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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명성황후 살해 사죄단’ 꾸려낸 다큐멘터리 감독 정수웅씨

등록 2005-05-16 17:57수정 2005-05-16 17:57

동북아 100년 정리 못하면 ‘균형자’ 될 수 없다

1895년 경복궁을 침입해 고종의 왕비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군, 경찰, 낭인 등 일본인 범죄자들의 후손 가와노 다쓰미(84)와 이에이리 게이코(77)가 지난 10일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홍릉을 찾아 사죄의 큰 절을 세 차례 올렸다.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잔학한 명성황후 살해 사건이 일어난 지 110년만이다.

많은 눈길이 이들에게 쏠렸지만, 정작 이들을 어렵게 불러 모은 정수웅(62) 감독은 낭패를 봤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이들을 초청했으나,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제대로 찍질 못했다. 좀 조용히 현장 검증도 하고 촬영도 해야 하는데.” 언론에 알려져 취재진이 벌 떼처럼 몰린 탓이다.

전두환 전기 만들라는
지시에 사표 내던졌다
겨레와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속 진실 끄집어내며
죽을때까지 현장 지키겠다

그는 오는 8월 <에스비에스>와 일본 <엔에이치케이>에서 방영될, ‘명성황후 살해 사건’을 다룬 2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 1년여 일본 구마모토를 13차례 오가며, 가이 도시오(76) 등 양심적 일본인들과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리고 살해범 후손들의 사죄 방한까지 이끌어냈다.

“48명의 살해범들은 알려진 바와 달리 엘리트들이었다. 이 가운데엔 일본인이 한국에 세운 한성신보사 직원 20명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주범인 당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1846~1926)의 후손이 어디 살고 있는지도 찾아냈다.” 그의 사죄방문도 추진하고 있으나, “다음번엔 조용히 들어왔다 나갈 생각”이다.

정 감독은 30여년 다큐멘터리만 고수해온 진짜 ‘다큐멘터리스트’다. 73년 <한국방송> 입사 뒤, 77년 다큐멘터리 <초분>으로 ‘다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골든하프상(유럽방송연맹 주최) 최우수상을 탔다. <불교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등으로 78년부터 4년 내리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기록도 세웠다.

초기엔 한국 문화 자체에 매달렸다. 진도의 ‘풍장’을 담은 <초분>이 대표적이다. 죽은 이를 짚으로 만든 초분에 걸어 두고 3년간 풍화시킨 뒤 바다에 띄워 보내는 풍속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선진 조국’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웃지 못 할 사건도 겪었으나, 세계적인 상을 받으며 24개국에서 방영됐다.


그러다 82년 전두환의 전기 다큐인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만들라는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일생을 다큐멘터리에 바칠 마음가짐”에 조직이 그를 묶어둘 수도 없던 참이었다. 마침 일본 영상기록센터에서 불러들여, 대학시절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게 했던 책 <다큐멘터리 극장>의 저자이자 ‘일본 다큐의 거장’인 우시야마 주니치와 함께 2년 반 동안 일할 기회를 얻었다.

85년 독립제작사 ‘다큐 서울’을 세운 뒤로는, ‘겨레’와 ‘역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기행-아리아 환상곡>와 <남태평양의 원혼들-포로감시원>(1989)부터 <쓰루가의 아리랑 환상곡>(1991), <잃어버린 50년, 캄차카의 한인들>(1995), <압록강에서 만나는 사람들>(1997)…. “겨레 역사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인물을 통해 시대를 조망해왔다.”

그는 2001년 6월 동아시아 여정에 올랐다. ‘필생의 역작’ <동아시아 격동 100년사>를 위해서다. 1840년 ‘아편전쟁’을 전사로, 격하게 요동친 20세기 동아시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10년 단위로 끊어 담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어려움이 닥쳤다. 16부작에서 13부로 줄였음에도 회당 1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 진 것. “‘국가기밀’ 수준의 빚을 져 사무실도 접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방송사 사장을 만나 봐도 시큰둥한 것 같고. 스폰서 구하기가 어려워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이 동아시아 100년사”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연장선에 놓여있다. ‘일본 지식인들이 주축인 이른바 낭인들이 이웃나라 황후를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규명하지 않고선 도저히 그 시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까닭이다.

15일, 그는 또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죽을 때까지 현장을 지키겠다”는 신념대로 “사실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다.

글·사진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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