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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문화계 강타하는 ‘고전의 돌풍’ 왜?
40~50대 문화소비층 “가벼움 지겹다”

등록 2013-05-30 20:23수정 2013-05-31 14:22

‘레 미제라블’ ‘위대한 개츠비’
뮤지컬·영화로 흥행 릴레이
연극 ‘부활’ ‘파리대왕’도 주목

중첩된 위기 속 ‘삶의 진리’ 갈증
40~50대들 문화소비 주력군으로
‘경박단소’ 콘텐츠에 대한 반작용

“과학에서는 최신 연구서를 읽으라. 그러나 문학에서는 가장 오래된 책을 읽으라. 고전은 항상 새로운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에드워드 리턴은 ‘고전’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고전이란 과거의 박제품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현대적 의미로 재탄생될 수 있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2013년 한국 문화예술계에선 고전의 부활이 두드러진다. 유명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과 뮤지컬, 영화들이 잇따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고전이 특정 해에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고전 <레 미제라블>의 1862년 초판 표지.
고전 <레 미제라블>의 1862년 초판 표지.
■ 영화로, 뮤지컬로, 연극으로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영화화한 <레 미제라블>은 지난해 연말 개봉해 외화로선 이례적으로 590여만명을 동원했고, 영화의 히트에 힘입어 뮤지컬 <레 미제라블>도 줄곧 예매율 1~2위를 지키고 있다. 또한 16일 개봉한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연극에선 톨스토이의 <부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안한 <라오지앙후 최막심>,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등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관심을 끌고 있다.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호프의 희곡 작품이 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희곡 대본이 아닌 고전 소설들이 연극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산울림 소극장은 올해 1~3월 에드거 앨런 포와 프란츠 카프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생텍쥐페리, 현진건 등의 명작 소설을 낭독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뮤지컬 쪽에선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다음달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원작 고전 소설들의 판매도 크게 늘었다. 1962년 국내에서 처음 완역된 뒤 50여년 만인 지난해 11월에 재출간된 <레 미제라블>은 지금까지 13만권이 팔렸다. 몇 개 출판사가 비슷한 시기 출간한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2권이 진입했을 정도다. 문학동네 정민호 과장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우리 출판사에서만 올해 들어 4만부 가까이 팔렸다”며 “영화나 뮤지컬 작품 시작에 맞춰 원작 소설과 함께 마케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듯하다”고 말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개막에 앞서 27일 북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나 지난 11일 그리스협회가 <그리스인 조르바> 연극 개봉에 맞춰 카잔차키스의 삶과 문학을 살펴보는 행사를 연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무엇이 고전으로 눈을 돌리게 했나? 김성숙(42)씨는 올해 초 5권짜리 <레 미제라블>을 사서 읽은 뒤 다른 고전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86세대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대선 이후 ‘역사는 진보한다’는 진리에 의문을 품고 괴로워했는데,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긴 시각과 호흡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고전을 통해 흔들리던 나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되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기에 고전을 통해 삶의 지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신자유주의 붕괴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 정보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 소외 등 중첩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진리’에 목말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 문학이 이러한 대중의 욕구를 다 해소해주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고전에 눈을 돌리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고전의 재발견’은 최근 계속된 ‘인문학 열풍’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많은 단체들과 기업들까지 나서 ‘인문학 강좌’를 만들고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스터디 모임’까지 꾸리는 등 지난 몇년 동안 인문학 열풍이 형성됐고, 자연스럽게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풀이다. ‘인문학 카페’ 이관호 사무국장은 “중·고등학교는 입시를 위한, 대학은 취업을 위한 관문이 돼 버린 지 오래된 현실에서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짚고, “최근의 고전 열풍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1925년 출간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초판 표지와 영화의 한 장면.
1925년 출간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초판 표지와 영화의 한 장면.

■ 40대와 50대, 고전으로 회귀하다 40~50대가 새로운 문화 소비층으로 등장한 것도 ‘고전 열풍’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경우, 20대 관객들은 20%에 불과했고 40대 이상 관객이 예매율의 30~40%를 차지하면서 뮤지컬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도 다른 뮤지컬과 달리 40대 이상 관객이 30%에 이를 정도다. 연극 <부활>도 40~50대 부부 관객과 중년 여성 관객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은 “소비력이 있는 40~50대가 문화를 향유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삶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도 관객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고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아진 것은 결국 40~50대의 문화욕구에 견줘 뛰어난 희곡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연극 <부활>의 고선웅 연출가도 “현대인들이 이 세대의 가벼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정 의식과 보편적 주제에 대한 향수를 고전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1900년에 출간된 톨스토이의 <부활> 영문 초판 표지와 연극의 한 장면.
1900년에 출간된 톨스토이의 <부활> 영문 초판 표지와 연극의 한 장면.

■ 가벼운 작품은 이제 지겹다 문화예술계를 지배하는 가벼운 콘텐츠에 대한 반작용이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50대의 경우에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삶의 두 번째 시기를 맞이하면서 자기 성찰과 재충전의 목적으로 고전에서 길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출판사 민음사의 이미현 홍보기획부장은 “요즘 50대는 신체적인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정신 연령이 젊고 지적 욕구가 높아 고전 같은 검증된 콘텐츠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비오엠 코리아의 김옥진 공연기획팀 과장은 “최근 들어 ‘무게감 있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추세”라며 “이런 현상은 <레 미제라블>, <위대한 개츠비> 등의 인기에서 보듯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흐름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열풍 속에 문화산업계 특유의 과당 경쟁과 중복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기호 소장은 “저작권이 없는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대형 출판사들이 책값을 50% 넘게 할인 판매해 출판시장이 혼탁해지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며 “고전문학 시장을 넓히기 위한 일종의 ‘로스 리더’(미끼상품)전략인데, 지나친 경쟁은 자칫 오랜만에 불어온 고전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글 유선희 정상영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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