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라디오 피디와 디제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미래광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유쾌한 문화반란을 꿈꾸는 김형준(오른쪽)씨와 고민석씨. 함께 놀고 싶은 사람은 언제라도 환영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16> 문화기획 손잡은 두 전직 피디
<16> 문화기획 손잡은 두 전직 피디
백수가 된 둘은 ‘미래광산’이란
팟캐스트와 카페를 차렸다
‘광산팟콘’이라는 공연도 열었다
“성공이나 야망과는 거리 멀어요
재밌게 놀고 싶은 분 연락 줘요” 서울 홍대앞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 뒤쪽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두 남자의 캐릭터를 그린 조그만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잡초가 딱 보기 좋을 정도로 돋아난 좁은 골목이 나오고 그 끝에 대문이 보인다. 표지판에 따르면 “해발 37m”를 올라야 당도할 수 있는 ‘미래광산’. 겉보기에는 카페지만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이곳은 두 남자의 방송국이자 한판 놀이를 펼쳐내는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1992년 <시비에스>(CBS) 라디오 피디로 입사한 김형준(49)씨.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비용절감을 위해 외부 진행자를 대거 정리하던 회사는 그에게 디제이까지 맡을 것을 권했다. 처음엔 쑥스러워 고개를 저었지만, “네 맘대로 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 “오케이” 했다. 그는 오후 2시 프로그램 <에프엠 팝스>를 제작하면서 직접 마이크도 잡았다. 1995년 <에스비에스>(SBS) 티브이 예능 피디로 입사한 고민석(44)씨. 고교 시절 밴드에서 기타를 쳤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 그는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수습기간 동안 음악 프로그램 5개 중 4개가 없어지는 걸 보고는 결심했다. ‘라디오로 옮겨야겠다.’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입사 6개월 만에 라디오 피디로 옮겼다. 당시 에이엠 방송만 하던 에스비에스 라디오에 97년 에프엠 방송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두 남자가 서로 알게 된 건 97년. 둘이 잘 통할 거라며 누군가가 소개해줬다. 음악과 노는 건 물론 특히 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둘을 끈끈하게 이어줬다. “저희는 클럽이 아니라 도저히 춤출 수 없을 것 같은 술집에서 춤추길 좋아하죠.”(김형준) “이렇게 춤으로 잘 통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했어요.”(고민석) 2000년 <시비에스> 노조가 당시 권호경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김씨는 방송 현장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게 됐다. 그러던 중 고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나랑 방송 같이 하자.” 회사에 사표를 낸 김씨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에스비에스> 라디오 오후 4시 프로그램 <팝스클럽 1077> 디제이를 맡았다. 담당 피디는 고씨였다. 둘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고씨 역시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김씨도 제작에 일부 참여했다. “첫곡만 우리가 준비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즉석 신청곡으로 이어갔어요. 음악 중심으로 꾸리면서 대본도 없이 즉흥 멘트를 했죠. 청취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뮤지션들이 특히 많이 들었고, 회사 신입사원들이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꼽았을 정도로 호평 받았어요.”(고민석) “그 시절이 우리 둘의 ‘화양연화’ 같은 시기였죠.”(김형준) 하지만 프로그램은 1년 반 만에 폐지되고 만다. 김씨는 2002년 친정 <시비에스>로 돌아가 다시 <에프엠 팝스> 제작과 진행을 맡았다. 그렇게 5년이 흐른 2007년 김씨는 문득 반복되는 일상처럼 매너리즘에 빠져 방송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쉴 때가 됐구나.’ 일을 그만두고 놀았다. 짬짬이 출판과 교육 일도 했다. 고씨도 2011년 퇴사했다. “평피디에서 관리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고 그는 말했다. 백수가 된 두 남자는 다시 만났다. “같이 뭐라도 해봅시다.” 우선 ‘미래광산’이라는 이름부터 정했다. 소중하게 묻혀 있는 뭔가를 캐내보자는 의미란다. 지난해 3월 스마트폰 등으로 들을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인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저작권 문제로 음악을 틀 수는 없었지만, 음악을 소재로 떠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음악 얘기를 주로 하다가 나중엔 주제 없이 그냥 재밌게 잡담하는 식으로 바꿨어요. 들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막하는 방송이죠.”(고민석) 지난해 5월에는 같은 이름의 카페도 차렸다. “일부러 숨은 골목길로 들어와 아지트를 만들었어요. 이곳에서 팟캐스트도 녹음하고, 뜻 맞는 사람들과 놀기도 하죠. 카페 운영으로 돈도 벌면 좋겠지만,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수준이에요. 그래도 단골이 조금씩 늘고 있어 그리 비관적이진 않아요. 뭐, 당장 굶는 건 아니니까요.”(김형준) 둘은 ‘광산팟콘’이라는 기획공연도 해오고 있다. 팟캐스트와 콘서트를 결합한 무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열었다. 가을방학, 짙은, 최고은, 원모어찬스 등 실력파 음악인이 무대에 섰다. 2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여는 세번째 광산팟콘에는 싱어송라이터 이지형과 밴드 소란이 출연한다. 티켓은 단돈 1만원. 그나마 수익을 전액 인디밴드 공연 제작에 쓸 거란다. 5일 열린 미국 팝 듀오 ‘컬러 오브 클라우즈’ 내한공연도 주최했다. 7~8일 경기도 파주 임직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열리는 ‘파주 포크 페스티벌’ 기획·운영에도 참여했다. 레이블까지 차려 3인조 밴드 썬더볼트의 싱글도 곧 발매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카페에서 사진전도 열 예정이다. “우리들은 성공, 야망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그냥 뭐든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죠. 문화예술과 관련한 모든 걸 전방위적으로 하려고 하는데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깃털 같은 수준이죠.”(고민석) “뭐가 됐든 미래광산에서 재밌게 놀아보고 싶은 분들은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우리를 마음껏 이용해주세요.”(김형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팟캐스트와 카페를 차렸다
