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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체제유지 위해 서로 이용…공범관계 단절해야”

등록 2013-10-02 19:38수정 2013-10-02 21:27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오른쪽) 파리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와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나 정치와 철학, 공산주의, 북한과 남한 체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오른쪽) 파리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와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나 정치와 철학, 공산주의, 북한과 남한 체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알랭 바디우-홍세화 대담
프랑스 현대철학의 석학이자 좌파 지식인인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가 지난달 25일 한국을 찾았다. 2010년부터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로보이 지제크와 함께 여러 나라를 돌며 열고 있는 ‘공산주의의 이념’(한국행사 제목:‘멈춰라 생각하라’)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서다. 지난달 30일 격월간 정치비평지 <말과 활>의 홍세화 발행인이 바디우 교수를 만나 정치와 철학, 공산주의, 북한과 남한 체제의 문제점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바디우는 ‘이석기 사태’ 등 최근의 한국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대담은 서울 강남구 이비스앰배서더호텔 미팅룸에서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바디우는 컨퍼런스 참석, 쌍용차 지지 침묵시위, 대중강연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2일 한국을 떠났다.

홍세화(이하 홍) 글로벌 자본주의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금 ‘공산주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알랭 바디우(이하 바디우)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의 법칙이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두가지밖에 없다. 이는 중요한 근본적인 선택이다. 최소한 다른 세계에 관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꿈이 아닌, 이성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 우리의 언어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관해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과거 소련 등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새로운 공산주의’는 어떤 것인가?

바디우 어떤 의미에서 모든 국가는 보수적이다. 국가의 기능 자체가 보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독재를 통해 공산주의로 전환한다는 생각은 실현불가능한 생각이다. 국가가 커다란 변화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공포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은 힘밖에 없기 때문이다. 힘이 국가의 정의다.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진정한 공산주의 운동을 만드는 것은 국가와 국가가 아닌 어떤 것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아닌 어떤 것은 대중운동일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는 하나의 과정이다. 공산주의는 어떤 정부의 행위가 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경제적 변화를 이뤄내기는 했지만, 공산주의 운동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중단됐다. 공산주의가 중단됐다고 해서 죽은 것은 아니다. 되살리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

 당신은 진정한 정치는 ‘국가 바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가권력을 잡지 않고 국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당신의 이런 주장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바디우 내가 이야기한 것은 권력을 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조직이 대중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국가의 권력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공산주의 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대중운동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정치조직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기계가 돼서는 안된다. 정치조직은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일으키는 조직이 돼야 한다. 따라서 권력의 문제는 대중운동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해야지, 그 역은 안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당신은 ‘당 없는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의 좌파정치는 거의 완전히 대의제에 포박돼 있는 상황이다.

바디우 우리는 대의제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대단히 자세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야 한다. 대의제 정치시스템의 효과 중 하나는 대중적인 정치운동이 완전히 정치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정치가 언제든 대변돼야 한다고 본다. 전문가인 정치인에 의해서 대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래된 어떤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민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는 생각 말이다.

한국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체제는 공산주의와 전혀 무관한 군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체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신의 이런 판단은 어떤 근거에 기반한 것인가?

바디우 북한은 하나의 왕조를 구성하고 있다. 아버지 이후에 아들이 아버지가 된다. 대중이 수동적으로 하나가 된다. 대중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결코 창의적이고 집단적인 행위의 작용을 통해서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는 것은 김일성 사상이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동양적인 전제 정치의 한 예다. 이런 특이성이 계속되는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놓여있는 지정학적 영향 때문이다.

남북 바라보는 시각
남한이 억압도구로 북 이용하듯
북한 역시 체제 반대파 처벌 비슷

새로운 공산주의란
국가 주도행위 아닌 대중운동
정치조직이 권력획득 기계 아냐

이 시대 철학이란
자기 삶의 방향 새롭게 정하는
용기있는 생각·행동 돕는게 철학

북한에 대한 당신의 비판에 한국 내 많은 좌파 지식인들도 동의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문제는 약간 복잡하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극우적 포지션에서 아주 경직돼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에 따라 북한에 대한 지지는 반국가 행위로 간주돼 처벌을 받는다. 1차적으로는 북한 지지가 주요 처벌대상이지만, 사실상 공산주의 운동까지 탄압할 수 있는 도구다.

바디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금지할 권리는 없다. 내가 북한에 반대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어떤 의견이라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나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남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남한의 반동적 체제는 북한 체제를 이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북한은 남한에게 오늘날 매우 유용하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결국은 양쪽 사이에 공모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북한체제 역시 남한체제를 이용하는 것이 확실하다. 북한에도 남한의 간첩이라는 이유로 처벌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두 체제는 공범이다. 이 공범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다. 남한의 진보적 운동가들이 왜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북한과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지 매우 잘 이해한다. 왜냐하면 남한 정부가 반동과 억압을 위해 북한체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체제가 변화해 가면서 전통적 의미의 ‘노동계급’, 즉 대규모사업장의 남성 육체노동자 집단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서비스노동자,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노동, 변형된 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불안정노동 문제는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다.

바디우 우선 노동을 분석할 때 세계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전통적 노동자가 줄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중국,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등 (선진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모두) 살펴보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두번째, 서비스 노동자들의 삶도 거의 프롤레타리아트에 가깝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간계급, 즉 중산층으로 불리는 일부도 계속해서 자기들 특권을 경제위기에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단히 많은 수의 대중이 사회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공산주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나의 철학은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새로운 생각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고 말했다. 당신이 추구한 보편적 가치, 새로운 생각은 어떤 것인가?

바디우 내가 추구했던 새로운 가치는 자신의 삶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자리를 위한 물질적 수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주체적 열정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가치란 진정한 행복이기도 하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발견이다. 집단적 싸움, 집단적 행위, 새로운 예술작품 모두 다 마찬가지다. 내 철학은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것은 용기이고 희망이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생각은 세계와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싸우는 것을 도와야 하는 어떤 것이다. 새로운 가치는 내가 ‘진리’라고 이야기하는 것 안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 예술, 사랑, 과학이 그 원천이다.

당신은 “우리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용기”라는 말을 했는데, 냉소주의와 무기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이 말은 각별히 다가온다. 마지막 질문이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바디우 내 생각에 용기라는 것은 이미 확립돼있는 의무, 기존의 의무 밖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삶의 방향을 새롭게 다시 정하는 용기다. 철학은 이 일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해줌으로써.

정리/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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