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제작자 겸 감독이 영화배우의 이름을 대며 “돈을 너무 밝힌다”고 했다. 이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는 연예기획사들이 스타급 연기자 출연을 미끼로 거저 공동제작이나 지분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실명이 거론된 두 배우는 감독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연예기획사들은 일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제작자·제작사와 출연자·기획사의 다툼처럼 비친 이번 소동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 보인다. 이해당사자 양쪽 모두 일을 크게 벌려봐야 좋을 게 없다고 의견 일치를 본 듯하다.
이른바 ‘스타 권력화’는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류 등에 힘입어 돈이 모이고 시장이 넓어져가는 방송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 부문에서도 대단히 심각하다. 스타급 연기자들의 몸값이 날로 뛰어, 출연료가 드라마 전체 제작비의 80%까지 메우는 경우도 생겼다. 거꾸로 조연급 이하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떨어지고, 제작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제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됐다. 연기자들이 소속된 연예기획사가 “별다른 기여 없이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흔하다. 연예기획사가 직접 드라마 제작사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피디·작가·스태프들과 촬영 기자재 등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제작에 나선다면야 문제될 게 없지만, 연기자만 데리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에서 대어 쓰는 형식이라면 문제다.
이는 방송 콘텐츠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과도 무관치 않다. 급변하는 미디어·문화산업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격렬한 경쟁의 와중에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문화방송 방영을 앞두고 파행을 겪다 무산된 드라마 <못된 사랑>에서 다툼의 한 단면을 봤다. 스타급 연기자인 비와 고소영의 출연을 두고 분쟁했다. 출연료·대본 수정 등에서 방송사와 연예기획사·외주제작사 사이의 힘겨루기가 드러났다. 방송이 갈수록 스타급 연기자들에 의존하는 현상도 보여줬다.
시청자들이 볼 수 없는 ‘방송가의 뒷골목’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잘 알려진 인기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제작 주체가 어딘지를 보면, 연예기획사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반면, 잘못된 외주제작시스템을 고쳐보겠다며 호기 있게 나서 사전전작을 마친 드라마가 방송사 편성에서 배제 되는 광경에서, 방송사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이 느껴진다.
이런 일들이 지속되면 가장 큰 손해는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스타들이 대본까지 뜯어고치는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은 시간과 감정을 낭비한다. 높은 출연료 대느라 끌어들인 숱한 피피엘 상품에 광고와 드라마의 구분이 사라진다. 스타 캐스팅 때문에 외주제작에 기대면 방송사의 자체 제작 시스템이 무너지고, 시청자들이 방송사에 사용권을 위임한 전파의 실질적 헤게모니는 공공성에 무감각한 이들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이들 다툼이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외주제작사의 ‘밥그릇 싸움’인 측면이 있음에도 이렇게만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밥그릇 싸움’에는 시청자의 자리가 없다. 그래서 출연료 상한선을 합의하거나, 합리적 방식으로 연기자 등급을 세분화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놓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댈 시점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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