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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사람] 남과 다른 몸짓은 나만의 무기

등록 2009-11-27 21:17수정 2009-11-30 11:16

행위예술가 강성국(29)씨
행위예술가 강성국(29)씨
국내 유일의 장애인 행위예술가 강성국씨
“진짜 장애인이었어?”

공연을 본 관객들은 흠칫 놀랐다.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매우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배우는 관객을 속인 적이 없다. 그저 관객들은 장애인이 행위예술을 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객들 스스로 편견에 속은 것이다.

국내 유일의 장애인 행위예술가 강성국(29·사진)씨가 25일 서울 개포동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리는 ‘장애인과 퍼포먼스’ 워크숍에 참가해 행위극 ‘몸시’를 선보였다. 몸이 불편해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소한 것도 해줄 수 없는 남자가 입과 발로 시를 쓰는 내용이다.

뇌병변 1급…국내·외 130여회 공연
“장애인들에 예술체험 기회 주고파”

공연 전 강씨를 만났을 때는 저렇게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연기를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뇌병변 1급인 강씨는 전화벨이 울리자 탁자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귀에 갖다대기까지 5초 이상 걸릴 정도로 느리고 힘들어 보였다. 캔커피를 따서 주니 가방에서 빨대를 꺼내 꽂은 뒤 고개를 숙여 마셨다.

그러나 무대에서 강씨는 전혀 달랐다. 위로 팔을 뻗치거나 바닥을 뒹굴 땐 몸이 비틀어졌으나 동작은 무척 빨랐다. 움직임에 강약이 뚜렷했다. 몸을 잘 제어했다. 여자의 어깨에 덮어주려고 와이셔츠를 벗는 도중 손목이 소매에 걸려 빠지지 않아 애를 쓰는 장면에선 실제로 불편한 건지 연기인지 알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강씨의 몸이었다. 군살은 하나도 없고 탄탄한 근육만 있었다. 오창석 강남장애인복지관 문화사업팀장은 “장애인들은 단순한 동작만 하려 해도 비장애인들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며 “엄청나게 몸을 쓴 결과”라고 말했다.

강씨는 2003년 우연히 실험예술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한 무용수의 제안으로 행위예술을 시작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였다. 행사장에 도착해 “공연하러 왔다”고 하면 스태프들부터 이상하게 쳐다봤다. 공연 도중엔 객석에서 “장애인이야, 아니야?”하며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막이 내리면 그들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강씨는 서서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그동안 국내외를 돌며 120여 차례 공연했다. 강씨는 “처음엔 내가 공연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내가 하는 연기는 나 말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붙었다”며 “내 공연은 비장애인들은 따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만의 무기”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함께 한 신현아(28)씨에게 강씨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그는 “장애인이 공연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게 아니다”며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배역을 맡는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이 워크숍은 두 번 더 열린다. 다음달 2일에는 강씨가 직접 장애인들과 함께 놀이 형태의 퍼포먼스를 하고, 9일엔 강씨를 포함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장애인 퍼포먼스에 관한 토론회를 한다. 강씨는 “공연을 통해서 몸과 정신이 훨씬 나아졌다”며 “앞으로 장애인예술아카데미를 만들어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사진 강남장애인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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