조의 개혁 정책이 후대 왜곡됐지만, 추구한 개혁의 흐름은 그 뒤에도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 면면히 이어져 갔다”는 것이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정조 시대 정치 세력과 사상적 배경, 그의 사후 정치권의 격동과 동향 등을 살펴보면서 이런 저자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흔히 정조 사후의 역사를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옹호한 벽파와 이를 비판한 시파의 권력 쟁투로 뭉뚱그려 풀이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빈약하고 단순한 편견이며, 19세기 정치사를 움직인 건 정조가 즉위 뒤 당파를 초월해 새 정치 세력으로 키웠던 선비 집단인 ‘청론’의 다기한 내부 분화와 갈등”이었다는 것이 유 교수의 일관된 주장이다.

“19세기가 정조 시대와 단절됐다는 견해는 사료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민사학의 당쟁론을 따른데서 비롯된 겁니다. 개혁, 개방, 새 질서라는 정조의 개혁 방향은 후대 정치가와 유산계층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견은 있었지만, 분명히 여러 갈래 양상으로 지속됐습니다. 책은 그 변화에 드리워진 정조의 그림자를 실록과 문집, 야담 등의 사료를 교차분석하며 살핀 것입니다.”

유 교수는 “외척이 사랑방에서 국정을 주무른 세도정치를 낳았지만, 신분제 혁파와 시장경제 활성화 등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낳은 시기 또한 19세기”라며 “이는 정조 때의 정국 운영과 긴밀하게 연관된다”고 했다. 그 근거로 그는 정조 의 청론 세력이 세도정치 주역일 뿐 아니라, 세도정치를 비판한 ‘반정부 세력’또한 형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조는 집권 말기 신료들을 견제하기 위해 청론 출신의 김조순을 왕실의 외척으로 끌어들여 정권 안정을 꾀하지요. 그런 김조순이 순조 등극 뒤 벽파를 몰아내고 남공철 등과 세도 독재 체제를 구축하자 이서구 등 다른 청론 세력들은 청론의 본디 정신을 벗어났다면서 강하게 비판합니다. 세간에 예인으로만 알려진 추사 김정희도 그 비판 세력중 일부였죠. 19세기초의 정치사는 바로 이같은 청론 세력의 내부 갈등과 대립에 의해 전개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신분 혁파 등을 통한 새 체제 질서가 필요하다는 근본 인식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고, 혼돈 속에서도 변화는 꾸준히 진행됐지요. 하지만 기존 학계에서는 이런 진실들이 거의 조망되지 않았죠.”

책에서 정조 때의 선비 재상 유원호와 호남 지방의 기근 구호에 애써 민중적 신망이 높았던 농정 전문가 이서구 등의 소신파 청론 인사들을 별도의 장으로 다룬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훗날 세도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벽파로 공격받아, 정치적으로 매장당했으나, 실체는 중립적인 청론 세력으로서 선비정치의 정도를 지키려던 이들이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정조 시대와 19세기초 정치사를 푸는 고리인 벽파와 시파의 대립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그는 “사도세자의 죽음 당시 두 파는 있지도 않았다”고 통설을 부정했다. “벽파와 시파는 기실 정조 즉위 8년 뒤 청론이 분열한데서 비롯된 겁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누명을 벗겨주고 복권시키려는 정조의 입장을 이해해야한다는 쪽이 시파라면, 사도세자도 자신의 죽음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명분론을 지키자는 쪽이 벽파가 된 거죠. 사도세자의 죽음은 부차적 요소인데, 마치 그의 죽음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분당의 근본 원인처럼 이야기되는 건 잘못된 인식입니다.”


<개혁과 갈등의 시대-정조와 19세기>
<개혁과 갈등의 시대-정조와 19세기>
최근 다시 불거진 독살설 논란에 이르러 그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특히 유 교수는 정조의 편지가 공개된 뒤에도 재야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일부 언론 등에서 독살심증설이 계속 제기되는 것은 실록 등의 구절을 잘못 해석했거나 일부분을 ‘거두절미’식으로 뽑아내 왜곡시킨데 불과하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예컨대, 독살설을 강하게 주장해온 역사저술가 이덕일씨의 경우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조 사후에 처형된 왕실 의사 심인을 친척인 벽파의 정적 심환지가 보호하려고 애썼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순조실록을 보면, 이 주장은 시파가 벽파를 몰아낸 1806년 정변(병인경화) 당시 심환지의 죄를 나열한 정언 박영재의 상소 내용을 일부 뽑아내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해요. 순조는 상소를 망령스럽다고 해서 되려 박영재의 관직을 빼앗습니다. 벽파와 원수지간인 시파 정권에서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실록의 다른 기록에도 심환지가 되려 심인을 정법에 처하자고 극력 주장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씨는 또 친벽파인 정조의 할머니 정순왕후가 정조 사후 즉시 영의정에 좌의정이던 심환지를 임명한 게 불법이라는 주장도 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실록엔 당시 영의정 이병모가 청나라 사신으로 간 상황에서 정사를 비울 수 없어 이런 하교(지시)가 내려졌다는 언급이 나와있거든요. 임금의 유고시 취한 당연한 조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이씨가 실학자 정약용이 정조가 독살당한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주장한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다산의 저작인 <여유당전서>의 관련 기사를 상세히 언급하면서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독살설을 제기한 한 선비의 가문이 반역죄로 몰려 그 부인과 딸들이 전라도 외딴 섬에 유배를 갑니다. 그 뒤 그곳 군졸에게 한 딸이 욕을 당해 자살하자 이를 다른 이들이 고발했다는 일화를 다산이 전해 듣고 소개한 내용이 전부입니다. 그가 독살설을 믿었다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 교수는 “(이씨가) 사료를 꼼꼼히 실증하지 않고, 언론에 저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실명을 들면서 노론 벽파의 주장이라거나 학계의 권력을 잡은 일제시대 조선사 편수회 출신들의 식민사관을 이어받았다고 공격하는 건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견된 정조 어찰은 집권 말 신료들과의 갈등으로 정치력의 한계에 부딪힌 정조가 신료들 중 말이 잘 통한다고 여겼던 심환지를 통해 정국을 풀려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독살설을 부인하는 방증자료겠지만, 그보다는 정조의 개혁이 신료들과 협심하며 실행되었음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봐요.”

유 교수는 간송미술관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역사를 전통 성리학 사상의 맥락에서 해석해온 ‘간송학파’의 1세대 연구자다. 1995년 박사학위 논문 ‘연암 일파의 북학사상 연구’를 발표한 이래 <꿈의 문화유산 화성><정조대왕의 꿈> 등을 내며 정조시대 전후사를 정치사상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데 몰두해왔다. 그는 “드라마나 대중 저술을 통해 심하게 일그러진 정조 시대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어 알리는 것이 필생의 과업”이라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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