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들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미래 유물들이다. 한 시민이 내놓은 아들 돌맞이 한복(사진 위)과 서울시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당시 쓰였던 갖가지 홍보물들.
“‘하의 실종’ 패션, 올여름 유행했던 레인부츠 같은 것도 수집할 수 있지요.”
의류업계 쪽 말이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박현욱 유물관리과장이 꺼낸 이야기다.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사람들은 요즘 유행 패션 트렌드와 무상급식 주민투표, 현재 진행중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시대 유물이 고고하게 숨쉬고 있을 법한 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최근 이 박물관의 유물 보관 수장고를 찾았다. 갓 도착한 따끈따끈한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연 눈에 띄는 건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 홍보물. ‘나쁜 투표 거부로 무상급식 지킵시다’라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와 ‘추방! 복지 포퓰리즘’을 제목으로 단 유인물 등이 나란히 놓였다. “현재 벌어지는 사회적 사건들 가운데 전환기와 관련된 주요 유물들을 적극 모으고 있어요. 무상급식 투표 역시 복지 정책과 관련한 중요한 갈림길일 수 있어서 관련 물품을 수집한 거죠. 서울시장 보궐선거 홍보 물품도 관련 기관 협조를 얻어 확보할 예정입니다.”
안진용 학예사가 수장고 안 물품을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말한다.
최근 박물관 동네에서는 현대사 자료 정도로 취급받던 일상 물건들이 엄연한 문화유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름하여 ‘미래 유산’. 지금 일상에서 접하는 유형의 생활용품 등과 무형의 생활사 자체 등을 일컫는 말이다. 박현욱 과장은 “당장 희소성을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10년 또는 100년 뒤 미래 세대가 보기에는 흥미로운 문화유산이 될 수 있어 미래유산 수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국립민속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2012년 문을 열 대한민국역사관의 수집과 조사 정책에 눈에 띄게 반영되고 있다. 미래 유산 수집 기관들이 늘어나자 고서·옛풍물 시장에서 현대사 관련 자료나 유물들 값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
흔할 것 같아도, 미래 유산 수집은 쉽지 않다. 특히 1950~60년대 생활사 관련 유물들은 오히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에 더 잘 보존돼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로 올수록 생활사나 일상용품은 빠르게 생겨나고 없어지고 있는데, 체계적인 수집·관리 정책이 그동안 미비했던 탓이다. 서울역사박물관도 2007년에야 미래 유산 수집을 본격화했다. 박물관쪽은 현재 무형 유산인 서울시민 일상사에 대한 시민들의 구술을 녹취하고 기록하는 ‘도시민속지’ 발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60년 된 간장병도 ‘미래 유산’으로 복원했다. 샘표식품은 지난 6월 이 간장병을 보관해오다 옮기는 과정에서 깨뜨린 뒤 복원을 부탁했다. “유물로는 가치가 떨어질 수 있지만, 기업 차원에서는 억만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유물”이라며 양필승 보존과학과장은 사례도 받지 않고 병을 복원해 줬다. 딸과 손자를 위해 손수 지은 옷, 34년 역사의 주택복권, 사라지는 도장을 새기는 도구 등도 훗날 전시될 이 박물관의 미래 유산 목록에 올라있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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