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허영만 씨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한식당 달개비에서 열린 신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0년 만에 장편사극 ‘말에서…’ 내놓은 허영만 화백
영웅 이면엔 아내까지 버린 ‘치밀성’
재탕 이야기 안만들려 10년 공들여
“박영석 대장 비보에 마음고생 컸다”
영웅 이면엔 아내까지 버린 ‘치밀성’
재탕 이야기 안만들려 10년 공들여
“박영석 대장 비보에 마음고생 컸다”
“신기하잖아요? 통신도 없던 시절이고 문자도 없었던 나라인데 그 넓은 땅을 지배해나갔다는게. 참 이해하기 어려웠고 궁금했어요. 그리고 용감한 영웅 같지만 자기 마누라를 두고 도망가기도 했던 비겁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우선 살아야 다음에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에 투철했던 거죠.”
허영만(64·사진) 화백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음식만화 <식객> 이후 8년 만에 새 장편을 선보였다. 제목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월드김영사).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의 영웅, 칭기스칸 이야기다.
8일 모처럼 신작을 내놓으며 마련한 기자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그는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오랫 동안 절친했던 고 박영석 대장 때문이었다. “기자 간담회는 좋은 일인데 박 대장 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치네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웹 연재도 친구의 죽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허 화백이 칭기스칸 만화를 구상했던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사이 몽골에 3번 다녀왔다. “칭기스칸은 많이들 아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어떤 작가가 쓴 이야기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익히 아는 이야기의 재탕이 안되도록 연구를 많이 하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만화를 더 그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기력 떨어지기 전에 시작했습니다.”
현재 한 스포츠 신문과 포털 사이트에 동시 연재되고 있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1년을 넘어 2년째로 접어들었다. 3년간 연재할 계획으로, 이번에 책으로 1, 2권이 나왔고 모두 12권으로 완결될 예정이다. 허 화백으로선 출세작 <각시탈>과 그 후속격인 <쇠퉁소>(1982) 이후 30년 만의 장편 사극이다. 오랜만에 사극을 그리다보니 힘들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 그 이상 힘들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이 만화 그리면서 소설가가 될 걸 왜 만화가가 됐나 후회하고 있어요. 전쟁 나면 한 쪽에 2만명씩 최소 4만명이 싸우는데 소설은 그냥 4만명이 싸웠다고 글로 묘사하면 되잖아요. 만화는 적어도 100명 정도는 등장하는 장면을 그려야 해요. 정말 죽을 지경이죠. 그나마 몽골이 초원지대여서 배경이 단순해서 다행이에요(웃음). 앞으로 사극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먼저 나온 1~2권은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칭기스칸의 초년 고난기를 다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아내를 적에게 빼앗기고, 노예가 되었다가 탈출하는 등 갖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인물이란 점에 그는 주목한다. 조조와 유비, 제갈공명의 모습을 모두 지닌 이 복잡한 인물을 허 화백은 한마디로 “치밀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자기 자신보다 큰 덩어리를 보는 사람”이 바로 칭기스칸의 본질이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칭기스칸에 대한 책의 한 구절 “칭기스칸은 평생 전쟁터를 떠나지 않았고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평생 만화를 그린 이 거장도 “인터넷 연재에 달리는 댓글은 절대 읽지 않는다”며 영원히 극복하기 어려운 창작의 부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독자들은 소소하게 한 마디 지나치며 하는 말이겠지만 비수로 와서 꽂혀요. 일일이 신경쓰다보면 당장 이야기 전개에도 고민하게 되고, 참고 지나쳐도 그리는데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예 안봅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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