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년 동안 무대분장·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손진숙씨가 대학로에 있는 그의 지하 작업실에서 최근 그가 염색한 무대의상용 옷감을 펼쳐보이고 있다.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길 가다가도 눈에 띄면 옷감 사들여”
2003년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었던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잔혹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작품 내용은 물론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이미지가 오랫동안 화제를 남겼다.
당시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의 무대 분장·의상 디자인을 맡았던 손진숙(50)씨는 21일 “국립극단 예술감독이었던 김철리 연출가가 유달리 파격적인 분장을 요구했던 기억이 난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그를 따라 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뒷골목의 지하 작업실에는 30여평의 공간에 갖가지 색깔의 원단뭉치가 빽빽히 차 있었다. 그는 “평소 길을 가다가도 눈에 띠는 것을 보면 사들고 오는 편이다. 당장 쓸모없는데도 20여년 간 몸에 배인 버릇을 고칠 수 없다”고 밝게 웃었다.
중앙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극단 목화컴퍼니의 전신이었던 ‘오사단’ 소속의 친구 고 엄인희(희곡작가)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연극에 빠져들었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워낙 완강하자 ‘달리 연극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심우성씨를 만난 것이 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연극배우 되려다 ‘샛길’ 로
외국선 전문가로 대접
“여기선 차마 못권할 일” “심 선생께서 국내에는 무대 분장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가 드무니까 그쪽으로 길을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에는 옛날부터 가부키나 노처럼 분장 기술이 잘 발달됐기 때문에 배울 것이 많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20여년 간 무대 분장과 의상 디자인의 길을 걷도록 부추긴 셈이 됐죠.” 1984년 29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 길에 나선 그는 도쿄에 있는 분장학원에서 무대분장과 무대 의상을 3년간 배운 뒤 귀국했다. 그는 1987년에 압구정동 현대극장 무대에 올린 박재서 작, 김태수 연출의 <사랑산조>에서 무대 분장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연극계에는 무대분장의 개념이 확산되지 않아 주위에서 간혹 “배우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분장을 보이게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1989년 무대분장 발표회를 처음 열었죠. 워낙 생소한 분야인지 엄청난 화제를 모았어요. 모든 잡지나 신문에서 모두 인터뷰를 해왔어요. 처음으로 무대분장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뒤 김철리, 채승훈, 오태석씨 등과 함께 작품을 하면서 파격적인 무대분장과 의상 디자인 실험작업을 꾀해왔다. 그가 가장 기억나는 의상은 오태석 연출의 <춘향전>에서 한지로 만든 옷을 꼽는다. 여러번 입어야 하기 때문에 천에다 종이를 붙여서 만드는데 재단이나 손질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단다. “외국에서 분장 디자이너나 의상 디자이너가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어요. 제자를 두고 싶지만 저 같은 처지를 생각하면 앞날이 안보이니까 차마 권하지 못하겠어요.” 그는 오는 6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될 오태석 연출의 <물보라>에서는 무대분장을, 7월에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의 <어린왕자>에서는 의상디자인과 무대분장을 맡을 계획이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외국선 전문가로 대접
“여기선 차마 못권할 일” “심 선생께서 국내에는 무대 분장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가 드무니까 그쪽으로 길을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에는 옛날부터 가부키나 노처럼 분장 기술이 잘 발달됐기 때문에 배울 것이 많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20여년 간 무대 분장과 의상 디자인의 길을 걷도록 부추긴 셈이 됐죠.” 1984년 29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 길에 나선 그는 도쿄에 있는 분장학원에서 무대분장과 무대 의상을 3년간 배운 뒤 귀국했다. 그는 1987년에 압구정동 현대극장 무대에 올린 박재서 작, 김태수 연출의 <사랑산조>에서 무대 분장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연극계에는 무대분장의 개념이 확산되지 않아 주위에서 간혹 “배우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분장을 보이게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1989년 무대분장 발표회를 처음 열었죠. 워낙 생소한 분야인지 엄청난 화제를 모았어요. 모든 잡지나 신문에서 모두 인터뷰를 해왔어요. 처음으로 무대분장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뒤 김철리, 채승훈, 오태석씨 등과 함께 작품을 하면서 파격적인 무대분장과 의상 디자인 실험작업을 꾀해왔다. 그가 가장 기억나는 의상은 오태석 연출의 <춘향전>에서 한지로 만든 옷을 꼽는다. 여러번 입어야 하기 때문에 천에다 종이를 붙여서 만드는데 재단이나 손질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단다. “외국에서 분장 디자이너나 의상 디자이너가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어요. 제자를 두고 싶지만 저 같은 처지를 생각하면 앞날이 안보이니까 차마 권하지 못하겠어요.” 그는 오는 6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될 오태석 연출의 <물보라>에서는 무대분장을, 7월에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의 <어린왕자>에서는 의상디자인과 무대분장을 맡을 계획이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