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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역사란 과거 사건과 미래 목적의 대화

등록 2011-05-23 11:17수정 2011-05-23 11:33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통합논술 세미나]
<역사란 무엇인가> 1. 과거 사실과 역사적 사실
2. 역사와 위대한 인물, 3. 과학적 역사 vs 문학적 역사, 4. 역사와 진보, 그리고 미래
다음책: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책소개]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 출판되자마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현대 지식인의 필독서가 됐다.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1961년부터 20년간 영국 외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이후 <더 타임스> 부편집인, 옥스퍼드대학 정치학 교수를 지내는 등 이력이 다양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에 있다. 카는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했다”고 썼다. 카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다. 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금서로 묶이기도 했다.


[풀무질]

현대 서구에는 회의주의가 난무한다. 그러나 이는 현대 서구사회의 몰락 기운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진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저 회의주의자들 거의 모두가 몇 세대 동안 문명을 전진시키는 일에서 지도적이고도 두드러진 역할을 의기양양하게 수행했던 바로 그 지역이나 사회 계급에 속해 있다. 과거에는 자기 집단이 담당했던 역할이 이제는 다른 집단에게 넘겨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문명의 쇠퇴에 관한 지금의 모든 이야기는 그저 대학교수들이 옛날에는 하인을 부렸는데 이제는 직접 설거지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옛날의 하인들에게 교수들의 설거지는 진보의 상징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백인 지배의 상실은 대영제국의 옹호자들, 남아프리카의 백인 공화주의자들, 금광이나 동광 분야의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근심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보처럼 보일 수 있다.

획득형질이 사회적 진보의 기초

파괴와 쇠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에 의한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는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다. 즉 위기에 의해서 자신들의 안전과 자신들의 특권을 가장 현저하게 침식당해 온 엘리트 사회집단의 산물, 그리고 한동안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확실한 지배권을 박탈당해버린 엘리트 국가들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된 창도자들은 지식인들, 즉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그 사회의 지배집단의 이념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한 사회의 이념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이념인 것이다. 그 누구도 역전과 일탈과 중단 없이 곧장 일직선적으로 전진한 그런 종류의 진보는 없다. 따라서 가장 급격한 역전조차도 반드시 그 믿음에 치명타를 가하지 않는다. 진보의 시기뿐만 아니라 퇴보의 시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퇴보 이후의 전진이 똑같은 지점에서 혹은 똑같은 길을 따라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일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형질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바로 그 기초인 것이다. 역사란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하여 이뤄지는 진보라 할 수 있다.

진보는 한 지역이나 계급이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진행되지 않는다. 진보는 시간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확실히 연속적이지 않다. 되레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혹은 계급·민족·대륙·문명-은 다음 시대에도 그와 똑같은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그 집단이 전 시대의 전통,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등에 너무 깊게 물든 나머지 다음 시대의 요구와 조건들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집단에게는 쇠퇴의 시기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집단에게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로 인해서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자신이 그 위치에 어느 정도까지 묶여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얼마간 좌우된다.

둘째로,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에 대해서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의 이해에 다가설 때에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대화만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다.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 1920년대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오늘날의 역사가가 객관적인 판단에 더 근접해 있다. 아마 2000년의 역사가는 훨씬 더 근접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어떤 고정불변의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래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과정이 전진함에 따라서 발전하게 되는 그러한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만 의미의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지난 1세기 반 동안 노예제, 인종차별, 아동노동의 착취-이 모든 것이 한때는 도덕과는 무관하거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었다-를 일반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보라.

즉 역사가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현재의 역사도 객관적으로 제대로 서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가는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


[마치질]

유물사관과 기독교사관의 공통점

사관(史觀)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방법론을 말하는데, 역사의 진행 방향이 어떤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순환사관으로 역사를 회전하는 바퀴, 또는 원으로 본다. 둘째는 직선사관으로 역사가 곧게 미래를 향해 진행한다고 본다. 셋째는 역사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는 사관이다. 이 사관은 역사는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흥망성쇠를 반복하거나 혼돈 상태이기 때문에 교훈적이거나 유익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순환사관은 인간의 몸은 세상에 태어나 활동하다가 늙어 죽는 유기체이고, 자연의 계절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이런 사관은 동서양 모두에서 나타났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국가 정치체제가 돌고 돈다고 봤다. 원시군주정을 시작으로 왕정·참주정·귀족정·과두정·민주정·중우정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원래의 원시군주정으로, 이렇게 7개의 국가 정체가 한 원의 둘레를 궤도 삼아 영원히 반복 순환한다.

인도에서는 우주가 1만2000년마다 한 번씩 회전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가 4800년, 두 번째가 3600년, 세 번째가 2400년, 마지막이 1200년으로 모두 4시대가 주기적으로 돈다. 페르시아에서도 4시대가 반복한다는 사상이 강했다. 조로아스터교 경전에는 금·은·동·철의 시대가 반복 순환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서도 순환사관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서구의 몰락>을 쓴 슈펭글러는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기를 거쳐 늙고 결국 죽듯이 문명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치며, 오래전에 노쇠기에 접어든 서양 문명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패망으로 그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봤다. 영국의 아널드 토인비의 문명사관도 순환사관이다.

