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 역을 맡은 바리톤 김성길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서울시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나이 든 성악가가 오페라 무대에 서는 남다른 소회를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페라 ‘라 트라…’ 출연 김성길
칠순돼서도 드물게 현역
줄리아드 유학파 1세대
배역 해석능력 깊어졌는데
‘제르몽’역 아직도 긴장돼
칠순돼서도 드물게 현역
줄리아드 유학파 1세대
배역 해석능력 깊어졌는데
‘제르몽’역 아직도 긴장돼
‘몸이 악기’인 성악가는 기악 연주자에 비해 은퇴가 이른 편이다. 신체가 노화함에 따라 ‘악기’의 기능도 덩달아 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성악가는 환갑을 넘기면 젊은이들의 각축장인 오페라계를 떠나 독자적인 음악성을 강조하는 가곡 무대에 서거나 교육에 전념하곤 한다.
극히 드물지만 예외도 있다. 해외에서는 최근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전향한 노장 플라시도 도밍고(70)가 그렇고, 한국에서는 바리톤 김성길(70ㆍ전 서울대 교수)씨가 그렇다. 김씨는 서울시오페라단이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라 트라비아타>에서 남녀 주인공 알프레도(귀족 청년)와 비올레타(화류계 여성)의 사랑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인물, 제르몽 역할을 맡았다.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제르몽은 비올레타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과 헤어질 것을 부탁하고, 이로 인해 두 연인은 엇갈림과 오해를 반복하게 된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의 서울시오페라단 연습실 근처에서 만난 김씨는 “거의 6년만의 오페라 출연인데다가 국내에서는 나이 든 성악가가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경우가 특히 드물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라 트라비아타>는 데뷔 이후 50회 이상 공연한 작품인데 여전히 긴장이 됩니다.”
김씨의 출연 소식은 클래식 음악팬들 사이에서 이미 화제가 되고있다. 나이 지긋한 음악팬들은 ‘줄리어드 유학파 1세대’로 1970년대 국내 오페라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를 아직도 기억한다. 김씨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당시 오페라계에서 일명 ‘버터 목소리’로 불렸다.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함께 다닌 세계적인 소프라노 바바라 핸드릭스도 그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바리톤 가운데 하나”라며 극찬한 바 있다.
그는 옛 얘기를 꺼내자 “이제는 버터가 다 녹아버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매섭게 가르쳤던 제자들과 한 무대에 서려니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배역에 몰입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분명 세월만큼 더 깊어졌죠. 젊어서 제르몽 역을 맡을 땐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지금처럼 표현하지 못했거든요.”
김씨는 자신을 낮췄지만, 관계자들은 그와 함께 연습중인 후배들이 대선배의 건재한 모습에 큰 자극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성악을 시작한 지 50여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지도 40여년이 지났다. 먹고살기조차 어렵던 시절 시작한 그의 음악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대책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의 눈은 늘 낮은 현실이 아닌 저 높은 곳의 음악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 3때까지 가족의 바람대로 의대를 지망했는데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아서 작은 삼촌의 도움으로 두 달간 성악 지도를 받았어요. 부모님 몰래 서울대 성악과에 원서를 쓰고 합격한 뒤에 말씀드렸죠. 대학을 졸업한 뒤엔 유학할 만한 형편이 안 됐는데 그냥 줄리어드에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다행히 저를 뽑은 교수님이 전액 장학금을 받게 해주셨지만, 못 받더라도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이 있었죠. 처음 콩쿠르에 나갈 때도 그랬어요. 상금을 많이 준다기에 생활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떨어질 거다’ 싶은데도 무작정 나갔어요. 뜻밖에 1등상을 주기에 ‘저들이 내 사정을 알았나’ 생각했죠.(웃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그이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아직 고음은 잘 나오는데(웃음). 테크닉적으로는 물론 젊을 때만큼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 무대에서 절 원해야겠죠. 아직도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와요. 지난 여름, 페스티벌 때문에 프랑스의 니스 해변에 갔는데, <라 트라비아타> 2막에서 제르몽이 간절하게 부르는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가 어떤 느낌인지 그제서야 진정으로 알겠더라고요.” 글 김소민 객원기자 som@naver.com,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경찰이 가로막은 ‘김진숙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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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때까지 가족의 바람대로 의대를 지망했는데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아서 작은 삼촌의 도움으로 두 달간 성악 지도를 받았어요. 부모님 몰래 서울대 성악과에 원서를 쓰고 합격한 뒤에 말씀드렸죠. 대학을 졸업한 뒤엔 유학할 만한 형편이 안 됐는데 그냥 줄리어드에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다행히 저를 뽑은 교수님이 전액 장학금을 받게 해주셨지만, 못 받더라도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이 있었죠. 처음 콩쿠르에 나갈 때도 그랬어요. 상금을 많이 준다기에 생활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떨어질 거다’ 싶은데도 무작정 나갔어요. 뜻밖에 1등상을 주기에 ‘저들이 내 사정을 알았나’ 생각했죠.(웃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그이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아직 고음은 잘 나오는데(웃음). 테크닉적으로는 물론 젊을 때만큼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 무대에서 절 원해야겠죠. 아직도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와요. 지난 여름, 페스티벌 때문에 프랑스의 니스 해변에 갔는데, <라 트라비아타> 2막에서 제르몽이 간절하게 부르는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가 어떤 느낌인지 그제서야 진정으로 알겠더라고요.” 글 김소민 객원기자 som@naver.com,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경찰이 가로막은 ‘김진숙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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