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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30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눈빛’

등록 2009-11-05 15:07수정 2009-11-05 15:23

배우 이화시
배우 이화시
‘퇴폐적 표정’ 당시 고위층 심기 건드려
데뷔작 개봉지연 좌절…영화판 떠나
“영화에 한 맺혀 딸까지 연출공부 시켜”
‘귀향’으로 스크린 복귀한 배우 이화시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이어도>(1977)를 본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1970년대 ‘방화’ 시절에 이렇게 신기한 한국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이화시의 신비한 눈빛에 놀란다. 영화평론가 김영진(명지대 교수)이 ‘70년대를 대표하는 표정’이라고 명명했던 전설의 여배우 이화시(57). 영화 <귀향>으로 3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그를 지난 3일 만났다. 그는 말수가 적은 영화 속 모습과 달리, 화통한 언변의 여장부였다.

“저한테는 이번이 세 번째 기회예요. 지금까지는 막 잡아온 참새처럼 숨을 헐떡거렸다면, 이제 내가 좋아하는 작품 하면서 즐기고 싶어요. 제가 100살을 산다고 하면 아직 40년 정도 남은 거니까, 천천히 만만디처럼 해도 되지 않겠어요?”

배우 이화시
배우 이화시

이번이 세 번째인 사연은 이렇다. 데뷔작이었던 <반금련>(1981)이 여러 차례의 사전검열과 가위질 끝에 개봉이 5년이나 늦춰지면서, 좌절감에 도망치듯 중매결혼을 했던 70년대 말, 마음속의 열정을 어쩌지 못해 연극 무대와 티브이 단막극에 잠깐 얼굴을 내비쳤으나 뭔가 맞지 않아 그만뒀던 80년대 중반, 그리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이화시라는 존재가 알려지게 된 지금. 비운의 천재 김기영 감독, 그리고 그가 아꼈던 배우 이화시는 한국 영화사에서 너무 일찍 등장했던 이름들이었다. 시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시대와 화해하지 못했다. 김기영 감독이 전하는바, 이화시의 얼굴에 흐르는 “퇴폐적인 색기”가 당시 고위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반금련>의 개봉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금련>은 김포 고촌에 누각을 짓고 모든 장면을 세트에서 촬영한 야심작이었어요. 나는 이제야 세상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휘청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죠.”

영화 반금련의 한 장면
영화 반금련의 한 장면

그동안 그는 주부로서 가정에 충실했다. 대신 딸에게 영화 일을 하라고 독려했고, 딸은 엄마의 소원대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그는 “오죽 한이 맺혔으면 딸을 통해 와신상담을 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 같지만, 모녀 감독의 등장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귀향>은 세살 때 오스트레일리아로 입양된 한 청년(박상훈)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에 와서 겪는 일을 몽환적인 기법으로 연출한 영화다. 이화시는 청년이 찾아가는 시골의 한 모텔에서 손님들을 죽여 생계를 이어가는 모녀 중 늙은 여자 역을 맡았다. ‘90년대의 김기영’이라고 할 수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여러 편 출연한 배우 박지아가 이화시의 딸로 나오는 것도 특이한 인연이다.

“영화에서 청년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왜 이렇게 갇혀 있었습니까?’ 시사회장에서 그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내가 지금 갇혀 있다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게 운이 안 따라주더니 30년도 더 지나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뭔가가 나를 막 앞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기이하게 느껴져요.”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뱃사람들의 애를 태우던 전설의 섬 ‘이어도’가 모진 풍랑을 헤치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놓으려는 순간이다. 5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옛 명동 중앙극장) 등에서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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