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던 고향…가 닿으셨는가
그리던 고향…가 닿으셨는가
지난해 9월 3일 지병으로 타계한 윤중호 시인(1956~2004)의 유고 시집 <고향 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시집에는 죽음을 염두에 둔 듯한 구절들이 차고 넘친다. 시집 전편에 걸쳐 그는 ‘고향 길’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고향은 유년기의 추억이 어린 충북 영동군 심천면 어름을 뜻할 뿐만 아니라 차라리 죽은 뒤에야 돌아갈 수 있을, 생과 사의 경계 너머에 있는 어느 아득한 지경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덧없어, 참 덧없어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지친 행상길”(<시>),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영목에서>) 또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넘실넘실 춤추는 꽃상여 타고 가시던/길(…)/우리 모두 돌아갈 길”(<고향 길 1>) 같은 구절들이 그러하다.
‘죽음’ 예감한듯한 구절들 가득
20일 영동서 1주기 추모문학제
먼저 이승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과 이문구를 기리며 생전의(!) 그가 쓴 시를 읽는 기분은 기묘하고도 착잡하다.
“비설거지할 참도 마다하고/곰새 내렸다, 히뜩/골안개만 피우고 사라지는/여우비/처럼, 황망하게 가셨네./개갈 안 나는 세상이라구/비죽이 웃으시드니,/슨상님 혼자 손 털고 뒷짐 진대유?/세상은 여적 그 세상인디…”(<나헌티는 책음감 있이 살라구 허시등만 - 이문구 슨상님께> 전문)
고향 말의 능청스럽고 느긋한 어감을 살려 쓴 시들은 이밖에도 <노루목 우리 김형> <구장터 외갓집> <임진강에서> 등으로 다채로운데, 이런 면모는 고향과 그곳 사람들로 대표되는 인간의 원형적 심상을 향한 그리움의 형식적 표출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시집의 맨 뒤에는 그의 유고시 <가을>이 인쇄체가 아닌 육필 그대로 실려 있어 읽는 이의 눈길을 한동안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때 이르게 자신을 방문한 사신()을 향해 지상과의 이별을 위한 잠깐의 준비 시간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왜 모르겠어요./잠깐만요. 마지막 저/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무덤 가는 길만 한번 더 보구요.//이.제.됐.습.니.다.”(<가을> 전문)
시인의 고향 영동의 여성문화회관에서는 오는 20일 오후 3시30분~6시 <고향 길> 출판기념회를 겸한 시인의 1주기 추모문학제가 열린다. 동료 문인 강병철·최은숙·한창훈·유용주씨의 유고시 낭송과 노래, 평론가 정과리씨의 강연 등이 이어지며, 시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전과 유품전, 도서전 등이 부대행사로 마련된다. (02)335-2743.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20일 영동서 1주기 추모문학제
그리던 고향…가 닿으셨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