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겊티켓 만들어 히트쳤어요”
한 공연물이 만들어질 때까지 들이는 공력은 어마하다. 작품 제작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안내방송, 작품 포스터, 졸작을 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쥐고 있어야 할 티켓, 그 어느것 하나 없인 공연은 필시 불구가 된다.
하지만 관객들은 조명보다 더 기계적으로 무대 위만 주목할 뿐이다. 이 시대 모든 포스터나 입장권은 외롭고 비루해지기 십상이다. 마치 하염없이 기다리다 물만 건너면 돌아보지도 않고 가는 ‘행인’의 ‘나룻배’처럼.
공연뒤 버림받는 ‘숙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극복 고강철(38)씨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반가웠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제일 먼저 달려갔죠. 하나도 버려진 게 없는 걸 보고 비로소 웃었어요. 공연이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너저분하게 버려지는 게 바로 티켓의 운명이었거든요.” 5년 전 민예총에서 주최한 ‘제7회 민족춤제전’에서 손바닥만한 광목천에 글자를 입혀 입장권을 만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콧방귀만 뀌어도 날아갈 엷은 종이를 버리고, 천조각을 티켓으로 사용하긴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다. 정성스레 휘갑치기되어있는 천안에는 여느 입장권과 다름없이 표값을 포함한 공연 기본 정보와 좌석 번호가 공란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벽에 걸면 그대로 작품이다. 디자이너 고강철. 배가 두 개다. 주로 기업홍보책자나 도록 등을 디자인하면서 ‘밥벌이’를 한다. 하지만 예술을 향해 주린 배는 무용, 연극, 미술 등 공연물의 포스터, 전단, 입장권을 디자인하면서 채워진다. 거기선 제약이 없다. “굳이 비싼 재료보다 주로 아이디어와 손품으로 질감 강한 티켓을 만들어요. 계약금은 똑같지만, 그래도 재료비로 들어가는 돈이 다른 이들보다 1.5배 정도 더 들어가서 수익은 거의 없는 편이죠.”
효과는 2~3배다. 공연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그를 반기는 이유가 어쩜 이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고씨의 창작샘을 자극하는 귀한 존재다. 예술을 하는 이들 간의 빈틈없는 작업궁합이다. 92년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 4학년 과제물로 임도완과 유홍영의 마임공연 팜플릿을 만들었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다 94년 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관객의 입장이 아닌 제작자 입장에서만 만드는 것들 투성이죠. 서열 따라 기계적으로 사진을 싣고 쓸데없는 인사말로만 채워 넣잖아요. 대단히 권위적입니다.” 말을 이어진다. “이성적 정보보다 감성적 정보가 더 중요한데도 편의만능으로 티켓이 만들어졌다 바로 버려지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오페라 팜플릿이나 김광석의 추모앨범에서 노랫말 하나하나를 음표화해 시청각화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작업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 컴퓨터 작업만 5일 밤낮 이어졌다. 귀엽게 딱지 모양으로 접어진 초대권, 조형물로 만들어진 공연 포스터 등 기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말 그대로 전시장이다. 실제 2년 전 이들로 전시(‘예술을 위한 디자인’)를 열기도 했다. “10명 중 한 명한테는 돈을 못 받아요. 순수예술이 그만큼 열악하거든요. 대신 그림으로 받기도 하고, 제 전시회 땐 무용수, 마임이스트 등이 자청해서 공연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달 공들인 작품을 주기도 해요. 쉬운 일 아니잖아요. 그렇게 에너지가 교환돼요.” 이젠 그는 관객들과 에너지를 교환하고 싶다.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하지만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인 것이다. 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극복 고강철(38)씨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반가웠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제일 먼저 달려갔죠. 하나도 버려진 게 없는 걸 보고 비로소 웃었어요. 공연이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너저분하게 버려지는 게 바로 티켓의 운명이었거든요.” 5년 전 민예총에서 주최한 ‘제7회 민족춤제전’에서 손바닥만한 광목천에 글자를 입혀 입장권을 만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콧방귀만 뀌어도 날아갈 엷은 종이를 버리고, 천조각을 티켓으로 사용하긴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다. 정성스레 휘갑치기되어있는 천안에는 여느 입장권과 다름없이 표값을 포함한 공연 기본 정보와 좌석 번호가 공란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벽에 걸면 그대로 작품이다. 디자이너 고강철. 배가 두 개다. 주로 기업홍보책자나 도록 등을 디자인하면서 ‘밥벌이’를 한다. 하지만 예술을 향해 주린 배는 무용, 연극, 미술 등 공연물의 포스터, 전단, 입장권을 디자인하면서 채워진다. 거기선 제약이 없다. “굳이 비싼 재료보다 주로 아이디어와 손품으로 질감 강한 티켓을 만들어요. 계약금은 똑같지만, 그래도 재료비로 들어가는 돈이 다른 이들보다 1.5배 정도 더 들어가서 수익은 거의 없는 편이죠.”
효과는 2~3배다. 공연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그를 반기는 이유가 어쩜 이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고씨의 창작샘을 자극하는 귀한 존재다. 예술을 하는 이들 간의 빈틈없는 작업궁합이다. 92년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 4학년 과제물로 임도완과 유홍영의 마임공연 팜플릿을 만들었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다 94년 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관객의 입장이 아닌 제작자 입장에서만 만드는 것들 투성이죠. 서열 따라 기계적으로 사진을 싣고 쓸데없는 인사말로만 채워 넣잖아요. 대단히 권위적입니다.” 말을 이어진다. “이성적 정보보다 감성적 정보가 더 중요한데도 편의만능으로 티켓이 만들어졌다 바로 버려지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오페라 팜플릿이나 김광석의 추모앨범에서 노랫말 하나하나를 음표화해 시청각화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작업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 컴퓨터 작업만 5일 밤낮 이어졌다. 귀엽게 딱지 모양으로 접어진 초대권, 조형물로 만들어진 공연 포스터 등 기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말 그대로 전시장이다. 실제 2년 전 이들로 전시(‘예술을 위한 디자인’)를 열기도 했다. “10명 중 한 명한테는 돈을 못 받아요. 순수예술이 그만큼 열악하거든요. 대신 그림으로 받기도 하고, 제 전시회 땐 무용수, 마임이스트 등이 자청해서 공연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달 공들인 작품을 주기도 해요. 쉬운 일 아니잖아요. 그렇게 에너지가 교환돼요.” 이젠 그는 관객들과 에너지를 교환하고 싶다.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하지만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인 것이다. 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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