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17)
‘여행자’서 장애인역 맡은 고아성
고아성(17)은 ‘중경’이라는 학교 마크가 새겨진 감색 교복을 입고 나타났다. 시간은 저녁 7시,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그의 손에는 전문가급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소속과 취미를 동시에 알려주는 이 범상치 않은 등장은 시작에 불과했다. 김광석과 라디오 헤드·데이미언 라이스·숀 레넌을 좋아하는, 그러나 아이돌 그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 10대 연기자는 여느 성인 배우 못지않은 내공의 소유자로 보였다. 아이돌 그룹도 “별로”라는 고2
힘든 장애인 역 파묻혀 석달…
“양쪽 다리 굵기가 달라지네요” 부모한테서 버림받은 입양아들을 다룬 영화 <여행자>(우니 르콩트 감독, 이창동 제작)에서 고아성은 신체장애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보육원을 떠나는 예신 역을 맡았다. 예쁘고 멋진 배역을 좋아할 나이에 왜 이런 역을 하겠다고 했을까? “어릴 때부터 마냥 예쁘고 그런 역할보다는 임팩트 있고 어려운 연기를 더 좋아했어요. 아픔이나 상처를 가진 배역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예쁘지 않다는 걸 일찍이 깨닫게 된 점도 있구요.” 한쪽 다리를 저는 이 배역에 낙점된 뒤 그는 “계속 그러고 살았”다. 밤이 되면 모자를 눌러쓰고 거리로 나가 절면서 다녔다. “그렇게 걷다 보니까 (장애가 있는 분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촬영을 마칠 때까지 석 달 남짓을 그러고 다녔더니 양쪽 다리의 굵기가 달라지고, 똑바로 걸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걷기 어려웠어요.” 고아성은 네 살 때 엄마 친구의 손에 이끌려 참여한 한 방송사의 길거리 캐스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면서 모델 일을 시작했다. 어린이 드라마 등에 출연했고, 2006년 <괴물>(봉준호 감독)에서 송강호의 딸 현서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는 “<괴물>은 너무 고마운 영화지만, 처음 영화라는 건 불행”이라고 말했다. “더 힘든 상황을 겪어본 뒤에, 더 노력하고 갈고닦은 다음에 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바로 다음 작품부터 <괴물>을 잊으려 했고, 현서한테서 도망치려 했다.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즐거운 인생>(2007)과 <라듸오 데이즈>(2008)였다. <여행자>의 예신은 고아성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인상 깊고 난이도가 높은 배역이다. “작품을 찍고 나중에 살펴보면서 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진로를 고민할 필요가 없을 거라며 고아성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사진도 찍고 싶고, 여행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대입 시험에서 연기를 전공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다른 공부를 하는 게 오히려 연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기를 조금 해보니까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29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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