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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삼일로창고극장 개관 30돌 기념작 ‘선착장에서’

등록 2005-06-01 17:55



다시 관개속으로 배를 띄운다

이 극장 나이가 딱 서른이다. 그 사이 극장이 번창했던 것도 시들했던 것도 관객들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자립자생이 불가능한 ‘섬’을 닮았다.

최초의 민간설립 극장이며 소극장 운동의 본거지였던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이 극장 개관 30돌을 기념하는 첫 번째 작품 <선착장에서>의 막이 올랐다. 울릉도가 배경이다.

악천후로 뭍에서 오는 배가 끊긴 지 수 날 째. 선착장 주변엔 “마음은 왼쪽인데 발은 오른쪽으로 간다”는 이상한 남자 규회만 술 취한 채 어슬렁거린다. 사람들은 모두 규회의 괴팍한 행동과 언사를 욕해대며 하루를 보낸다.

일주일이 넘도록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고 물자도 바닥난다. 비바람에 무너진 발전소 기둥에 아이가 깔려 죽고 발 묶인 관광객은 금품을 도난당한다. 섬이 통째 초조한 날들, 급기야 한 처녀(명숙)가 자살했다. “뭍에 묻어 달라”는 유서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애 밴 배만 불룩하다.

섬사람들은 명숙의 장례식을 외면하거나 서둘러 정리하려고 하지만 사촌오빠인 규회만은 죽은 명숙을 뭍으로 보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선착장에다 배가 안 되면 헬기라도 띄우라고 부르짖는 규회의 사자후는 하지만 사실 섬의 추악한 비밀에 대한 절규다. 사랑이 그리운 정신지체장애자 명숙은 섬마을 모든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였던 것.

군수 친구인 엄 사장부터 김 경사, 심지어 장의사까지 닮은꼴로 드러낸 인간의 본성은 그곳이 갇힌 섬이어서가 아니다. 사방이 뚫렸지만 사방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박약한 의지 탓이다. 폭풍우가 걷히고 뭍으로 가는 뱃길이 되살아나면 섬은 안정제를 맞은 듯 평온해진다, 아니 조용해진다.

경상도 사투리가 우습고 질펀하다. 엄효섭(엄사장)과 주인영(다방종업원)의 것이 특히 그렇다. 130석 남짓 소극장에서는 드물게 중앙에서 솟아오르는 무대 장치로 입체감이 크다. 규회의 연기가 다소 불안정하고, 엄 사장과 다투며 섬사람의 비밀이 드러나는 대목은 절정인데도 지나치게 밋밋하다. <청춘예찬>의 박근형씨가 쓰고 연출했다.

전무송, 명계남씨 등이 데뷔하고 활동하며 100여석 극장이 미어터졌던 1970년대, 인쇄 공장으로까지 바뀌었던 90년대, 다시 극장으로 부활했지만 객석으로 이어진 양팔 너비 골목도 휑해 보이는 이 극장의 2천년대가 그렇게 지났다. 대들보에 새겨진 ‘삼일로창고극장’이란 29년 된 양각글자만 뚜렷하다. 그리고 이제 2층을 작은 갤러리로, 극장은 연극뿐 아니라 영화, 무용 따위도 올릴 수 있도록 대공사를 했다. 악천후 속에서 관객들한테 가는 배를 다시 한번 띄운 셈이다. 12일까지. (02)319-8020.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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