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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창의적 제작 힘실어줘야 한국영화 산다”

등록 2009-03-29 18:56수정 2009-03-29 19:53

정의석 전 벤티지 홀딩스 대표
정의석 전 벤티지 홀딩스 대표
정의석 전 벤티지 홀딩스 대표
잘나가던 회사 ‘내분’ 지난해말 해임돼
최근 무효확인 소장 낸 뒤 소회 밝혀
“독립적 배급사 기회 놓쳐…방법 잘못돼”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말라붙던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해, 불과 1년 반 만에 영화 8편을 만들고, <추격자> <미쓰 홍당무> <크로싱> 등의 의미 있는 흥행 성과를 거뒀던 투자·제작사 벤티지 홀딩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선용(34) 이사와 오리엔트 시계 창업자의 둘째 아들 정의석(40) 대표가 각각 1, 2대 주주로서 공동 창업한 회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머니 게임’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었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가 하나둘 빛을 보면서 그런 의심은 쏙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때만 해도 단독 파티를 열었을 정도로 벤티지 홀딩스는 전도유망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내분에 휩싸였다는 소문이 돌았고, 12월이 되자 정의석 대표가 해임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다 최근 정 전 대표가 자신의 해임을 결정한 이사회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장을 법원에 낸 사실이 확인됐다. 잘나가던 회사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우리 꿈은 아주 오랫동안 영화를 하는 것”이라던 정 전 대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미국에서 돌아온 그가 <한겨레>에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먼저 “선용이와 개인적으로 싸우는 모양새로 비치는 건 싫다”며 “나는 다만 영화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소송도 김선용 현 대표가 아닌 벤티지 홀딩스를 상대로 제기했다.

“선용이를 인간적으로 이해해요.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요. 공든 탑을 한번에 없애버렸어요. 법인이란 법으로 만든 인간이에요.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죽을 때도 히스토리가 있어야죠. 그런데 벤티지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어요. 자금도 충분히 들어왔고, 구조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놨어요. 재벌 계열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화판에서 독립적인 영화배급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는데….”

16명이었던 벤티지의 영화 관련 직원은 현재 3명으로 줄었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은 정씨가 얻어준 사무실과 아파트에 모여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다시 영화를 시작할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뜻에 따라 들어간 경영학과를 1년 만에 그만둔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연출을 전공했다. 오리콤, 엘지애드 등을 거쳐 직접 광고회사를 차리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다. 김선용 대표와 영화 사업을 같이 하게 된 것도 그가 구상했던 시나리오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영화에 대한 공통의 꿈과 열정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해 정씨는 투자자답지 않은 처방을 내렸다. 그는 “영화 산업이 살려면 3대 요소인 제작·투자·배급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투자와 배급 쪽에 힘이 너무 많이 실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투자·배급사가 한국 영화 시장의 거의 유일한 판매망인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수직계열화’가 한국 영화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스크린 수가 3만5천개 정도 됩니다. <미션 임파서블> 같은 큰 영화가 개봉해도 10%가량인 3천~4천개를 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큰 영화가 절반 가까이 차지해 버리잖아요. 교차상영까지 포함해서 매주 18편 정도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데, 많은 영화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죠.”

그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등의 “크리에이티브가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지불하고 공을 들여야죠.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처럼 혼자 다 써버리는 천재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투자에 힘이 쏠려 있는 지금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제작과 크리에이티브에 힘을 실어야 한국 영화가 살아날 겁니다.”

이번 일과 별개로 그는 다시 영화를 공부할 계획이다. 영화학교에 진학해 36㎜짜리 카메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만져보고 자신의 영화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영화는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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