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④ 소진 :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었나
④ 소진 :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었나
“자살 말리려다 폭행당하고
자해 본 뒤 깊은 트라우마 남아” 어려운 사연 듣고 같이 힘들어하고
바쁜 업무속 몸과 마음 지쳐가 “다급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는 항상 차분해야 해요. 내 의견, 내 감정, 복잡한 내 사정은 지금 당장 잊고 늘 이성적인 척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러는 사이에 저는 없어져버려요.” 지난 10월25일 밤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에서 열린 ‘공개상담실’을 찾은 한 사회복지사의 말에 다른 사회복지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비스직 감정노동자들은 타인의 감정을 위해서 미소짓는다.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의 감정따윈 억누른 채 따뜻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고 배려해야 한다. 공개상담 자리와 여러 복지관, 시설을 찾아 복지사들이 힘겹게 뱉어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하는 김미연(34)씨가 맡은 장애인 중엔 매달 복지관에서 생활비를 받아 며칠만에 다 써버리고 ‘기왕 줄 거 빨리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있었다. 후원금을 일찍 주면 그가 또 술을 마셔버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김씨가 단호히 고개를 젓자 그 장애인은 피흘리는 자신의 손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손가락을 칼로 파내 혈서를 쓰는 중이란다. 그때부터 수많은 혈서를 받았다. 어느날은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복지사의 할 일이거늘 당신은 어째서 그 일을 외면하냐’며 꾸짖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세상을 한탄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 장애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갈 때까지 피로 쓴 편지는 6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새 김씨는 몸무게 10㎏이 줄었다. 김씨는 “그때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바닥을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복지사들처럼 김미연씨도 대학생때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현장에 빨리 가고 싶어”조바심 냈다. 그러나 복지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복지 대상자들이 거칠어서만은 아니다. 한달에 적어도 50명 인생의 무게를 복지사가 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상에 의해 고통받는 내담자를 상담함으로써 상담자의 몸과 마음이 힘들게 되는 것을 공감 피로라고 한다. 많은 복지사들은 공감 피로와 내담자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일하던 정현숙(32·가명)씨에겐 비만 오면 전화해서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환자가 있었다. “지금 이 전화 끊으면 유서에다 네가 제대로 상담 안했다고 써놓고 죽어버리겠다는 거에요. 정말 자살 시도를 한 일이 있었던 사람이 그러니 더 무서웠어요.” 정씨는 결국 1년 만에 센터를 그만뒀다. 자살로 마지막 의사 표시를 하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앞에서 사회 복지사들은 할 말을 찾기 어렵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일하는 다른 복지사는 “1년 새 우울증 환자의 자살, 다른 환자의 자연사, 정신분열증 환자의 자살 등 4건의 자살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한 자살 구조 센터 직원은 “자살을 말리려다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내담자의 자살을 경험하기도 하며 자해행위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트라우마가 깊다. 하지만 1사람당 120~200건을 담당하는 현실에서 나를 추스리기는 커녕 깊이 있는 상담도 어렵다”고 했다.
자신을 걸고 때론 다른 사람의 인생과 죽음까지 돌봐야하는 일. 다른 감정노동자와 달리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윤리적 가책까지 짊어지고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사회복지사들의 평균 감정노동 수준은 5점 만점에 3.9점이며, 사회복지공무원은 4.2점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여름 어느 저녁, 한 노숙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한 장애인이 헉헉거리다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그곳서 복지사로 일하는 박지훈(가명·33)씨는 119구조대를 부르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숨 불어넣을 땐 살아라, 제발 살아라, 기도하고…. 심장을 누를 때는 갈비뼈가 부러지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복지사가 응급처치를 하다가 다른 곳을 다치면 고소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다. 구조대가 와서 그를 떼어놓을 때까지 25분 동안 매달렸다. 병원으로 옮긴 장애인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자책과 분노가 뒤범벅된 그의 마음은 지금도 마지막 25분으로 자꾸 돌아간다. “좀더 빨리 뛰어갈 수는 없었을까.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아아, 살릴 수는 없었을까요.”
사회복지사라면 늘 취약계층 편에 서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정서적 소진에 대한 대책이 없는 한 직업윤리와 현실 사이 딜레마는 커질 수밖에 없다. 마인드프리즘 정혜신 대표는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계속 자신의 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내담자를 상대해야 한다. 개인이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길을 찾기엔 현실적으로 굉장히 버겁다. 복지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기혼란을 감당하기 어렵다. 누구라도 오래 배겨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자해 본 뒤 깊은 트라우마 남아” 어려운 사연 듣고 같이 힘들어하고
바쁜 업무속 몸과 마음 지쳐가 “다급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는 항상 차분해야 해요. 내 의견, 내 감정, 복잡한 내 사정은 지금 당장 잊고 늘 이성적인 척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러는 사이에 저는 없어져버려요.” 지난 10월25일 밤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에서 열린 ‘공개상담실’을 찾은 한 사회복지사의 말에 다른 사회복지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비스직 감정노동자들은 타인의 감정을 위해서 미소짓는다.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의 감정따윈 억누른 채 따뜻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고 배려해야 한다. 공개상담 자리와 여러 복지관, 시설을 찾아 복지사들이 힘겹게 뱉어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하는 김미연(34)씨가 맡은 장애인 중엔 매달 복지관에서 생활비를 받아 며칠만에 다 써버리고 ‘기왕 줄 거 빨리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있었다. 후원금을 일찍 주면 그가 또 술을 마셔버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김씨가 단호히 고개를 젓자 그 장애인은 피흘리는 자신의 손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손가락을 칼로 파내 혈서를 쓰는 중이란다. 그때부터 수많은 혈서를 받았다. 어느날은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복지사의 할 일이거늘 당신은 어째서 그 일을 외면하냐’며 꾸짖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세상을 한탄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 장애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갈 때까지 피로 쓴 편지는 6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새 김씨는 몸무게 10㎏이 줄었다. 김씨는 “그때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바닥을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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