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서(43) <한국방송>피디
‘더 기타리스트’ 책 낸 정일서 피디
블루스 거장부터 벨러미까지
재미와 감동의 일화 풀어내
“디지털 음악 빠르게 소비될수록
기타에 목숨걸었던 거장 그리워”
블루스 거장부터 벨러미까지
재미와 감동의 일화 풀어내
“디지털 음악 빠르게 소비될수록
기타에 목숨걸었던 거장 그리워”
외국 뮤지션의 내한 공연장에 가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정일서(43) <한국방송> 피디도 그 중 하나다. 전남 순천에서 서울로 전학 온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팝 음악에 푹 빠진 그는 바람대로 라디오 피디가 됐다.
<한국방송 2라디오>의 팝 프로그램 <이소라의 메모리즈> 연출을 맡고 있는 그가 외도를 했다. <더 기타리스트>(어바웃어북 펴냄) 책을 쓴 것이다. 1950년대 이전 블루스 거장부터 2000년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밴드 뮤즈의 매튜 벨라미까지 105명의 기타리스트에 대한 얘기를 풀어냈다. 왼손가락 2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도 재즈 기타의 역사를 연 장고 라인하르트의 얘기, 블루스의 전설 비비 킹이 자신의 기타에 ‘루씰’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일화 등이 재미와 감동을 더한다.
“몇 대의 기타를 갖고는 있지만, 연주 실력은 아마추어 동호인 수준이에요.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만들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고사했어요. 하지만 거듭되는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런 책이 나오면 당장 저부터도 읽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였으니까요.”
기타에 대한 전문지식은 부족했지만, 성실함을 무기 삼아 자료를 찾고 공부해나갔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매일 3~4시간씩 컴퓨터 자판과 씨름했다.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꼬박 1년 동안 원고를 썼고, 이후 6개월 동안 교정을 보며 세부사항을 꼼꼼히 점검했다. <365일 팝 음악사>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에 이어 세번째 내는 책. 이제 요령이 생겼을 법도 하건만 “너무 고생해서 앞으로 당분간은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진이 다 빠진 모양이다.
“그래도 책을 쓰면서 목마름을 해소했어요. 음악이 좋아 라디오 피디가 됐지만,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방송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이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계를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도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가 특히 팝 음악에 천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비단 어릴 때부터 즐겨들은 음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성을 위해서”라고 그는 힘줘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텔레비전에서 충분히 소개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라디오까지 그래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죠. 라디오는 수용자층을 세분화해 더욱 다양한 음악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디오에서 팝 음악이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하는 이유죠.”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제이팝은 일본의 다양한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케이팝은 아이돌 댄스 음악만을 지칭하게 됐죠.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얼마나 오래갈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에요. 너무 비슷한 음악들만 쏟아져나와 라디오 피디인 저조차도 구분 못 할 정도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까요. 케이팝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려면 장르가 훨씬 더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디지털 파일의 등장으로 이제 음악은 실체 없이 잘도 돌아다니고, 한쪽에선 예능의 재료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는 예전 음악 하나, 기타 하나에 목숨을 걸던 거장들의 숨결과 그들이 만들어내던 마법 같은 연주, 아름다운 음악들이 그립다.”
버글스의 노래(‘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처럼 1980년대에 이미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지만, 여전히 라디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정일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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