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인 춘천 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한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 춘천’에선 토요일마다 타악기를 두드리며 노는 시간이 마련된다.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20) 춘천 ‘KT&G 상상마당’
김수근이 설계한 어린이회관
공연·창작·배움의 터로 재탄생
산과 물에 둘러싸인 천혜 입지
거장 건축가 혼 살아숨쉬는 듯
(20) 춘천 ‘KT&G 상상마당’
김수근이 설계한 어린이회관
공연·창작·배움의 터로 재탄생
산과 물에 둘러싸인 천혜 입지
거장 건축가 혼 살아숨쉬는 듯
1980년 춘천 의암호 호숫가에 붉은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하늘에서 보면 두 날개를 펼친 나비 모양을 한 춘천 어린이회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수근(1931~1986)의 작품으로, 그해 5월 춘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 개막식에 맞춰 개관했다.
이곳은 춘천 어린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이자 단골 소풍 장소가 됐다. 건물 안 소극장에선 인형극이 펼쳐졌고, 건물 바깥 야외음악당에선 동요가 울려퍼졌다. 호수가 보이는 잔디밭에서 아이들은 김밥 도시락을 먹고 술래잡기와 보물찾기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이회관을 찾는 이들은 점차 줄어갔다. 다른 놀거리가 많아진 아이들은 예전만큼 이곳을 자주 찾지 않았다. 그동안 어린이회관 운영권은 강원도에서 춘천시로 넘어갔고, 위탁 운영자 역시 강원일보, 바른손팬시, ㈜E브릿지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바뀌었다. 어린이회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아이디어와 시행착오가 되플이됐다.
2012년 춘천시와 케이티앤지(KT&G)가 이곳에 ‘상상마당 춘천’을 건립하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2007년 서울 홍대앞에 세운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홍대’, 2011년 충남 논산의 폐교를 사들여 만든 ‘상상마당 논산’에 이은 세번째 상상마당 프로젝트다. 2013년 10월 어린이회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올해 4월 개관했다.
지난 5일 찾아간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춘천’은 어린이회관의 공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크게는 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한 ‘아트센터’와 강원도 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한 ‘스테이’로 나뉜다. 김수근 건축가 특유의 붉은 벽돌이 감싸고 있는 아트센터는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기 좋도록” 김수근 건축가는 곳곳에 숨을 만한 자투리 공간을 숨겨놓았다.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별다른 조명이 필요 없게 만들었다.
계단 대신 긴 경사로를 만들어 1층과 2층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도 특징이다. “아이들 세상에서만은 층을 나누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한쪽 날개 건물에서 다른쪽 날개 건물로 가려면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보니 탁 트인 잔디밭과 의암호, 푸른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아늑하게 숨어 있다 나오면, 햇빛이 옆으로 비쳐 들어오다가 지붕에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 오면 탁 트여 구름다리 같은 데서 호수와 산이 보이는 공간상의 해프닝을 테마로 삼았어요. 어린이는 바로 노는 사람이란 개념이고, 그런 어린이의 본질을 담을 문화적 공간으로 이 건축물의 개념을 살렸지요.”(김수근 인터뷰 중에서)
상상마당 춘천의 김경회 공연사업팀 과장은 “김수근 건축가의 이런 개념을 존중하면서 기존 공간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아트센터는 또다시 갤러리, 카페, 공연장, 디자인숍 등 일반인들이 누리는 공간, 음악 스튜디오, 사진 스튜디오 등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공간, 강의실, 교육실 등 배움의 공간으로 나뉜다.
인형극 극장은 ‘사운드홀’이라는 이름의 음악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겟 투어 춘천’ 공연이 열렸다. 공연과 생태여행을 결합한 투어형 페스티벌에 참가한 관객들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로큰롤라디오, 청년들, 모던다락방 등 인디 밴드들의 뜨거운 무대를 즐겼다. 나중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져 누가 공연자이고 누가 관객인지 모를 흥겨운 난장이 펼쳐졌다. 사운드홀에선 매달 한 차례씩 이런 기획공연이 열린다.
잔디밭에 자리한 오픈 스테이지나 아트센터 로비에서 매주 한두 차례씩 무료 공연도 열린다. 6월부터 올해 말까지 ‘버스커스 위스퍼’라는 제목의 비정기 상설공연이 열리는데, 이날은 로비에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의 배영경이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야외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상상두드림마당’이 펼쳐졌다. 누구나 참여해 전문가와 함께 각종 타악기를 두드리며 노는 자리다.
갤러리에서는 ‘돌아온 영웅’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철인 28호, 마징가 제트, 로보트 태권브이 등 추억의 로봇과 관련한 소품이 전시돼 아이들과 어른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날 밤 2000석 규모의 노천극장에선 <로보트 태권브이> 등 추억의 만화영화가 상영됐다. 음악 스튜디오는 전문가를 위한 공간이다. 앨범 녹음은 물론 믹싱·마스터링 작업까지 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춰놓았다. 얼마 전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새 앨범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얼리셔 키스, 블랙아이드피스 등 세계 정상급 가수들과 작업한 바 있는 영국의 녹음 엔지니어 에이드리언 홀이 참여했는데, 그는 “산과 물이 보이는 곳에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는 영국에서도 보기 드물다”며 흡족해했다고 한다.
아트센터 부근에 자리잡은 스테이는 호텔형 숙소다. 객실은 물론 음악 연습실, 공연예술 연습실, 세미나실 등도 갖추고 있다. 음악인이나 다른 분야 예술가들이 이곳에 묵으며 작업을 할 수 있다. 일반인들도 호텔처럼 묵을 수 있다. 김경회 과장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오면 자연의 감성에 둘러싸여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며 “문화공헌 차원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비용도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공간에서 일반인과 예술가 모두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어도 이곳은 여전히 김수근 건축가가 원했던, 바로 그 ‘노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은 하늘에서 바라본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춘천’. 왼쪽이 ‘아트센터’, 오른쪽이 ‘스테이’다. 사진 KT&G 상상마당 춘천 제공
음악 스튜디오 내부 모습.
상상마당 춘천에서 바라본 저녁놀.
아트센터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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