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씨
‘게릴라 글쓰기’ 제안 임태훈씨
‘실천문학’ 특집서 “제도권 문단, 상상력 도살” 비판
“P2P 활용 등 대중과 직거래하는 연결망 만들어라”
‘실천문학’ 특집서 “제도권 문단, 상상력 도살” 비판
“P2P 활용 등 대중과 직거래하는 연결망 만들어라”
해마다 신문사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 신인상 공모 등에 응모되는 작품은 1만여편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응모자 중 한 해에 수백명이 문단 ‘신인’으로 등단하지만 그뒤로도 살아남는 작가는 열명 안팎에 불과하다. 어째서 그럴까. 작가적 역량의 문제인가? 통상 돌아오는 답이다.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 ‘새로운 감각, 게릴라 글쓰기’는 질문을 바꿔보자고 말한다. 이 특집에서 신예 문학평론가 임태훈(31·사진)씨는 기성 문단문학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문단 제도 바깥의 작가들, 다시 말해 미등단 작가(=작가 지망생)들에게 ‘세상을 정면으로 관통하려는 연대’와 그 방식으로서 ‘게릴라의 글쓰기’를 제안한다. 임씨는 우선 문단문학을 두고 ‘대형작가와 당파적 출판사의 배만 불리는 승자독식 문단이자 문학청년의 도살장’이라고 비판한 평론가 조영일씨의 견해에 대체로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임씨가 보기에, 중요한 건 문학청년들의 진짜 행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체적인 방법이다. 문단문학의 문제점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면, 그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문단문학은 논쟁의 가능성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의 궁극적 욕망이 독자와의 소통에 있다면, 그 점에서 오늘의 문단문학은 실패하고 있다는 게 임씨의 진단이다. 몇몇 유명 작가들 작품 외에는 문단문학의 독자층은 협소하다. 신인작가의 책은 초판 1천부가 팔리지 않는 일이 허다하고, 문예지의 독자층도 점점 줄고 있다. 문단문학의 큰 폐해는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자격증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려 하기에 비슷한 글들이 양산된다. 제도로부터 반복적으로 거절당한 이들은 글을 그 기준에 맞추거나 글쓰기를 그만둔다. 그러니 임씨는 등단이 작가의 출발점이라고 믿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역량과 무능을 ‘글쓰기라는 소통’을 통해 경험하는 삶이야말로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본질이라고 말한다. 신춘문예와 신인상 제도로 대표되는 문단 등단의 기준을 통과할 만한 모범답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자괴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스스로 제도의 바깥에서 재미있는 글쓰기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 그 모험이 중요하다고 임씨는 말한다. 인터넷 글쓰기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이자 또다른 걸림돌이다. 최근 창간된 인터넷상의 문학 웹진은 문단문학의 매체 확장일 뿐이다. 7개 출판사와 매출 1위 인터넷서점이 공동으로 만든 이 웹진의 주된 필자들은 문단제도권 안에서 선택되고 길러진 작가들이니, 아무나 읽으러 갈 순 있어도 아무나 쓸 수는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곳곳에 산재한 창작블로그들이나 창작카페 모임들은 온라인 사이트 안에서만 교류하기 일쑤이며 오프라인 공동체 만들기엔 무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릴라들이 전선 없이 싸우는 것처럼, 글을 꼭 제도권 지면에 쓸 필요는 없으며, 그 바깥에서 마치 게릴라처럼 어디서나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게릴라가 민중의 지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듯이, 게릴라식 글쓰기는 어떻게든 독자들과 ‘직접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씨는 피투피(P2P)를 활용한 글쓰기는 대안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극단적인 예로, 연예인 엑스파일이 삽시간에 피투피를 통해 거의 온국민에 노출되었듯이, 피투피를 활용한 글의 유통은 게릴라 글쓰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는 이들의 연대와 기존 창작블로그나 카페 공동체들의 접속이 필요하다. 글쓰기 공동체와 사이트를 링크해주고 연결해주는 연결망 ‘노드’의 증식이 필요하다고 임씨는 힘주어 말한다.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은 미등단 작가들의 좌담도 실었는데, 김경년(25)씨는 “대중이 원하는 글과 등단한 이들이 쓰는 글이 다르다”며 “대중과 작가의 불일치 속에서 문학이 사회의 문화적 생산자 구실을 하는 게 아니라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교희(25)씨는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10~20년 후 가능성을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틀 안에서 작품을 뽑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갇혀 있음에 절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등단 작가들의 작품들로 특집을 기획한 <실천문학>의 고명철 편집위원은 기획의 말에서 “이들 젊은 문청들의 글은 기성의 목소리들에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며 “이 글들이 새로운 미적 저항의 징후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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