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 간 중개자 넘어
기획에서 유통까지 적극적 행보
웹소설 조정래 등 기성작가 신작 연재도
웹툰 현재 150편 연재…월 1700만명 읽어
기획에서 유통까지 적극적 행보
웹소설 조정래 등 기성작가 신작 연재도
웹툰 현재 150편 연재…월 1700만명 읽어
“전에는 만화만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피자 배달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어요. 네이버가 아마추어 만화가들을 위한 ‘터’를 만들어줘서 이젠 만화 연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웹만화가 배진수씨)
“이미 다른 분야에서도 네이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데, 문화 분야에서마저 여러 장르의 콘텐츠들이 네이버로만 몰릴 경우 문화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화판에 새 활력과 수익을 만들어줄 든든한 친구가 온 것일까, 아니면 막강한 힘으로 새로 줄을 세우려는 권력이 등장하는 것인가.
네이버가 대중문화 전반에서 새로운 중심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만화, 문학, 음악 등의 영역에서 일련의 새로운 시도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장르별 관련 정보와 무료 콘텐츠 제공, 그리고 기존 문화 생산·유통 주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구실을 해오던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문화 콘텐츠 기획과 생산, 유통의 판을 짜고 있는 것이다.
현재 네이버에 접속하는 이는 하루 평균 1800만명. 압도적인 포털 사이트 1위인 네이버의 영향력이 실로 막강한 탓에 네이버의 문화 콘텐츠 강화 행보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 장르소설ㆍ주류문학 쌍끌이로 영향 확대 네이버는 지난 1월 무협·판타지·로맨스 등 장르소설을 연재하는 ‘네이버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했다. 순수 주류 문학에 밀려 변방의 서자 취급을 받았던 이 분야에 본격적인 판이 깔렸다. 네이버 웹소설은 누구나 창작 소설을 올릴 수 있는 ‘챌린지 리그’와 네이버로부터 고료를 받는 프로 작가들이 요일별로 소설을 올리는 ‘요일별 웹소설’ 코너로 구성된다. 챌린지 리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면 작가에겐 상금 3000만원과 등단 기회가 주어진다.
네이버는 요일별 웹소설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미리보기나 완결보기 등 유료 서비스도 마련해 작가들이 고료 이외의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했다. 2차 저작권도 작가에게 주고, 소설이 영화·드라마로 제작될 경우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에서 만화와 문학 서비스를 관장하는 김준구 팀장은 “그동안 마니아층만 즐겼던 장르소설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창작자 환경이 개선되므로 작가 저변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 시작 두달이 지난 현재 챌린지 리그에는 한달 평균 1만8000여건(하루 평균 600건)의 장르소설이 올라오는 등 작가들의 참여가 폭발적이다.
주류 문학에서도 네이버는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25일 조정래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정글 만리> 연재를 시작했다. 조 작가가 미출간 신작을 포털에 연재하는 것은 처음이다. 앞서 네이버는 2007년부터 박범신의 <촐라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파울루 코엘류의 <승자는 혼자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녀에 대하여> 등 인기 높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독점 연재해왔다.
■ 웹 문화의 꽃 만화, 확실한 수익원으로 굳히기 만화는 여러 문화 분야 중 네이버의 영향력이 가장 확실히 자리잡은 분야다. 2005년 시작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는 만화는 현재 150편 정도로, 오프라인 만화 잡지들이 12~15편 정도의 만화를 연재하는 것에 비춰보면 네이버 혼자 만화 잡지 10개 분량을 쏟아내는 셈이다. 월 1700만명이 네이버 웹툰을 방문해 무료로 만화를 본다. 그 여파로 독자들이 돈 내고 사는 만화 잡지를 외면하면서 수십개에 이르던 만화 잡지는 이제 몇 개 정도만이 남았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전보다 많은 작가들이 새 활동 무대를 얻을 수 있게 됐고, 고료 역시 인기도에 따라 더 많이 받게 되는 긍정적 효과도 크지만, ‘만화=무료’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점 때문에 만화계에선 웹툰을 유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는 최근 ‘페이지 프로핏 셰어’(PPS)라는 새 수익모델을 도입했다. 만화 콘텐츠로 생기는 수익을 작가들과 나누는 방식이다. 만화 장면 속에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를 넣는 피피엘(PPL) 기법으로, 해당 웹툰의 클릭수가 높아지면 광고단가도 높아진다. 여기에 인기 만화 ‘베스트 컬렉션’과 연재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외전’ 등의 유료 판매 모델을 추가로 도입했다. 발생 수익은 최소한 절반 이상 작가에게 돌아간다.
