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촛불’처럼 내멋대로 거리소리 담아

등록 2009-05-06 18:24수정 2009-05-06 19:48

김지하(68) 시인
김지하(68) 시인
‘못난 시집’ 낸 김지하 시인
“작년 5월 촛불집회 때 두 아들과 촛불에 관해 얘기하던 중 아들들이 그러더군요. 아버지 시는 왜 그렇게 어려우냐, 쉽고 재미있는 시를 쓸 수는 없느냐구요. 그 말을 듣자니 몇 해 전 사형 조동일 교수가 해 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수룩하게 살고 못난 시 쓰라는 말이었죠. ‘못난 시’들은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김지하(68·사진) 시인이 3년 만에 시집 <못난 시들>(이룸)을 펴내고 6일 낮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못난 시’라니?

엄숙함 버리고 어수룩하게…산문집 4권도 펴내
“촛불은 우주적 사건…막는다고 꺼질 것 같은가”

“너무 고급스러운 문법, 은유에 신경 쓰고 격조 따지고 하는 식의 시에 대한 엄숙함을 버렸습니다. 그저 시장 바닥의 시끄러운 소리를 닮은 시를 쓰고자 했죠.”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종로 삼가에서/ 비원 가는 길/ 이른바/ 국악 거리를 가다가/ 어느 간판에 한꺼번에/ ‘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이라!// 그거나 그거나// 영산강 운하 계획 다 듣고 나서/ 어떤 갯땅쇠 왈// ‘그거나 그거나’”(‘못난 시 10’ 부분)

91편의 ‘못난 시’ 연작이 실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1부터 7까지는 순서대로 가다가 갑자기 10000번과 9999번이 나오고, 9와 10과 11이 뒤를 잇다가 그 다음부터는 뒤죽박죽이다.


“제목은 시의 핵심이죠. 사람으로 치면 이름 같은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일부러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붙였습니다. ‘촛불’과 같은 것이죠. 지도자도 조직도 명령도 책임자도 없는 개판 같지만, 결국 그것이 ‘집단지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못난 시’를 촛불에 비유하는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시집에는 지난해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에 관한 시들이 많다.

“촛불이/ 혹시는/ 후천개벽인지도 몰라// 촛불이/ 혹시는/ 남북통일의/ 참 시작인지도 몰라// 촛불이/ 온 지구 생명의 구원인지도 몰라”(‘못난 시 9’ 부분)

시인은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라는 공통된 부제를 지닌 산문집 네 권도 함께 내놓았다. <방콕의 네트워크> <촛불, 횃불, 숯불>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디지털 생태학>이라는 제목을 단 산문집에서도 촛불은 핵심적인 주제를 이룬다.

“6월10일 이후로는 촛불이 횃불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첫 번째 촛불이 제게 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촛불은 우주적 사건입니다. 정권은 촛불을 원천봉쇄하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꺼질 촛불이 아닙니다. 대운하니 집시법이니 촛불 켤 일이 오죽 많습니까. 촛불은 또 켜지고 또 켜지고 또 켜질 겁니다. 저부터가 오늘 저녁에도 촛불을 켤 거예요. 물론 저는 거리에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보당국이 도청하는 저희 집 전화에 대고 촛불을 켜겠다는 겁니다. 촛불을 켰다고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지요.”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