이에 비해 역사는 직선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진보사관의 원조는 기독교 사관이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역사가 끝날 때 예수가 재림해 영원한 벌을 받을 자와 영원한 생명을 가질 자를 최후 심판한다. 이게 바로 역사의 종말이고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는 새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대립 또는 투쟁에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를 거둬 지상천국이 이뤄진다는 것으로 종말론적 사관이라고도 한다.

이런 기독교 역사관의 하나님 위치에 이성을 갖다 놓은 게 근대 이후 등장한 계몽적 직선사관이다. 인간 사회는 인간 이성의 힘에 의해 무한하게 진보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성 중시를 극한으로 몬 사람이 헤겔(사진)이다. 그는 이성이 실체이자 세계를 움직이는 무한한 힘이며, 세상의 모든 것은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에 불과하다고 봤다. 헤겔은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이 그냥 죽 진행되는 게 아니라 정(正)·반(反)·합(合)의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했다.

헤겔 역사관의 정신 또는 이성을 물질로 대체한 게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과 충돌, 즉 물질적 조건의 내적 모순에 의해 발전한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라는 역사 5단계 설을 내놓았다.

공산주의 사회에 이르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종식된다는 건 기독교의 종말론과 똑같다.


[담금질]

역사책과 드라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조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대개 인자하고 현명한 학식 있는 군주로 그려진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정조가 민생의 안정과 문화 부흥에 힘썼고,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한마디로 정조는 개혁군주이며, 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로 묘사된다.

그러나 지난 2009년 2월 발굴된, 정조가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친필 편지 299통을 보면 꽤나 다르다. 이 편지에 나타난 정조는 ‘다혈질에 막후정치에 능한 노회한 정치가’다. 벽파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할 때 찬동했던 정파로 정조와 시종일관 대립했다고 알려졌으나 이 편지들은 그런 통설도 뒤집었다.

한 전문가는 정조를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는 국왕 지지 세력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다”라고 평가했다.

<정조실록>을 보면, 1798년 7월14일에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같은 해 8월28일에는 우의정에 임명했다. 그러나 2009년 공개된 편지를 보면 정조가 이 과정에서 20여 차례 비밀편지를 보내 심환지가 판서 사직소를 올린 뒤 다시 정승에 승진시키는 시나리오를 짜서 실행했다.

정조는 4차례에 걸쳐 올린 사직소의 문안까지 일일이 다듬어줬다. 1799년 3월 정조를 모해했다는 이유로 유배한 친족 화완옹주 석방 결정에 신하들이 반발하자, 정조는 사전에 편지를 보내 심환지도 그 대열에 끼게 한 뒤 파직시켰다가 정국이 안정되자 다시 복귀시키는 안을 제시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임금과 최고 중신이 서로 대립하는 척하며 ‘손발을 맞춘’ 정치공작을 벌인 셈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하를 가감 없이 평가했다. 예를 들어 정조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서영보에 대해서는 “호로자식”(胡種子)이라 하는가 하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학자 김매순은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고 혹평했다.

정조의 편지 공개는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의 주장을 곱씹게 만든다.

역사책은 과거의 사실을 이야기체로 서술한다. 한데 이야기체 역사가 가진 문제는 헤이든 화이트 및 최근의 몇몇 역사이론가들이 강조하듯, 역사 서술은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나 사건에서 출발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구성되자면 필연적으로 상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데 있다.

즉 모든 역사적 담론에 허구적 요소들이 담길 수밖에 없다.

김태경 <아하! 한겨레> 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김태경 <아하! 한겨레> 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정조의 이미지는 사료에 전부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의 틈을 메우기 위해 역사가가 상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정조가 벽파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주장해왔다. 정조가 죽은 뒤 조선 왕조는 급속하게 몰락했다. 따라서 ‘위대한 군주’ 정조라는 선(善)과 정조를 암살해 나라를 내부에서 무너뜨린 벽파라는 악(惡)은 크게 대비되고 이는 다시 정조의 위대성을 극대화했다. 한데 선과 악의 대립은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하지만 거꾸로 드라마와 역사(이른바 전문가에 의해 쓰인 역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김태경 <아하! 한겨레> 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벼리기]

1. 아래 지문을 읽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글을 쓸 때 아래 지문과 같이 생각할 경우 발생할 문제점도 반드시 언급하시오. (600자)

역사는 대체로 사람들이 한 일의 기록이지, 하지 못한 일의 기록은 아니다. 그러한 한에서 역사는 불가피하게 일종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다. 토니 교수는 역사가들은 ‘승리한 세력은 눈에 띄는 곳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집어삼킨 세력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현존하는 질서에 ‘불가피성이라는 외관’을 부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가의 작업의 본질이 아닐까? … 역사에서는 ‘오직 국가를 형성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주목을 끌 수 있다’고 한 헤겔의 유명한 말은 한 가지 형태의 사회조직에만 배타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해롭기 짝이 없는 국가숭배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마땅히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볼 때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것으로서, 그것은 역사 이전과 역사의 낯익은 구분을 표현하는 말이다. 상당한 정도까지 사회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만이 원시적인 야만인을 벗어나서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5장

2. 서기 16세기 이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서술해 보시오. (600자)

3. ‘풀무질’에 나오는 에드워드 핼릿 카의 설명을 토대로,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쇠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해 보시오. (800자)

4. ‘진정한 역사가란 어떤 사람인지’를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1200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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