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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추운 겨울, 만두가 있어 다행이야

등록 2014-01-17 19:39수정 2014-01-18 11:14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2주에 한번 일용할 양식이 택배로 온다. 먹을거리 공동체 언니네텃밭 소비자 회원인데, 나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공동체에 소속돼 있다. 도착하는 먹거리 꾸러미를 보면 그곳은 서울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더 또렷한 것 같다. 텃밭에서 땅에 묻어놨던 고구마나 무, 묵은 나물 같은 것들을 보내올 때 겨울이 되었구나 싶고, 푸릇한 채소가 도착하면 봄이 오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이번 주 꾸러미에는 만두가 있었다. 함께 온 쪽지를 보니 날씨가 추워져 만두를 빚었다며 그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생산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종일 만두를 만드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두부를 만드는 데 한나절, 그리고 나머지 시간 동안 김치 썰고, 숙주나물과 당면을 삶고, 무채를 써는 데도 한참 걸렸단다. 그것들을 모두 잘게 다져서 자루에 담아 맷돌로 눌러서 물기를 빼고 파, 마늘, 들기름을 넣고 버무리니 어느새 밤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게 7명의 생산자가 100여명의 소비자에게 보낼 만두를 빚기까지 사흘 밤낮이 걸렸다고 한다. 날씨가 어찌나 매서운지 빚은 만두를 밖에 내놓기만 해도 만두가 얼 정도로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혹독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호들갑보다는 “겨울은 이래야 제맛”이라고 쓴 문장이 덤덤하다. 매일 춥다고 야단을 떨며 집 안 온도를 봄같이 훈훈하게 하려고 드는 나는 겨울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반성도 들었다.

언니들이 모여 앉아 만두를 빚었을 낮과 밤을 생각하며 만두가 담긴 봉투를 풀었다. 편지를 읽을 때만 해도 조금 애잔한 마음이었는데, 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제각각 못생긴 만두가 세상에 또 있을까. 어떤 것은 반달 모양, 어떤 것은 둥근 모양이다. 반달로 꾹꾹 만두 입을 오므리다 지겨워졌을 때쯤 양쪽 끝을 오므려 둥글게 만들어 쟁반에 얹어 놓았을 얼굴 모를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크기도 제멋대로라 삶아서 접시에 담아 놓으니 더 못생겨 보인다. 남쪽에서 태어난 나는 만두 빚은 경험이 없는데, 그래서 늘 공장에서 찍어낸 가지런한 만두만 먹어왔던 터라 오히려 이 못생긴 만두들이 더 귀하고 각별하다.

숟가락으로 만두 배를 가르니 뜨거운 김이 폴폴 솟는다. 지난해 말 봤던 <한국인의 밥상> ‘뜨거운 겨울을 품다-만두’ 편에서 진행자 최불암은 광장시장 노점에 걸터앉아 한개 500원짜리 만두를 집어 먹으면서 “뜨거운 김이 유혹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군 아낙들이 만드는 귀리만두, 메밀만두를 찾아 떠나며 여정이 시작됐는데, 피를 만든 재료는 다르지만 들어가는 속을 보니 얼마 전 내가 받은 만두와 비슷하다. 무, 백김치, 두부 등 소박한 재료들을 잘게 썰어 들기름에 버무리니 만두소가 뚝딱이다. 이날은 특별히 제작진이 깊은 산골에 찾아왔다고 닭을 한마리 잡았다. 할머니 한분이 닭장에서 닭을 한마리 품고 나왔다. “가만히 좀 있어 봐라”고 하더니 이내 바뀐 화면에서 털을 홀랑 벗겨 나올 때는 좀 잔혹한가 싶었는데, 닭고기를 다져 넣은 만두를 닭육수에 폭폭 삶아내는 것을 보니 어느새 군침이 넘어간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할머니가 “아저씨들(제작진) 먹다가 노인들 다 도망가도 모를 거야. 우리가 사라져도 모를 거예요” 하는 말에 티브이 앞에 앉은 이도, 할머니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선 이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명태포를 떠서 만두피로 쓰는 강릉의 어만두, 경기도 이천 어느 시골집에서 내어 온 오방색의 볏섬만두는 맛도 모양도 아름다워 보였다. 한편 이북에서 내려와 서울에서 만두집을 하는 어느 할머니가 빚은 평안도식 만두는 피가 두껍고 모양이 크고 투박하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듬뿍 다져 넣고 맛이 더 좋으라고 사골 육수에 만두를 삶아내는 모양을 보니 침이 또 넘어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만두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겨울만큼 모진 계절도 없겠지만, 한편으론 이 겨울이 길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날카로운 추위에 유독 잘 어울리는 이런 음식이 있으므로.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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