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퇴임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퇴임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다시 예산 삭감 문제를 물었다. “내년에는 더 줄어들 거라고 봐요. 국회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건데…. 칸국제영화제는 예산 2000만유로(약 300억원) 중 1000만유로를 정부가 지원하고, 베를린영화제는 1800만유로 예산 중 800만유로를 지원받거든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영화제가 낭비성이 있는 게 아니냐,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서 하라는 생각이니 문제인 거죠.” 그는 금세 계산해냈다. 예산 100억원인 부산영화제가 7일간 극장 30여개를 꽉 채워도 입장료 수입은 8억~9억원에 그친다는 것. “어떻게 100억원을 벌어요?” 올해 부산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이 3억원 줄어든 15억원이었지만, 다행히 부산시가 추경예산으로 메워줬고 후원도 늘었다. 이 문제가 한참 떠들썩할 때 왜 그는 가만히 있었을까? “예전 같으면 항의했겠지만 이번엔 그냥…. 그동안 예산 투쟁을 많이 했었죠. 하지만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요.” 더 캐묻자 순순히 털어놨다. “예산 증액시키고 하는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국회 예산심의는 전체 영화제 지원액수를 포괄적으로 정해주는 건데, 개별 영화제에서 주장하는 건 순리에 맞질 않죠. 전체 쿼터를 운영하는 문화부가 가만히 있는데 개별 영화제 위원장들이 뛰어다니는 건 본말전도입니다.” 그는 서울법대 졸업 뒤 문화공보부 주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행정고시보다 어렵다던 공개승진시험을 거쳐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영화진흥위원회 전신인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을 지냈다. 그야말로 정통 문화관료 출신이다. 그런 그가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문화를 산업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기초가 되는 문화를 진흥시키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영화로 봐도, 기초예술이 튼튼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어요.” 영진위와 문화부가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방식 등을 간접지원으로 바꾸기로 한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의 저변은 역시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저예산독립영화라고 생각해요. 대자본이 아닌 소규모 예산이 들지만 아주 중요한 그런 영화를 제작하는 데 정부가 지원해주고 또 전용상영관을 확대하는 정책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3디 영화 지원 같은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3디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요? 영화 내용, 즉 콘텐츠와 시나리오 개발에 많은 노력이 집중돼야 좋은 영화가 생산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이야깃거리 자원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지원을 많이 해줘야하고, 혜택이 직접적으로 들어가야 하죠.” 정체성과 자율성이 핵심이다
부산영화제가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영화제 천국이 됐다. 영진위 공식 집계로 국내 영화제만 70개가 넘고 국제영화제가 20개가 넘는다.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하거나 사라지는 영화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나름의 색깔이 뚜렷해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고 무엇보다 자율성을 확보해야 살 수 있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죠. 지자체 외풍이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부산영화제의 영향으로 영화제가 많아진 것에 대해선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영화제 덕분에 마련되죠. 또 지역에서 운영하는 영화제인 이상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부산영화제는 매년 대학 연구소를 통해 효과를 측정하는데 지난해 560억원의 경제파급 효과가 있었어요. 더 중요한 건 부산이 제조업이나 큰 기업이 없는 상태에서 영상산업이 주류 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이제 영상문화 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산 100억원 중 59억원을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아 쓸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부산영화제가 한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원사업이던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이 내년이나 내후년 준공됩니다. 아시아 영화 문화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할 곳이니 이상적인 운영방안이 마련돼야겠죠. 또한 지금까지 부산영화제를 이끌어온 기조, 즉 아시아의 젊은 감독,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좀더 발전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숨을 고른 김 위원장은 “셋째”를 유독 강조했다. 바로 재단법인화 문제였다. 정체성 유지의 기반은 자율성이라는 원칙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일 터였다. “부산영화제의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재단법인화하는 게 필요해요. 영상센터 준공 뒤에는 영화제를 재단으로 만들어서 기금이 1000억원 정도로 조성될 계획입니다.” 그는 로테르담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등 재단이나 기금이 재정을 뒷받침하는 영화제를 사례로 들었다. 이렇게 큰 성과와 과업을 앞두고 그는 홀연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2005년 10회 때 그만두려 했는데 영상센터 사업이 아직 미진해서 못했고, 지난해에는 주변에서 극구 말리고 해서…. 이젠 영상센터 준공도 눈앞에 있고, 미련을 계속 가지면 시기를 놓치게 되고 끝까지 미련을 못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또 그러다 보면 쿠데타 일어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 돌아다니면서 미리 다 얘기해놨어요. 올해 ‘페어웰 파티’ 하니까 꼭들 오라고요.” 단호한 말투 끝은 웃음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15년의 역사를 함께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물러난다. 부산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하는 데 온몸을 던진 그는 후임자가 부산영화제의 새 역사를 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5년간 부산영화제에서 활약해온 그의 모습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두주불사의 술꾼, 술을 끊다 그는 ‘술꾼’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의 한 유명 감독이 ‘평생 먹을 술을 하룻밤 동안 그와 마셨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술자리에서도 술 대신 녹차가 그 앞에 놓여 있다. “매일 폭음했는데 몇년은 더 살아야 할 거 아닌가 해서 하루아침에 뚝 끊어버렸죠.” 2006년 1월 우리나이로 일흔이 되던 해 끊어 4년9개월이 되어 간다고 했다. “평소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자서 마신 적이 없고, 마주 앉으면 물불 안 가리고 끝장을 내서 그런지 끊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네요.”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도 빠뜨리지 않았던 게 아침운동이다. “71년부터 새벽에 매일 테니스 치고 출근했어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하루 30~40분씩은 뛰거나 걷거나 운동을 했죠.” 일흔넷인 그에게 ‘정정하다’는 표현이 불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젊게 보였다. 이런 자기 관리가 15년 부산영화제를 이끌어온 기반임을 알 수 있었다. 집이 서울인 그는 1년의 절반은 국외에, 국내에 있는 시간 중 3분의 1은 부산에서 지내면서도 건강을 잘 유지해왔다. 그는 마음 역시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적이 없다’는 평가는 ‘색깔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평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인간관계에서도 극단적이지 않은 것, 화합을 전제로 하는 중용에 치중해서 살다 보니까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퇴임 뒤에는 서예와 한학, 그리고 역시 영화를 벗삼아 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60년대 초반에 서예로 국전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단기에 배워서 기초가 없어요. 시에 더 깊이 천착해 진짜 서예가로서 좋은 글씨를 쓰고 싶습니다. 해외 다니면서 현대미술을 많이 봐 현대 회화, 유화도 겸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보여주는 것보다 스스로 쓰고 그리면서 심취하는 게 중요해요. 영화도 대충 생각은 있지만 작품화될지는 모르겠네요. 친한 세계적 감독들이 많은데 그분들 만나 인터뷰도 하고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집념, 정신 등을 쭉 쫓아가 보면 다큐멘터리가 되는 셈이죠. 그렇게 한두 편 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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