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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샤넬’보다 ‘채널’이 더 땡기는 이유는?
눈속임을 넘은 ‘페이크 패션’의 진화

등록 2013-04-24 15:43수정 2013-04-24 15:50

페이크 패션 “예술성 가미한 미적 경향을 의미하는 추세”
1980년대 셔츠나 스웨터 안으로 넣어 입는 턱받이 넥워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하얀 폴라 티셔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목부터 가슴팍까지만 따로 뗀 패션 아이템으로,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한 ‘나이키’, ‘프로스펙스’ 등의 상표가 박혀 있곤 했다. ‘목티’라고 불리던 이 아이템은 2000년대 중반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의 촌스러운 복학생 옷차림으로 다시 등장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2004년엔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를 ‘파마’(PAMA) 또는 ‘임마’(IMMA)로 바꿔 쓰는 패러디 티셔츠가 유행이었다. 거대한 권위에 한 방을 먹이는 우스개 이미지로 큰 각광을 받았다.

이처럼 패션 아이템을 교묘하게 눈속임하거나 비튼 상품들을 광범위하게 ‘페이크 패션’으로 정의할 수 있다. 2007년 환경과 동물 사랑의 뜻을 담아 스텔라 매카트니 같은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인조가죽이나 인조모피(페이크 퍼)처럼 비슷한 효과를 낸 원단들을 사용하면서 인조모피 패션 열풍을 낳았다. 이와 같은 페이크 패션 바람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적 의미 외에 경제불황의 여파라는 분석도 따라붙었다. 패션저널리스트 홍석우씨는 “패션계가 ‘가짜’라는 뜻의 ‘페이크’란 말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은 요즘 들어 예술성을 가미한 하나의 미적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뜻이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2013년, 올해 거리를 강타하고 있는 페이크 패션은 단순한 눈속임에 그치지 않고 재미(펀, fun)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덧붙여 재치 넘치는 유희를 시작했다. 장기 불황 속에서 심리적 여유를 찾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패션에 나타난 ‘페이크 펀 디자인’은 눈을 의심하게 하는 시각적 부조화에 즐거움과 재미까지 더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기법들은 이제 다양한 소재와 질감을 대체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뉴밀레니엄시대 패션에 나타난 ‘페이크 펀’ 디자인’, 나현신·김현주, <한국디자인포럼> 34호 참조)

글로벌 패션 브랜드 ‘자라’(ZARA)는 폴리와 비스코스 혼합 소재에 뱀피(파이톤) 프린트를 넣어 한층 가볍고 부드러운 착용감을 자랑하는 남성 블레이저를 내놓았다. 여성용 구두에서는 엘라스틴 비닐 소재로 뱀피의 느낌을 재현했다.

‘재현 문화’의 하나로서 페이크 펀 패션에서 요즘 가장 뜨고 있는 것은 명품을 패러디하거나 팝아트적인 감성을 살려 현대 예술 장르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아이템들은 단순히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명품 디자이너를 존경(오마주)하면서 고급 제품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대신 위장과 반전의 흥미로움도 함께 북돋운다. 글로벌 브랜드인 값비싼 명품을 못 사는 계층이 아니라 명품을 적극 소비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패피’(패션 피플)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디어매거진> 남현지 편집장은 “최근 아이돌 가수가 ‘꼼 데 가르송’을 패러디한 ‘꼼 데 퍽다운’(comme des fuckdown)이라고 적힌 티셔츠와 모자를 착용했고, 샤넬(CHANEL)의 로고를 본떠 ‘채널’(CHANNEL)이라고 적은 티셔츠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 출신으로 알려진 루슬란 카라블린이 만든 뉴욕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에스에스유알’(SSUR)의 제품이다. 유명 글로벌 명품들의 패러디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상표조차 옛 러시아 또는 러시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러스’(Russ)를 거꾸로 써서 비꼬았다.

2007년 시작한 홍콩 브랜드 ‘진저’는 에르메스 버킨백이나 켈리백의 모양을 프린트해서 만든 ‘진저백’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프린트 기법으로 디자인한 이 백은 앤디 워홀의 작품 같은 팝아트의 요소를 가져왔다. 버킨백이나 켈리백이 1000만원을 넘는 고가인 반면, 진저백은 10만~20만원대면 구할 수 있다. 이 브랜드는 2010년 국내에 본격 상륙하면서 전략적으로 서울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 3개 고급 편집숍에서만 판매를 시작했고, 강남 주부들 사이에서 ‘럭셔리 세컨드백’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백을 수입·유통해온 ㈜서와유나이티드 쪽은 “지난 3월1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판매를 시작한 뒤 하루 매출 2000만원이 넘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진짜 럭셔리 브랜드 백을 가진 소비자들이 ‘서브백’으로 컬렉션을 만들어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짜 가죽처럼 관리가 어렵지 않아 가볍고 실용적인 나일론 소재로 나들이나 바캉스, 쇼핑을 할 때도 유용하다. 이밖에 동물의 얼굴을 프린트한 가방이나 눈 모양을 프린트한 아이 마스크는 재미를 위주로 한 아이템들로 눈길을 끈다. 회사 쪽은 “경기 불황에도 면세점 판매가 여전하고, 백화점 가방 멀티숍에서도 월 1위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와이셔츠나 블라우스의 넥칼라를 따로 떼 만든 ‘페이크 칼라’도 지난해 가을 이후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 룩’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배우 소이현씨가 이를 착용한 뒤 ‘비즈(반짝이) 칼라’ 또는 ‘페이크 칼라’, ‘목걸이 칼라’ 등으로 불렸다.

요즘 유행하는 ‘비브칼라’(bib collar), 즉 턱받이 칼라라고 불리는 넥칼라는 1980년대의 넥워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연출할 수 있는 형태와 색감이 훨씬 복잡하고 다채롭다. 넥칼라에 리본이나 넥타이를 곁들였기 때문에 스웨터나 카디건 같은 옷 속에 집어넣으면 마치 리본이나 넥타이를 따로 매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만든 오즈세컨 쪽은 “지난해 가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완판 아이템’이다. 우리 브랜드는 독특한 색과 취향·유머를 키워드로 한 믹스 앤 매치 레이어드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는데, 비브칼라는 위트있고 독특하며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젊은이들에게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오즈세컨, 자라, 진저, 할리우드 빈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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