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의 흥행을 계기로 영화계·대중음악계 등에서 90년대 학번 세대의 향수가 새 문화적 코드로 떠올랐다.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수지)이 승민(이제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명필름 제공
영화 ‘건축학개론’ 흥행몰이
90년대 가요 리메이크 열풍
옛 댄스곡 트는 주점도 인기
“30대 문화소비층 향수 분출”
90년대 가요 리메이크 열풍
옛 댄스곡 트는 주점도 인기
“30대 문화소비층 향수 분출”
대중문화판에 90년대 학번 세대의 향수 바람이 거세다. 96학번 대학생의 첫사랑 추억을 더듬은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 11일 만인 1일 관객 160만명을 넘어섰고, 영화에 쓰인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 등 90년대 가요들이 다시금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다.
1일 영화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의 예매 현황을 보면, <건축학개론> 관객은 30대가 45%로 가장 많고, 20대(28%)와 40대 이상(24%)이 뒤를 잇는다. 현재 상영 중인 다른 영화들의 30대 비율보다 2~4%가량 높다.
이 영화에는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 90년대 가요와 삐삐, 무스, 휴대용 시디(CD)플레이어, 세미힙합 패션 등 90년대 추억의 물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트위터에선 “90년대 학번들의 추억의 뇌관을 건드리는 영화”라는 평이 많다.
서울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이 영화를 본 김현진(37)씨는 “90년대 시절이 멀지 않게 느껴졌는데, 이제 우리 세대도 추억과 향수의 대상이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다른 관객 심기철(38)씨는 “첫사랑과 대학 신입생 시절도 떠오르고, 내 청춘도 그리워 술 생각이 났다”며 웃었다.
최근 영화판에서 90년대 향수가 화두가 된 건, 90년대 가요·영화 등에 익숙한 30대 중후반 세대가 현재 주요 문화소비층으로 자리잡은데다, 그 시절 20대를 보낸 감독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지난 1월 개봉해 401만명을 모은 <댄싱퀸>에서도 남녀 주인공이 90년대 초반 ‘엑스(X)세대 학번’으로 나와 그 시절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나도 90학번이라 시나리오를 쓸 때 그때 기억에 많이 기댔다”며 “90년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넘어가는 과도기여서 (영화적으로도 다룰) 소재가 많은 시대”라고 말했다. 이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피시통신을 다룬) 영화 <접속>이 97년 개봉했을 때만 해도 최첨단 소재라고 했는데, 그 세대 사람들이 이제 청춘을 돌아보는 세대가 됐다”고 했다.
‘기억의 습작’으로 상징되는 90년대 가요들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도 한창이다. 임재범, 김경호, 장혜진 등 당시 맹활약했던 가수들을 다시 불러낸 문화방송 <나는 가수다>뿐 아니라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경쟁적으로 90년대 곡들을 리메이크하고 있다. 에스비에스 <케이팝스타>는 아예 90년대 명곡 부르기를 생방송 미션으로 제시했다.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지은이 김영대씨는 90년대 음악에 대해 “그 이전과 차별화된 ‘한국 대중음악의 뉴웨이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그 시절 음악이 지금 소환되는 현상은 단순한 복고 열풍의 한 맥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재 대중음악의 문법과 미학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문화적인 결이 맞닿아 있다는 게 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놀이문화도 90년대 바람이 거세다. 서울 홍대 앞 음악주점 ‘밤과 음악 사이’는 대표적인 90년대 학번 세대의 놀이터다. 홍대 앞 다른 댄스클럽에 들어가기 멋쩍은 30대 직장인들에게 노이즈, 철이와 미애, 클론 등 당시 댄스곡들을 틀어주는 이곳은 타임머신이자 해방구다. 입구에는 ‘88년 이후 출생자 출입자제 부탁드립니다’란 글귀가 붙어 있다. 2005년 서울 한남동에서 처음 문을 연 이후 지난해부터 줄 서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서울 강남·신천·건대·이태원, 부산까지 직영점이 퍼졌다. 밤과 음악 사이의 김진호 대표는 “손님 중 30대가 절반을 넘고, 20대 후반이 30%, 40대 이상이 20%가량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작가는 “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이 올해 데뷔 20돌을 맞은 사실이 상징하듯, 당시 10, 20대 초반이던 문화향유의 주역들이 이제 기성세대로 편입해 그 시절을 추억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90년대 학번 세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상품의 공급과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민 송호진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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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 직장인들의 명소로 자리잡은 서울 홍대 앞 주점 ‘밤과 음악 사이’. <한겨레> 자료사진
90년대 대중음악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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