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춤대목. 피나의 작품에서 무대연출은 특히나 중요한데 <러프 컷>은 흰색의 거대한 암벽을 들어앉힌다. 한국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이 곳에 투사될 때 작은 무대는 고스란히 ‘한국’이 된다.
2년 산고끝 막오르는 ‘한국’ 세계 도시·국가 소재로 한 13번재 작품 올 한해 한국에서 펼쳐지는 공연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피나 바우슈의 신작 <러프 컷(Rough Cut)>이 오는 22일 세계 공식 초연된다. 독일 출신의 피나 바우슈(65)는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 새 장르 ‘탄츠시어터’를 개척하며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세계적 거장. 한국을 소재로 만든 <러프 컷>은 한국 사회와 자연, 한국인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춤조각으로 열거하는 콜라주 양식을 갖췄는데 계약부터 꼬박 2년이 걸린 역작이다. 엘지아트센터 개관 5돌을 기념해 만든 <러프 컷>은 1986년 로마를 소재로 삼은 <빅토르>를 기점으로 시작된 피나 바우슈 무용단의 ‘세계 도시·국가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이다. 앞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을 소재로 만든 <천지>(2004년)와 홍콩이 테마가 된 <유리창 청소부>(1997년)가 있었다. 그러나 <러프 컷>은 이 두 작품은 물론 피나의 지난 어떤 작품보다 밝고 역동적이란 평가까지 받고 있다. 지난주 44명의 단원과 스태프를 데리고 입국한 피나 바우슈는 본공연을 이틀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나라에 대한 작품이라기보다 그 나라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라며 <러프 컷>의 의미를 강조했다. 작품이 한국을 담고 있지만 한국을 풍경화 그리듯 이야기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990002%%“(공식 초연을 앞두고) 상당히 흥분된 상태”라며 들뜬 감정을 숨기지 못한 그는 특히 작품에 대한 한국 쪽의 과도한 기대에 대해서도 “한 나라에 대한 나의 시각과 그 나라 스스로의 시각은 달라서 긴장이나 서로에 대한 기대는 늘 존재하게 마련”이라며 “한국을 통해 에너지와 즐거움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작품은 지난 4월 피나 바우슈 무용단의 본거지인 독일 부퍼탈의 샤우스필하우스에서 이미 시연(<한겨레> 4월20일치 20면 참조)을 가진 바 있다. 당시 9일치 공연이 두 달전 3일만에 다 팔렸고 10여분 기립박수가 이어지며 작품값을 톡톡히 했다. <빅토르>가 공식초연 당일이 되어서야 제목이 지어지기도 했던 것처럼 당시 <러프 컷>도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뚜껑을 연 뒤에도 작품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는 피나의 작업 방식과 맞물린다. 공식 초연을 앞두고 제목을 함께 논의한 무대감독 피터 팝스트는 “(최종 편집본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필름을 일컫는) ‘러프 컷’은 완성본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많은 것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며 “그러한 여유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피나는 “화가의 스케치가 점차 (색이 칠해지며) 세밀하게 다듬어진 그림보다 예술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러프 컷>은 제목 없이 독일 무대에 오르면서 줄곧 수정됐다. 특히 유기적인 압축이 중요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부상으로 바뀐 무용수도 있다. 하지만 발레에 살풀이를 섞은 듯 신들린 춤을 췄던 인도네시아 무용수 디타 자스지피와 한국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긴 영상물, 가사를 이해하는 한국 관객에겐 이중의 감흥을 전해줄 한국 음악은 그대로 사용된다. 피나는 “(자신에겐) 춤이 곧 언어”라며 “말 대신 그 언어로 청중과 소통하는 대화가 내겐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이번 작품을 통해 지구촌 관객을 상대로 한 피나 바우슈의 중요한 언어수단이 된 셈이다. 다음해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러프 컷>은 세계를 돌게 된다. 22일, 24~26일. 서울 엘지아트센터. (02)2005-0114.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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