■ 음악도 네이버로?-비주류·틈새 콘텐츠 생산 네이버는 멜론·엠넷 같은 음원 사이트인 ‘네이버 뮤직’도 운영하고 있다. 듣기 서비스 자체만 보면 다른 음원 사이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를 동원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네이버 뮤직 음악듣기 서비스로 연결해 차별화한다.
요즘 단연 화제가 되는 건 음악 생중계 서비스다. 가수들의 약식 공연을 피시(PC), 스마트폰으로 생중계한다. 지난해 시작해 아이돌 가수와 인디 음악인 위주로 진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대형 스타들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국보급 가수 조용필마저 지상파 방송이 아닌 네이버를 통해 다음달 신곡 무대를 최초로 공개하기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요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지상파 방송의 대안 매체로까지 일컬어질 정도다. 네이버는 생중계 서비스를 클래식, 판소리 등으로도 범위를 넓히고 있다.
비주류·틈새 음악 관련 콘텐츠도 늘리고 있다. 인디 음악과 재즈 음악 연주 영상을 직접 제작해 매주 올리는 ‘온스테이지’, 전문가 평가를 거쳐 우수한 새 음반을 소개하는 ‘이주의 발견’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돌 가요에 밀려나 소외받던 장르들이 재조명된다는 점에서 음악계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포털 사이트에서는 주류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음악에 대한 검색도 많다. 이런 음악에 대한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 직접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음원 서비스와 연계하면서 수익 구조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 영화도 네이버로-맞춤 서비스 다음달 시작 영화에서 네이버는 정보와 평점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특히 영화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평점 코너다.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려는 관객들이 거의 대부분 네이버 평점을 참고하고 있다.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네이버는 다음달부터 ‘맞춤형 서비스’ 사업을 시작한다. 영화에 대한 선호도를 입력하면 방문자 취향을 분석해 개봉 영화와 추천 브이오디(VOD) 목록을 뽑아주고, 목록의 영화를 클릭하면 바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영화계에선 네이버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엄청난 만큼 영화 상품의 유통 채널이 늘어나고 소비가 확대되는 효과와 함께 네이버의 영화 서비스가 기존 웹하드 다운로딩 영화 서비스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 동반자냐, 공룡이냐-기대와 우려 교차 네이버의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문화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급력 때문에 초미의 관심사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작가와 직접 계약하고 책을 출간해 출판계와 마찰을 빚었던 적이 있었고, 구글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절판됐지만 저작권은 유효한 옛 도서들을 전자책화해 디지털 도서관을 만들려다 독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두 거대 권력이 된 인터넷 기업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대한 문화계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네이버의 최근 행보가 국내 문화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주목된다. 일단 수익을 제대로 거두기 힘들었던 만화, 문학 쪽 창작자들은 네이버란 새 시장이 열리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로맨스 소설 작가 백묘(31)씨는 “장르소설 연재 사이트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는데, 네이버 덕에 작가들이 새 둥지와 새 유통경로를 찾았고 안정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도 “방문자수가 가장 많은 네이버가 웹툰으로 트래픽을 올려 광고 수익 모델을 만들어 냈으므로 다른 업체들은 제2, 제3의 수익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만화계의 파이가 커지고 지평도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만큼 우려도 많다. 기존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네이버는 ‘콘텐츠=무료’라는 인식만 강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포털사이트를 통해 시장이 커진다는 논리를 펴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료 콘텐츠를 다루는 출판사나 문화 잡지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또한 네이버 우산 안의 작가들과 나머지 작가들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도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유선희 서정민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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