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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쓰고 싶은 걸 계속 쓰라는 허락 받은 듯”

등록 2010-05-31 19:10

15회 한겨레문학상 받은 최진영씨
15회 한겨레문학상 받은 최진영씨
15회 한겨레문학상 받은 최진영씨




최진영씨는 ‘삼수’ 끝에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거머쥐었다. 2008년에는 <우리는 어쩌면>을 투고해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무중력증후군>(윤고은)에 밀려 탈락했다. 지난해에도 <템포 루바토>라는 원고를 내 보았으나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한겨레문학상을 위해 세 번째 쓴 작품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 그의 품에 한겨레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진짜 엄마’ 찾아 나선 소녀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 이야기
‘신선한 감수성’ 좋은 평가 받아

“한겨레문학상 당선작들을 계속 읽어 왔기 때문인지 저도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같은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최진영씨는 2006년 계간 문예지 <실천문학>의 신인상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 뒤 두어 편의 단편을 잡지에 더 발표했지만 “권위 있는 장편 문학상을 통해 다시 한번 평가를 받고 싶어” 한겨레문학상의 문을 두드렸노라고 했다.

덕성여대 국문과 재학 시절에는 시를 썼다는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 습작을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뒤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낮에는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자기 만족이랄까 자기 해소를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 걸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고 한다더군요. 그렇게 쓴 소설로 일단 등단은 했지만, 등단 2년이 지나자 더 늦기 전에 제대로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겨레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장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해와 지지난해 한겨레문학상 응모 원고 말고도 장편 하나와 단편 열 편 정도의 원고를 더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서는 청소하고 씻고 밥 먹은 뒤에 인터넷 기사 검색 등을 하고 나서는 남들이 직장에서 퇴근하는 시각까지 계속 씁니다. 퇴근 시각에 맞추어 저도 쓰는 일을 놓고 저녁에는 책과 영화를 보거나 뉴스를 듣기도 하죠. 남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즐기지 않고 제 방에서 혼자 지내거나 아니면 서울의 이 거리 저 거리를 역시 혼자서 걷는 걸 좋아해요.”

대학 시절에도 친구가 별로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으면서 보냈으며, 등단 전이나 뒤에나 서로의 원고를 바꿔 읽고 평을 해 주는 글쓰기 동료도 없단다. 소설 쓰기 역시 따로 배운 적은 없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게 창작 수업의 전부였다고. 말을 듣다 보면 은둔형 외톨이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란다. 좋아하는 작가는 이문구와 전성태, 그리고 카프카와 코맥 매카시 등이라고 했다.

직장인처럼 규칙적 글쓰기
‘책 읽기’가 창작 공부 전부
세 번 도전 끝에 수상 기뻐

당선작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가출한 어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나온 소녀가 ‘진짜 엄마’를 찾아 세상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소녀가 마주치는 이들은 세상의 춥고 어두운 곳에서 힘겹게 생존을 이어 가는 이들이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결코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들은 그러나 어려운 이들 특유의 인정과 선량함으로 소녀를 감싸 안는다. 그럼에도 ‘진짜 엄마’를 찾아야 하는 소녀는 차례로 그들을 떠나 더 크고 복잡한 세상으로 나아가며, 그 길 끝에서 모종의 심각한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소녀의 캐릭터는 제 마음속에 줄곧 존재해 왔습니다.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며 성장 욕구도 없는 존재죠. 소녀에게는 과거의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엄마’를 찾아야 한다는 목표가 강하기 때문이죠. 소녀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일 뿐입니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소녀가 그 상황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입니다. 소설 끝에서 소녀가 실행에 옮기는 모종의 결심은 지극히 어둡고 비관적이지만, 그것은 현실이 그만큼 어둡고 비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5년 권위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한국문학의 중심부로 선뜻 진입한 신예 작가 최진영씨는 “대답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독자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소설을 쓰는 게 포부라면 포부”라고도 했다.

“2006년 등단 때에는 오히려 막막했어요. 이게 약일까 독일까, 내가 과연 소설을 계속 써야 하나 반신반의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기분이 좋네요. 내가 쓰고 싶은 걸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요. 남들이 ‘요새 뭐 하냐’고 물으면 애매하게 웃고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좋아요.”

글이 써지지 않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록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는 “인디 록밴드 ‘검정치마’의 2집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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