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곤의 선물’ 배우 서이숙
연극 ‘고곤의 선물’ 배우 서이숙
연기·대사전달·무대장악력 3박자 관객·연출·평단 모두 호평
“좋은 연기는 쏟은 고민만큼 나와 신체·감각 트레이닝해야”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세계적인 연극 평론가 에릭 벤틀리(93)는 배우를 ‘공동작가’로 비유했다. 현재 한국 연극의 위기는 좋은 배우들의 부재도 원인이 되는 셈이다. 김윤철(60)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한국의 배우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연극의 양식에 적응하는 기술과 능력”이라고 한 지적은 그래서 날카롭다. 중견 배우 서이숙(41)은 서울 대학로 연극동네에서 개성 있는 연기와 정확한 대사 전달,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장악력으로 보기 드물게 관객과 연출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는 여배우다. 올해 3월 선보인 극단 미추의 <리어왕>을 비롯해 4월 <피카소의 여인들>, 5월 <템페스트>에서 강렬한 무대 에너지로 관객들 가슴에 존재감을 깊이 아로새겼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10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 다시 오르는 극단 실험극장의 앙코르작 <고곤의 선물>(연출 구태환)을 준비중인 그를 지난 8일 만났다. “좋은 연극, 좋은 연기는 무대에 쏟은 만큼 나오는 겁니다. 관객의 눈을 속일 수는 없어요. 배우와 궁합이 맞아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늘 만날 수는 없잖아요. 관객들이 ‘저 배우는 만족스럽게 감동을 주지 못했지만 애썼구나’라고 할 정도로 보여져야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만 6개 대작 연극에 캐스팅될 정도로 그는 지금 20년 연기 생활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물론 오랜 무명과 조연 시절을 거쳤다. 1989년 처음 입단한 명문 극단 미추에는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 등 스타 배우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그러나 두드리는 쇠가 더욱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그는 여자 입단 동기들이 지루한 무명 생활과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씩 떠날 때도 “관객들이 서이숙의 연극을 보러 올 날”을 기다리며 준비해왔다. “물론 내가 잘될까 안될까 괴롭고 패배감이나 자괴감에 갇히기 쉽죠. 그렇지만 터닝포인트(전환점)는 분명히 옵니다. 어느 순간 깨치고 재미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야 합니다. 연극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즐거워지죠.”
그는 가장 어려웠던 시절 스승 같았던 배우 김성녀(59)가 “사십을 먹어야 배우가 되더라. 사십 먹은 배우라야 어떤 것을 표현할 때 신뢰가 생기더라”라고 한 조언을 잊지 못한다. 노력하던 그 앞에 14년 만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2003년 어깨 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서도 무대를 지켰던 연극 <허삼관 매혈기>가 히서연극상과 동아연극상의 연기상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서이숙이란 이름이 알려졌고 이듬해 한태숙 연출의 <고양이 늪>에 처음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서이숙은 서울 연신내에 살면서 연습 없는 날을 골라 거의 매주 북한산을 오른다. 산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체력 단련과 마음 다스리기에 산만큼 좋은 것이 없다. 특히 그의 정확한 대사전달력은 등산으로 단련된 것이다. “대사를 할 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중요하다. 산을 오르내릴 때 네 발짝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연습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등산 외의 취미는 연극과 영화 감상. 혼자서 심야 영화를 즐겨 본다.
“배우라면 연극과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합니다. 신체 트레이닝도 중요하지만 감각 트레이닝도 해야 합니다. 요즘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요즘 연극의 연기 스타일, 연출과 조명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게 다 감각 트레이닝이거든요.” 그는 지난해 11월 중견 배우 정동환과 함께 주인공 부부 역으로 열연했던 <고곤의 선물>(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에서 ‘전회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던 가슴 벅찬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등을 발표한 피터 섀퍼 원작의 이 작품에서 서이숙은 자살한 한 천재 극작가의 부인으로 나와 남편의 죽음과 그의 예술 세계에 얽힌 비밀을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의 갈등 구도를 빌려 색다르게 풀어내면서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기립 박수에 기절할 뻔했어요. 특히 마지막 날 관객의 호흡이 쓰윽 빨려들어오는 것을 느꼈어요. 그 순간 배우와 관객 모두가 몰입된 것이죠. 그 맛에 배우를 하는 거죠. 그 맛을 더 보고 싶고. 그래서 더 박수를 받기 위해서 내가 더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좋은 연기는 쏟은 고민만큼 나와 신체·감각 트레이닝해야”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세계적인 연극 평론가 에릭 벤틀리(93)는 배우를 ‘공동작가’로 비유했다. 현재 한국 연극의 위기는 좋은 배우들의 부재도 원인이 되는 셈이다. 김윤철(60)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한국의 배우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연극의 양식에 적응하는 기술과 능력”이라고 한 지적은 그래서 날카롭다. 중견 배우 서이숙(41)은 서울 대학로 연극동네에서 개성 있는 연기와 정확한 대사 전달,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장악력으로 보기 드물게 관객과 연출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는 여배우다. 올해 3월 선보인 극단 미추의 <리어왕>을 비롯해 4월 <피카소의 여인들>, 5월 <템페스트>에서 강렬한 무대 에너지로 관객들 가슴에 존재감을 깊이 아로새겼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10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 다시 오르는 극단 실험극장의 앙코르작 <고곤의 선물>(연출 구태환)을 준비중인 그를 지난 8일 만났다. “좋은 연극, 좋은 연기는 무대에 쏟은 만큼 나오는 겁니다. 관객의 눈을 속일 수는 없어요. 배우와 궁합이 맞아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늘 만날 수는 없잖아요. 관객들이 ‘저 배우는 만족스럽게 감동을 주지 못했지만 애썼구나’라고 할 정도로 보여져야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만 6개 대작 연극에 캐스팅될 정도로 그는 지금 20년 연기 생활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물론 오랜 무명과 조연 시절을 거쳤다. 1989년 처음 입단한 명문 극단 미추에는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 등 스타 배우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그러나 두드리는 쇠가 더욱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그는 여자 입단 동기들이 지루한 무명 생활과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씩 떠날 때도 “관객들이 서이숙의 연극을 보러 올 날”을 기다리며 준비해왔다. “물론 내가 잘될까 안될까 괴롭고 패배감이나 자괴감에 갇히기 쉽죠. 그렇지만 터닝포인트(전환점)는 분명히 옵니다. 어느 순간 깨치고 재미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야 합니다. 연극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즐거워지죠.”
연극 ‘고곤의 선물’ 배우 서이숙
“배우라면 연극과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합니다. 신체 트레이닝도 중요하지만 감각 트레이닝도 해야 합니다. 요즘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요즘 연극의 연기 스타일, 연출과 조명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게 다 감각 트레이닝이거든요.” 그는 지난해 11월 중견 배우 정동환과 함께 주인공 부부 역으로 열연했던 <고곤의 선물>(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에서 ‘전회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던 가슴 벅찬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등을 발표한 피터 섀퍼 원작의 이 작품에서 서이숙은 자살한 한 천재 극작가의 부인으로 나와 남편의 죽음과 그의 예술 세계에 얽힌 비밀을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의 갈등 구도를 빌려 색다르게 풀어내면서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기립 박수에 기절할 뻔했어요. 특히 마지막 날 관객의 호흡이 쓰윽 빨려들어오는 것을 느꼈어요. 그 순간 배우와 관객 모두가 몰입된 것이죠. 그 맛에 배우를 하는 거죠. 그 맛을 더 보고 싶고. 그래서 더 박수를 받기 위해서 내가 더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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