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출됐던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어보(왕실의례 때 쓰던 도장)
미군이 한국전때 종묘서 훔쳐
혜문스님·국회 반환촉구 노력
LA카운티박물관 “돌려주겠다”
분실어보 42점은 행방 몰라
혜문스님·국회 반환촉구 노력
LA카운티박물관 “돌려주겠다”
분실어보 42점은 행방 몰라
* 어보 : 왕실도장
미국에 유출됐던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어보(왕실 의례 때 쓰던 도장·왼쪽 사진)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해온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LACMA, 라크마) 쪽은 지난 19일(현지시각) 이곳을 방문한 안민석 민주당 의원과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 대표인 혜문 스님 등에게 반환 의사를 밝혔다. 이 어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서울 종묘에서 빼돌린 어보들 가운데 하나로, 라크마가 2000년 현지 경매 시장에서 구입했다. <한겨레>가 이 박물관이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전시중이란 사실을 처음 밝히며 환수 교섭의 필요성을 제기(2010년 8월30일치 2면)한 이래 3년여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프레드 골드스틴 라크마 수석부관장은 안 의원과 혜문 스님 등을 만난 자리에서 “어보가 종묘에서 불법 반출된 사실이 분명하므로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말했다고 안 의원 쪽은 전했다. 골드스틴 부관장은 조만간 한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 반환 일정과 방식을 논의하고 싶다는 뜻도 나타냈다. 라크마 쪽은 또 “어보가 불법 반출된 사실이 객관적 증거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졌으므로 반환하기로 했다”는 성명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어보는 이르면 올해 안에 한국에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쪽은 “외국 박물관과 협상을 벌여 도난 문화재를 되찾게 된 첫 사례”라며 “외교 경로를 통해 라크마 쪽과 협의해 빠른 시일 안에 어보의 환수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문정왕후 어보는 높이 6.45㎝, 가로·세로 각 10.1㎝의 크기의 금동제 인장이다. 거북 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고, 도장을 찍는 인면에는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렬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란 명문이 돋을새김돼 있다. 문정왕후(1501~1565)는 중종의 둘째 왕비로 아들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당시 국정을 주도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547년 명종이 경복궁 근정전에 나가 문정왕후의 존호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 어보도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보는 궁중 의례 때 쓰던 역대 임금과 왕족들의 도장으로 종묘에 보관되어 왔으나 한국전쟁 때 미군 병사가 수십개를 훔쳐간 것으로 추정된다. 1956년 정부는 당시 파악한 분실 어보 47개의 목록을 주미대사를 통해 미 국무부에 신고했으나, 87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도움으로 반환된 3점과 2011년 서울에서 발견된 공혜왕후 어보 1점, 이번에 환수될 문정왕후 어보를 뺀 다른 분실품들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한겨레> 보도로 문정왕후 어보의 소장처가 알려진 뒤 국내 문화재단체와 정치권에서는 꾸준히 환수운동을 벌여왔다. 혜문 스님은 미국 메릴랜드 국립문서보관소의 마이크로 필름 기록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서 미군의 문화재 불법반출 사건 기록을 찾아냈으며, 안 의원 등과 함께 라크마를 수시로 방문해 도난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반환을 촉구해왔다. 라크마의 어보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종묘 여섯번째 방에 있다는 뜻의 ‘육실대왕대비’라는 붓글씨를 또다른 증거로 확보하기도 했다. 안 의원도 지난 6월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라크마의 반환 결정엔 한국 검찰이 지난 8월 미국에 유출된 국내 최초의 근대 지폐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 1점을 현지 수사 공조로 환수할 당시 문정왕후 어보에 대해 미국 사법기관의 수사를 요청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영희 노형석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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