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장 1층 살롱. 신사장 제공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12) 서울 신사동 ‘신사장’
(12) 서울 신사동 ‘신사장’
밥집, 고깃집, 술집이 즐비한 서울 신사동 먹자골목. 신사역에서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어지는 이 거리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미세하게 균열을 내는 변화가 지난 3월 일어났다. 언뜻 보면 카페가 새로 문 열었구나 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시멘트로 외관을 다듬은 1층 카페를 제외하면 40년 동안 건물을 지탱해온 노란 타일벽이 여전하다. 40년 전에도 신사장, 지금도 신사장이다. 하지만 그때의 신사장과 지금의 신사장은 다른 곳이다. 고단한 여행자의 몸을 누이던 허름한 여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강남 한복판 허름한 여관 재단장
살롱, 전시실, 스튜디오를 한곳에
음식, 토론 등 다양한 프로젝트 시도
“취향 같은 사람들의 사랑방 됐으면”
“신사장은 공간(space)이 아니라 장소(place)를 지향합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리어’의 송주환 디렉터가 설명한다. 공간과 장소는 어떻게 다른가. “장소는 공간에 철학과 시스템이 더해진 곳이에요. 대관과 브랜드 행사가 난무하는 복합문화공간이 아닌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완성된 하나의 철학과 사람들로 이뤄진 장소이고자 합니다.” 최근 오래된 건물이나 폐쇄된 창고 등이 연달아 패셔너블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흥미로운 변화이지만 스치고 지나갈 유행처럼 포장만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의 유행은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지고 문화는 자본에 밀려나는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신사장은 출발했다. 리어팀에게 신사장은 하나의 공간이자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지다.
4층 건물인 신사장은 1층 살롱, 2, 3층 스테이지, 4층 스튜디오, 옥상으로 나뉘어 있다. 4층 스튜디오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 스테이지는 콘텐츠를 보여주고 공유하는 곳, 살롱은 소비하는 곳 콘셉트다. 골조와 계단, 창문 등 대부분 여관의 틀을 살리면서 스테이지는 2, 3층을 터서 복층으로 운영한다. 중심 장소인 이곳은 콘텐츠의 전시뿐 아니라 공연장이나 콘퍼런스룸으로도 활용한다.
지난 3월 중순 열었던 개관 전시는 ‘제주에서 식탁까지’. 제주 무릉리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농산물 업체 ‘무릉외갓집’과 협업해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주산 농산물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단순한 전시가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눈에 띄지 않던 브랜드 로고를 새로 디자인하고 젊은 소비자들을 끌 만한 홍보 동영상을 제작했으며 제품 포장까지 꼼꼼히 리뉴얼했다. 그 결과물과 함께 생산자인 농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노영희씨 같은 스타급 셰프들이 지원사격에 나서 이 식재료들로 조리한 음식들까지 선보였다. 1층 살롱에서는 그때 개발한 귤주스와 무릉외갓집 제품들도 판매중이다. 보름간 서울에서 열렸던 전시는 제주로 옮겨 상설전시한다. 이것만도 복합문화공간 하면 떠올리는 흔한 테마에 비하면 파격적인데, 올해 하반기쯤 선보일 테마는 무려 ‘정치’다. 음식, 그리고 정치라니, 생뚱맞아 보인다.
“우리의 관심사는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낙후된 것들이에요. 음식도 정치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들인데 익숙하거나 다른 이유로 진심어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죠. 이런 주제들을 대중의 관심을 끌수 있도록 기획하는 게 저희 일이에요.” 송주환씨와 함께 상주 디렉터를 하는 정은아씨의 설명이다. 리어팀은 신사장이 정식 오픈하기 전인 지난해 말부터 윤여준, 고성국씨의 호스트로 전·현직 정치인과 참모, 교수 6명을 모아 스테이지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3번의 공개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결과물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초상사진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흔한 정치 토론회가 아니라 주제에 관한 영상과 토크가 이어지며 연사와 관객이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분위기는 세련되게 연출하고 내용은 정공법을 택해 정치냉소자들의 시선을 모으겠다는 취지다.
이 모든 작업들은 느슨한 협업의 형태로 이뤄진다. 네이버, 현대카드 등에서 기획자로 일한 송씨와 이노디자인 출신의 정씨 두 사람이 구심점 구실을 하고 사진가, 디자이너, 음악가, 웹 개발자, 마케터 등이 객원멤버 자격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정치인 초상화 작업을 한 사진작가 김민규씨는 패션 사진이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다. 이씨는 “같은 철학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워 합류하게 됐다” 고 밝혔다. 일렉트로닉 팝 듀오 캐스커는 살롱에 트는 노래 선곡을 비롯해 프로젝트들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현재는 진행중인 전시나 행사가 없지만 1층 살롱만 들러봐도 소소한 볼거리와 먹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 무릉외갓집처럼 대형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인 먹거리 업체들이 ‘협업자’의 자격으로 유제품과 빵, 커피콩, 양념류 등을 전시 판매한다. “불특정 다수가 단순히 음료수를 사기 위해 오가는 카페이기보다는 같은 관심사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두 디렉터가 이곳을 ‘살롱’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강남 한복판 허름한 여관 재단장
살롱, 전시실, 스튜디오를 한곳에
음식, 토론 등 다양한 프로젝트 시도
“취향 같은 사람들의 사랑방 됐으면”
“신사장은 공간(space)이 아니라 장소(place)를 지향합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리어’의 송주환 디렉터가 설명한다. 공간과 장소는 어떻게 다른가. “장소는 공간에 철학과 시스템이 더해진 곳이에요. 대관과 브랜드 행사가 난무하는 복합문화공간이 아닌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완성된 하나의 철학과 사람들로 이뤄진 장소이고자 합니다.” 최근 오래된 건물이나 폐쇄된 창고 등이 연달아 패셔너블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흥미로운 변화이지만 스치고 지나갈 유행처럼 포장만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의 유행은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지고 문화는 자본에 밀려나는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신사장은 출발했다. 리어팀에게 신사장은 하나의 공간이자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지다.
신사장 2, 3층 스테이지. 지난해 말 전·현직 정치인과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리더십에 관한 콘퍼런스를 진행했다. 신사장 제공
신사동 먹자골목에 문 연 신사장 전경. 신사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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