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수몰예정지역. 곧 사라질 마을. 떠날 사람은 진작 떠났다.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만 남았다. 이 을씨년스러운 마을에 교회가 새로 문을 열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갈 곳’이 되어 주었다. 말벗 없던 사람들에게 목사가 말벗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사실 교회가 노리는 건 주민들이 받은 이주보상금. 주민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며 헌금을 받아서 몰래 다른 통장으로 빼돌리는 수작이다. 감히 교회를 의심하는 주민은 없었다. ‘의심하는 주민’을 의심하는 주민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진실이 자꾸 외로워지는 사이 거짓은 더욱 분주해진다. 사이비의 망령이 한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
여기까지는 <피디(PD)수첩>에서 많이 보던 이야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주 알려주던 스토리. 영화 <사이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훨씬 멀리 나아가고 아주 깊이 들어간다. <피디수첩>이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의 뒤편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대로 알려준 적 없는 스토리의 핵심으로, 관객의 멱살을 휘어잡아 질질 끌고 데려간다.
말하자면 교회는 피리 부는 사나이. 주민들은 피리 소리에 홀려 스스로 강물에 뛰어드는 시궁쥐.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과연 어떤 곡을 연주한 걸까? 대체 어떤 노래를 불어댔길래 고작 피리 하나로 그 많은 쥐들을 홀린 걸까? 어릴 적 동화를 처음 볼 때부터 그게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사이비>를 보고 나서야 내 질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꼬드겼는지를 아는 것보다 ‘왜’ 따라갈 수밖에 없는지 살피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영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법은 사실 간단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곡을 연주하면 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면 된다. 시궁창에 사는 자신들을 일부러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그 피리 소리가 다 가짜이고 사이비라고 말해주어도 주민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사는 게 지옥인 그들에겐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속삭임이 실제로 위로가 될 테니까. 나 혼자 강물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뛰어든다는 것도 조금은 위안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외로움’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나선 이유는. 외로워서 십자가에 의지했고 외로워서 교회를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 다시 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외로워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이비>보다 한 주 앞서 극장에 걸린 <잉투기> 역시 나는 외로움에 대한 영화로 이해했다. 인터넷에서 댓글로 싸우다가 직접 만나 맞짱뜨는 잉여들의 코미디인데, 그게 좀 많이 ‘외로운’ 잉여들의 코미디다. 할 일이 없어서 방황하는 게 아니라 뭐가 진짜 나의 ‘할 일’인지 몰라 허둥댈 뿐이라고 고함치는 청춘들의 드라마인데, 그게 좀 많이 ‘외로운’ 청춘들의 드라마다.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려는 이유는 ‘외로워서’인 것 같아요. ‘나 좀 봐줘’라고 하는 거죠. 이 영화를 통해 그들과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만든 감독이 직접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확실히 <잉투기> 역시 아주 많이 ‘외로운’ 사람들의 영화인 게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 우리 모두 외롭다. 그래서 매일 “나 좀 봐줘” 하고 세상을 향해 갖가지 신호를 보내며 산다. 이승환의 언어를 잠시 빌리면, ‘텅 빈 마음’을 채우려고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 집착할 때도 있다. 그 ‘텅 빈 마음’이 극단의 ‘광기’로 터져 나온 비극을 <사이비>에서, 잠깐의 ‘객기’로 삐져나온 희극을 <잉투기>에서 본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복음’에 매달리는 자들을 <사이비>에서, ‘한 사람을 향한 앙심’으로 ‘복수’에 매달리는 자를 <잉투기>에서 만난다.
‘사이비’와 ‘사이버’(cyber). 지금, 이 외로운 대한민국의 두 얼굴. 우리 시대의 고독과 고립을 먹고 자란 두 개의 나무. 그 가지 끝에 각각 의미심장한 포즈로 걸터앉은 두 편의 영화. <사이비>의 묵직한 돌직구도, <잉투기>의 영리한 변화구도 놓치지 말기를. <잉투기>의 날렵한 잽과 함께 <사이비>의 강력한 어퍼컷도 피하지 말기를. ‘시놉시스’만 갖고 찍어댄 한국 영화가 차고 넘친 올해, 진짜 ‘시나리오’로 제대로 찍은 이 두 편의 영화가 제발, 제발 외롭지 않기를.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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