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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북쪽 인상 바꾼 ‘벗’ 독후감 들려주고 싶었지만…

등록 2005-08-07 17:45수정 2005-08-07 17:51

지난 달 20일 자정께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만난 <벗>의 작가 백남룡(56)씨.
지난 달 20일 자정께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만난 <벗>의 작가 백남룡(56)씨.
북에서 만난 작가들 ④ 베스트셀러 ‘벗’ 백남룡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다지만,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기간 중 북쪽 작가들과 만나서 어울릴 자리는 충분치 않았다. 지난달 20일의 환영 연회와 24일의 환송 만찬, 그리고 23일 새벽 백두산 행사를 전후한 무렵에나 북쪽 작가들과 말을 섞을 수 있었을 뿐, 나머지 대회 기간 동안 남과 북의 작가들은 따로 움직였다. 북쪽은 참여 작가들의 명단을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23일 저녁 묘향산에서 남북 작가들이 함께할 예정이었던 ‘민족문학의 밤’ 행사가 취소된 것은 무엇보다 큰 아쉬움을 주었다.

아쉬움 속에 스치듯 일별한 북쪽 참가자 중에 <벗>의 작가 백남룡(56)씨가 있다. 그를 만난 것은 대회 첫날인 20일 자정 즈음의 인민문화궁전 앞이었다.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연회가 끝나고 산회하던 길에 그와 마주쳤다.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낀 차림이었다. 우선 사진부터 급히 찍고 대회의 다음 일정에도 계속 참여하는지 물어 보았다.

“같이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업이 있어서리….”

무언가 미련이 남은 듯 말끝을 흐린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남쪽에서도 출간되어 널리 읽힌 북의 베스트셀러 소설 <벗>(1988)의 작가 백남룡씨에게 독후감을 들려줄 기회는 결국 잡지 못했다.

백남룡씨는 194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6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부터 10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했으며 그 뒤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다. 1979년 <조선문학>에 단편 <복무자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대표작인 중편 <벗>과 장편 <60년 후>(1985)를 비롯해 1985년의 우수 단편소설로 뽑힌 <생명>과 <퇴근길에서>, <세대주> 등의 작품을 썼다.

북한 사회 결혼·이혼 풍습 그려

<벗>은 남대현씨의 <청춘송가>와 더불어 남쪽 독자들 사이에 북쪽 소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도 예술단 성악배우 채순희와 기계공장 선반공 리석춘 부부, 그리고 이들의 이혼 심리를 담당한 판사 정진우를 중심 인물 삼아 북쪽 사회의 결혼생활과 이혼 풍습의 일단을 보여준다. 소설은 이혼 청구서를 내러 온 채순희와 정진우의 만남에서 시작해 순희-석춘 부부의 연애 시절과 지난 결혼생활, 현재의 문제 등을 소개한 다음 정진우의 적극적인 개입 하에 두 사람이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관료주의 등 치부 과감히 노출

인기 성악가와 선반공 부부 사이에 있을 법한 괴리와 마찰의 실감나는 서술, 세련된 자연 묘사 및 그것과 인물 심리와의 자연스러운 조응, 관료주의와 노동 천시와 같은 북쪽 사회의 내밀한 치부의 과감한 노출 등에서 <벗>은 탁월한 성취를 보인다. 대학 입시 사정에서 작용하는 인정과 권력의 문제를 다룬 <생명>, 관료주의와 세대간 갈등을 소재로 삼은 <60년 후> 등의 작품에서도 백남룡씨는 북쪽 현실의 문제점을 솔직히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이 너무도 쉽게,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쪽으로 해결 또는 봉합된다는 데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소설의 한계가 있다. 대표작 <벗>만을 보아도 순희-석춘 부부의 이혼 청구는 “사회의 세포인 가정의 운명과 나아가서 사회라는 대가정의 공고성과 관련되는 사회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여져서 결국 가정을 지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두 부부와 주변 사람들을 두루 만나 얘기를 듣고 설득한 끝에 남편과 아내 양쪽의 양보와 이해를 끌어내는 정진우 판사의 헌신적 노력은 그 자체로 상찬할 만하다. 그러나 “가정은 인간의 사랑이 살고 미래가 자라는 아름다운 세계”라는 식의 규범적 정의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헤아림은 역시 충분치 못한 느낌이다.

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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