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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5권 팔려도 러브콜…2NE1 씨엘아빠는 ‘마성의 저술가’

등록 2012-08-04 11:15수정 2012-08-04 11:20

를 펴낸 ‘잡다구리 수집가‘ 이기진 교수와 오래되고 낡은 물건으로 가득한 그의 연구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를 펴낸 ‘잡다구리 수집가‘ 이기진 교수와 오래되고 낡은 물건으로 가득한 그의 연구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문화] 2NE1 리더 씨엘(CL) 아빠, 물리학자 이기진 교수의 파리 체류기 <꼴라쥬 파리>
물리학, 골동품, 그림동화 넘나들며 10여권 책 펴낸 마성의 저술가를 만나다
팔리지 않는 책을 펴내는 물리학자가 있었다. 기껏 책을 만들었는데 고작 5권을 판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출판계 마성의 남자인걸까. 그에게 자꾸만 책을 내자 제안하는 편집자들이 있었다. ‘2NE1 씨엘 아버지’ 이기진 교수(서강대 물리학과)는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쓴다.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그는 유아·어린이 작가로 분류돼 있다. 이번에는 어른들을 위한 책을 펴냈다. <꼴라쥬 파리>(디자인하우스 펴냄)는 프랑스 파리 체류기지만 이 또한 일종의 그림책이며 동화다. 원색의 그림이 빠지지 않았고, 낯선 도시에 대한 열망을 자꾸만 건드리는 이야기는 동화의 마력 못지않다.

2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파리가 좋다

이 교수는 1992~99년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시절, 딸 채린(씨엘)과 하린에게 보여줄 한글 교재가 마땅치 않자 공책에 동화를 썼다. 그림도 그려넣었다. 그의 말마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깍까를 사막에 보냈다가 남극에 보냈다가 정글에 보냈다가 하는 식이었다. 집에 놀러온 어느 편집자가 그 동화책을 보더니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박치기 깍까>(2004)를 펴냈다. 그 책을 본 아르메니아 친구가 자기 나라에서도 책을 내보자고 했다. 이어 프랑스, 대만, 일본 등 총 8개국에서 줄줄이 책을 냈다. 세계적으로 책을 내는 작가 대열에 선 셈이다. 그러나 판매의 범위는 넓었지만 매출은 얕았다. 한국판 <박치기 깍까>는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됐다. 출판사는 창고에 남은 책 100여 권으로 원고료를 대신했다.

그는 상처받지 않고 꾸준히 책을 냈다. 그림책, 영어단어책, 본분을 잊지 않고 물리학과 관련한 책(<맛있는 물리> <제대로 노는 물리법칙>)도 썼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관심으로 <컬렉션, 발견의 재미>라는 책도 펴냈다. 문제의, 달랑 5권 팔린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본 5명의 독자 중 출판 편집자가 있었다. 그 또한 이 교수의 마성에 걸려들었다. 책을 내자 제안했다. 그렇게 <꼴라쥬 파리>가 나왔다.

<꼴라쥬 파리>는 이 교수의 파리 체류기다. 그는 1991년 연구원으로 1년6개월 동안 파리에 머물렀고, 지난해 파리 연구소의 초청을 받고 대학 연구년을 통째로 그곳에서 보냈다. 다 해서 2년6개월이다. 일본에서 7년, 러시아·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도 연구 생활을 했지만 유독 파리에 애정을 갖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좋아요. 집 밖을 나가면 모든 게 조화스럽고 어쩔 땐 하나의 무대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하게는 한국의 이태원·효자동이 좋아요. 건물이 높지 않고, 시장도 있고, 살아 있는 분위기가 들잖아요.”

지난해 파리 체류의 첫 2주는 큰딸인 씨엘과 함께했다. 아버지와 딸은 늦잠을 자다 눈을 뜨면 밥을 먹고, 걸어다니다 미술관에 가고, 그러다 피곤해지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딸은 하루라도 더 있고 싶다며 2주에 하루를 더해 보름을 채우고 돌아갔다. 2살에 아버지를 따라 처음 파리에 갔던 씨엘이 20년 만에 그곳에서 그토록 편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속의 이런 문장과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매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날 거닐었던 파리를 나이 들어 다시 와도 같은 풍경이다. …하루아침에 뭔가를 헐거나 없애버리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새로운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파리에 있다.”

이 교수는 파리에서의 1년을 촘촘하게 보냈다. 일과를 마치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일상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책을 크게 요약하면 두 가지다. 오래된 물건과 음식. 이 교수는 잡다한 물건을 수집하길 좋아한다. 그의 연구실은 물리학자의 방이라기보다는 컬렉터의 방이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들이 돈이 안 된다며 폐기하려는 물건을 넙죽 받아오고, 친구의 아이들이 커서 필요 없어진 장난감을 싸들고 와 연구실에 풀어놓는다. 그는 오래된 물건이 주는 위안이 좋다. “파리에서 집 근처에 벼룩시장이 있어서 자주 갔어요. 이게 언제 만들어졌고 이 안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상상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그게 물리학적으로 영감이 되기도 하고요.” 물리학적 영감이라니? “머리를 비우는 거죠. 물리학이라는 직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다시 머리를 채울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언젠가 씨엘과 요리책을 낼까

2NE1
2NE1

그리고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웃의 부엌을 들여다보고 바게트며 버터, 샌드위치를 말하는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해서 군침 돌게 만든다. 카페에서 시켜먹었던 크로크무슈와 커피는 딸 씨엘과의 추억이다. 서울 효자동에 있는 200년 된 한옥에서 사는 그는 요리와 음식에 애정이 깊다. 씨엘 또한 시간을 쪼개 요리를 배우러 다닐 정도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면 다음은 요리책이 될 수도. 10권이 넘는 잡다한 책을 펴낸 이 교수는 “이제 그만 써야지. 책을 너무 많이 낸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도 다음 책 계획을 말했다. 언젠가 우리는 ‘효자동 요리사’가 된 이 교수를 혹은 요리하는 씨엘을 책 속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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