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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태석 연출 연극 ‘물보라’ 연습현장

등록 2005-06-01 18:07수정 2005-06-01 18:07

볼거리가 푸짐한 2막 연습 대목. 작품 안 어촌 풍경을 빚기 위해 20대 가량의 선풍기로 휘날리는 갈대, 1미터 높이로 출렁이는 배 따위가 무대에 설치될 참이다.
볼거리가 푸짐한 2막 연습 대목. 작품 안 어촌 풍경을 빚기 위해 20대 가량의 선풍기로 휘날리는 갈대, 1미터 높이로 출렁이는 배 따위가 무대에 설치될 참이다.


16년만에 이는 ‘물보라’

“그때 초가집들 그냥 조용한 줄 알죠? 하지만 어느 초가든 작은 불씨가 있는 거야. 이게 한번 활활 타오르다 다시 또 수그러들고…, 이런게 우리네 민중이 살아가는 모습이거든요.”

극본 대사가 아무리 사실적이래도 아무리 그 대사를 실감나게 읊는대도 그것만으로 민초의 축제 같은 삶을 그리기에는 역부족일 터. <물보라>를 준비하던 1978년, 젊은 연출가 오태석(65)씨가 품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는 풍물, 씻김굿이나 우리 고유의 유희적 요소를 무대 위로 들여와 배우들의 몸짓으로 풍성하게 그려낸다. 박자로는 ‘하나둘셋’이 아닌 ‘덩기덩 덩더쿵’ ‘얼씨구나 절씨구’가 더 어울린다. 70년대 체홉이나 입센식 ‘응접실 연극’에 치우치던 현대 연극이 한국 현대연극으로 거듭난 방식이다. 이 변화를 꾀한 최초의 의미 있는 시도라고 <물보라>는 평가받는다.

고치고 또 고치고…

▲ 오태석
<물보가>가 다시 관객을 만난다. 초연된 지 27년, 마지막으로 올려진 지 16년 만이다. 하지만 작품은 질감이 같을 뿐 양식은 78년의 것과 많이 다르다. 지난달 26일 국립극장 연습실을 찾았다.

<물보라>= 남해의 한 어촌. 마을 큰 어른 선주가 있다. 바보 일렬이와 백치 각시. 일렬이와 함께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여느 마을 단출한 풍경이다. 선주가 만선을 위해선 지난해 물에 빠져 죽은 덕중의 혼을 달래야 한다고 한다. 용만의 풍물패와 혼을 달래줄 여인으로 각시가 함께 배에 오른다. 보름의 살풀이를 끝내고 배가 돌아온다. 마을은 덕중이 위로받고 뱃길이 다시 열렸다며 축제를 이어나간다. 각시의 백치미와 죽은 채 돌아온 용만, 덕중 등 동네 청년들의 욕정이 얽혀 있는 ‘불씨’같은 사연은 덮어둔 채. 바다만 인간의 죄를 벌하고 씻는 거대한 자궁처럼 조용하다.


3분의1= 원작에서 대사 3분의 1을 바꿨다. ‘오태석’이 그렇다. 정제되고 규격화된 극을 싫어한다. 끊임없이 고치며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한 배역에 대한 어제 주문과 오늘 주문이 다를 때도 잦다. “작가가 죽었다면야 작품은 꼼짝 마라지. 아, 작가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21세기 관객들이랑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해야지.” 생략과 비약이 많아진다. 몰아치듯 극을 이끌면 “어느새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 있게 된다.”

27년전 용만이, 선주 됐다오

▲ 전무송
장독대= 바뀌지 않는 것은 이것이다. “도시를 좀 달리다보니 ‘느닷없이’ 만나는 우리 원형질의 삶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 78년과는 또 달라서 몇 대 트럭분의 모래를 바닥에 깔아 바닷가를 연출한다고만 해서 될 일인가. “장독대가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이 세대에게 전하지 못하면 이번 <물보라>는 무의미하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황토색 종이옷이 검은 바다, 검은 땅과 대비된다. 진도씻김굿의 기능보유자 박병천(72)씨가 직접 굿을 한다. 색감은 물론, 화자만 살아 있고 주변인은 순간 멈춰있는 군중신 연출로 오태석의 말마따나 단원 김홍도의 민화가 연상된다.

전무송= 78년, 37살때 용만이로 출연했었다. 이번엔 마을의 가장인 선주다. “그땐 ‘무당 공부’도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 수많은 배역을 하면서 수많은 인생을 살아왔잖아? 그냥 편하게 해. 관객들도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 초연 때 백성희가 맡았던 각시를 이은정이 잇는다. 눈을 크게 뜬 ‘사백안’이 강렬하다. 박용(일렬)은 어눌한 말솜씨가 맛깔스럽다.

78년 공연 땐 장민호, 권성덕, 이호재, 손숙, 심양홍 등이 한목에 나왔다. 관람료 일천원의 그 시절, 국립극장이 오랜 침체기를 털고 <인생차압> 등과 함께 비로소 젊은 관객을 불러앉히며 함께 호흡을 시작했던 작품이 바로 <물보라>다. 오는 9~1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02)2280-4115.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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