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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몸은 민감한 악기…회복에 애먹었죠”

등록 2009-11-10 19:21

소프라노 정은숙
소프라노 정은숙
소프라노 정은숙, 9년만에 독창회
국립오페라단장 마친 뒤 소리 다듬기
시아버지 문익환 시에 붙인 곡 연습중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심정이 이럴까?

연주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하면서도 그의 마음 한 편에서는 기대감이 커간다. 모처럼 무대인데 노래가 생각만큼 돼줄까? 아직도 청중들이 나을 기억해줄까?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엠시어터에서 독창회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고향’을 앞둔 소프라노 정은숙(63·전 국립오페라단장) 세종대 성악과 교수는 요즘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난 2000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페라 데뷔 30주년 기념 독창회 이후 9년 만에 서는 독창회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노래가 그리웠는데 막상 무대에 서려니까 떨립니다. 2002년부터 7년 가까이 국립오페라단을 맡으면서 거의 노래를 쉬다시피 했어요. 처음에는 오페라단 연습이 끝나면 밤 10시 이후에 남몰래 노래 연습도 해보았지만 일에 시달리다 보니 점점 멀어졌어요.”

늦가을 햇볕이 따뜻한 지난 주말 오후 대학로에서 그를 만났다. 9년 만의 독창회를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올해 2월부터 독창회를 준비하면서 전성기 때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매일 꾸준히 노래를 연습해왔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역시 몸은 민감한 악기라서 쉽게 회복하기 힘들었다”면서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으나 마음을 다잡고 기초부터 다듬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70년대 오페라 <아이다>로 데뷔한 뒤로 <토스카>, <라보엠>, <운명의 힘> 등 40여 편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활약했고 독일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뮌헨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던 옛 오페라 디바도 세월의 힘 앞에는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모양이다.

“그동안 제가 드라마틱 오페라에 많이 출연했기 때문에 그런 소리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전성기 때처럼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식으로 연습을 했는데 아무래도 30~40대 몸이 아니니까 호흡 면에서 무리가 와서 방법을 바꾸었어요. 조금 더 소리를 가볍게 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왜 세계적인 소프라노도 나이가 들면 소리를 바꾸지 않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목소리의 성량이나 폭에 더 마음을 두게 되고 나이가 들면 음악의 깊이를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독창회 이름을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고향’으로 지은 것이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모처럼 꾸미는 독창회인 만큼 그동안 저를 아껴주었던 많은 분에게 보답하고자 선곡에 몹시 신경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독창회에서 1부에서는 륄리의 ‘사랑, 내게서 뭘 원하오’, ‘돌아와 주오, 내 사랑’과 베르디의 ‘오 자비를, 슬픔의 성모여’와 ‘유혹’, 브람스의 ‘진실한 사랑’과 ‘무덤에서’, 프란츠의 ‘어머니, 내게 노래해 줘요’와 ‘가을에’ 등을 들려준다. 국내에서 흔히 듣기 힘든 가곡들이다. 특히 베르디는 그가 가장 많이 무대에 선 오페라 작곡가이고, 브람스와 프란츠의 작품은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곡들이다.

2부야말로 그의 독창회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우리 가곡들 가운데 ‘사랑’과 ‘그리움’, ‘고향’, ‘못 잊어’를 이름으로 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각각 2개씩 선곡했다. 그 가운데 1994년 작고한 시아버지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시 ‘고마운 사랑아’에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가 곡을 붙인 ‘사랑’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고마운 사랑아 샘솟아 올라라/ 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 새들아 노래를 노래를 불러라/ 난 흘러 흘러 적시네! 메마른 강산을”로 시작되는 3절의 노래는 2000년 발표된 문익환 목사 추모 음반 <뜨거운 마음>에서 작곡가 류형선씨의 편곡으로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널리 알려졌다.

“원제목은 ‘고마운 사랑아’인데 이건용 선생이 작곡을 하면서 ‘사랑’이라고 했어요. 국악 하는 사람들이 많이 불렀는데 노래가 표현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서 연습을 제일 많이 했어요. 그래서 따로 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하면서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심성과 심정을 많이 느끼게 되었어요.”

그는 “노래를 연습하면서 아버님이 가슴 터질 만큼 느끼셨던 생명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고은 시인의 시에 재미작곡가 김형성씨가 곡을 붙인 첫 곡 ‘고향’은 한국 초연”이라며 “95년에 작곡가의 초청으로 미국 엘에이로 건너가 2주 동안 녹음한 곡 가운데 하나”라고 숨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김형성씨는 전남·광주에서 활동하던 민중작곡가로 1980년 5월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검거망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고 윤한봉의 청탁으로 문병란 교수의 시 ‘직녀에게’, ‘동소산의 머슴새’ 등을 노래로 만든 이다. 그의 ‘직녀에게’는 가수 김원중씨가 불러 유명해진 박문옥씨 작곡의 민중가요 ‘직녀에게’와는 다른 가곡 풍의 곡이지만 80~90년대 미주와 유럽 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널리 불렸다.

정은숙씨는 “나의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곡들로 짜다 보니 화려하고 밝은 곡이 없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정성껏 최선을 다해서 표현해보려고 하니까 미리 시를 읽고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돌아와 주오, 내 사랑’이나 ‘진실한 사랑’, ‘그리움’, ‘사랑’, ‘못잊어’ 등의 노래가 2001년 작고한 그의 남편 문호근 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을 떠올리게 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노래를 부를 때는 어떤 판타지나 이미지를 위해서 어떤 대상이 늘 있다. 그것이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일 수 있다”고 뜸을 들인 뒤 “평생을 남편에게 메이어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나도 문제 있는 여자야”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 독창회에는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디지털아트를 공부하고 있는 맏아들인 문용민(31)씨가 어머니를 도와 프랑스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된 가사를 시어로 번역해 프로그램 북으로 옮겼다. 청중들이 노랫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노래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피아노 반주는 정 교수와 함께 한아름음악재단에서 북한어린이돕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임미정(44) 한세대 교수가 맡는다. (02) 3477-1338.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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