‘광산팟콘’이라는 공연도 열었다
“성공이나 야망과는 거리 멀어요
재밌게 놀고 싶은 분 연락 줘요” 서울 홍대앞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 뒤쪽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두 남자의 캐릭터를 그린 조그만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잡초가 딱 보기 좋을 정도로 돋아난 좁은 골목이 나오고 그 끝에 대문이 보인다. 표지판에 따르면 “해발 37m”를 올라야 당도할 수 있는 ‘미래광산’. 겉보기에는 카페지만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이곳은 두 남자의 방송국이자 한판 놀이를 펼쳐내는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1992년 <시비에스>(CBS) 라디오 피디로 입사한 김형준(49)씨.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비용절감을 위해 외부 진행자를 대거 정리하던 회사는 그에게 디제이까지 맡을 것을 권했다. 처음엔 쑥스러워 고개를 저었지만, “네 맘대로 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 “오케이” 했다. 그는 오후 2시 프로그램 <에프엠 팝스>를 제작하면서 직접 마이크도 잡았다. 1995년 <에스비에스>(SBS) 티브이 예능 피디로 입사한 고민석(44)씨. 고교 시절 밴드에서 기타를 쳤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 그는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수습기간 동안 음악 프로그램 5개 중 4개가 없어지는 걸 보고는 결심했다. ‘라디오로 옮겨야겠다.’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입사 6개월 만에 라디오 피디로 옮겼다. 당시 에이엠 방송만 하던 에스비에스 라디오에 97년 에프엠 방송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두 남자가 서로 알게 된 건 97년. 둘이 잘 통할 거라며 누군가가 소개해줬다. 음악과 노는 건 물론 특히 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둘을 끈끈하게 이어줬다. “저희는 클럽이 아니라 도저히 춤출 수 없을 것 같은 술집에서 춤추길 좋아하죠.”(김형준) “이렇게 춤으로 잘 통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했어요.”(고민석) 2000년 <시비에스> 노조가 당시 권호경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김씨는 방송 현장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게 됐다. 그러던 중 고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나랑 방송 같이 하자.” 회사에 사표를 낸 김씨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에스비에스> 라디오 오후 4시 프로그램 <팝스클럽 1077> 디제이를 맡았다. 담당 피디는 고씨였다. 둘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고씨 역시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김씨도 제작에 일부 참여했다. “첫곡만 우리가 준비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즉석 신청곡으로 이어갔어요. 음악 중심으로 꾸리면서 대본도 없이 즉흥 멘트를 했죠. 청취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뮤지션들이 특히 많이 들었고, 회사 신입사원들이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꼽았을 정도로 호평 받았어요.”(고민석) “그 시절이 우리 둘의 ‘화양연화’ 같은 시기였죠.”(김형준) 하지만 프로그램은 1년 반 만에 폐지되고 만다. 김씨는 2002년 친정 <시비에스>로 돌아가 다시 <에프엠 팝스> 제작과 진행을 맡았다. 그렇게 5년이 흐른 2007년 김씨는 문득 반복되는 일상처럼 매너리즘에 빠져 방송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쉴 때가 됐구나.’ 일을 그만두고 놀았다. 짬짬이 출판과 교육 일도 했다. 고씨도 2011년 퇴사했다. “평피디에서 관리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고 그는 말했다. 백수가 된 두 남자는 다시 만났다. “같이 뭐라도 해봅시다.” 우선 ‘미래광산’이라는 이름부터 정했다. 소중하게 묻혀 있는 뭔가를 캐내보자는 의미란다. 지난해 3월 스마트폰 등으로 들을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인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저작권 문제로 음악을 틀 수는 없었지만, 음악을 소재로 떠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음악 얘기를 주로 하다가 나중엔 주제 없이 그냥 재밌게 잡담하는 식으로 바꿨어요. 들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막하는 방송이죠.”(고민석) 지난해 5월에는 같은 이름의 카페도 차렸다. “일부러 숨은 골목길로 들어와 아지트를 만들었어요. 이곳에서 팟캐스트도 녹음하고, 뜻 맞는 사람들과 놀기도 하죠. 카페 운영으로 돈도 벌면 좋겠지만,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수준이에요. 그래도 단골이 조금씩 늘고 있어 그리 비관적이진 않아요. 뭐, 당장 굶는 건 아니니까요.”(김형준) 둘은 ‘광산팟콘’이라는 기획공연도 해오고 있다. 팟캐스트와 콘서트를 결합한 무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열었다. 가을방학, 짙은, 최고은, 원모어찬스 등 실력파 음악인이 무대에 섰다. 2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여는 세번째 광산팟콘에는 싱어송라이터 이지형과 밴드 소란이 출연한다. 티켓은 단돈 1만원. 그나마 수익을 전액 인디밴드 공연 제작에 쓸 거란다. 5일 열린 미국 팝 듀오 ‘컬러 오브 클라우즈’ 내한공연도 주최했다. 7~8일 경기도 파주 임직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열리는 ‘파주 포크 페스티벌’ 기획·운영에도 참여했다. 레이블까지 차려 3인조 밴드 썬더볼트의 싱글도 곧 발매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카페에서 사진전도 열 예정이다. “우리들은 성공, 야망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그냥 뭐든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죠. 문화예술과 관련한 모든 걸 전방위적으로 하려고 하는데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깃털 같은 수준이죠.”(고민석) “뭐가 됐든 미래광산에서 재밌게 놀아보고 싶은 분들은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우리를 마음껏 이용해주세요.”(김형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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