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학살의 슬픔과 충격을 형상화한 김석출의 <1980.5.27>. 광주비엔날레 제공
‘달콤한 이슬-1980 그 후’ 전시회
부릅뜬 검은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는 고통스러운 듯 이를 악물고 경악한다. 바로 옆엔 떡 벌린 입에 노란 혀와 날카로운 치아가 강조된 붉은 색조의 울부짖는 듯한 이 남자의 옆모습이 걸려 있다. 한국 전통의 오방색을 주조로 한 강력한 원색을 사용해온 오일의 <광주 A>, <광주 B>다. 1980년 5월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한 광주의 충격과 분노를 거칠고 단순한 윤곽선과 붉은 색조를 이용해 표현주의적 방식으로 처리했다.
벌거벗은 시체들이 들판에 널브러져 있다.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몸들은 푸르뎅뎅하다. 온몸이 꼬여 있다. 한쪽에선 헐벗은 여인들이 얼굴을 가린 채 흐느낀다.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연작 가운데 <광주의 어머니>다. 역시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살육 현장을 고발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원지였던 광주광역시 한복판에서 1980년 광주가 예술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기억되었는지 살필 수 있는 전시가 시작됐다. 8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전이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맞아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광주를 비롯한 세계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자는 의미로 비명횡사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망자를 위로하는 불교적 그림인 ‘감로도’에서 전시 명칭 ‘달콤한 이슬’을 따왔다.
직접 체험·형상화한 작가 작품
학살고발 일본 도미야마 판화 등
국가폭력 소재 14개국 작가 참여
광주의 아픔 단순 재조명 넘어 걸개그림 ‘세월 오월’ 전시 불발
책임 큐레이터 반발 사퇴 오점 이번 전시에는 진정호(<학살>, <민중의 힘>), 김석출(<광주> <1980.5.27>), 고삼권(<슬픈 광주>), 임남진(<오월 장막도-님을 위한 행진곡> <오월 감로행-떠도는 넋들을 위하여)> 등 80년 5월 광주를 직접 체험하거나, 외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작품으로 형상화한 재일 작가, 일본인 작가 등의 다양한 작품이 선보인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고발하는 판화를 제작해온 일본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시리즈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눈길을 끈다. 이 판화 연작은 광주학살 소식을 접한 작가가 전세계에 이를 고발·호소하려고 제작한 것으로 죽은 아들을 부여안고 울부짖는 아비와 무릎을 꿇고 허공으로 손을 뻗어 온몸으로 호소하는 어미의 모습, 죽임 당한 어미의 배 밖으로 꺼내진 태아, 총칼로 무장한 군과 경찰 등 80년 광주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이면서도 절제된 형식으로 부각시킨다. 이 판화 연작은 슬라이드 영화 <자유 광주>로 제작돼 미국, 유럽 등지에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역할을 한 바 있다.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는 그러나 광주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폭력 치유의 장이 되고 20세기 민중미술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는 전시 의도에 따라 인도, 일본, 중국, 독일, 러시아, 미국, 아프가니스탄 등 14개국 작가들의 국가폭력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고, 나치 정권에 저항 운동을 한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의 판화가 대표적이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담은 그의 작품 <폭동>, <배고픔>, <희생자들>, <살아남은 자들> 등 49점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또 <광인일기>, <아Q정전> 등을 쓴 중국 문학가 루쉰(1881~1936)이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벌인 항일 목판화 운동의 대표작품들, 미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로 평가받는 벤 샨(1898~1969)의 작품도 전시된다. 일본 왕을 발가벗기고 분해조립하는 방식으로 일왕 체제를 비판한 오우라 노부유키의 14점의 석판화 및 영상 연작 ‘홀딩 퍼스펙티브’(Holding Perspective), 미얀마 군부의 민주화운동 탄압을 다룬 아마르 칸와르의 19채널 비디오 설치물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프로젝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혔던 홍성담 등 광주지역 작가들이 그린 초대형 걸개그림 <세월 오월>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 논란 끝에 전시되지 못하고, 전시를 총괄하는 책임큐레이터가 이에 반발해 사퇴하는 등 파행을 겪으면서 전시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 애초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걸개그림을 “광주발 미술운동의 꽃과 같은 상징적 존재”로 규정하며 걸개그림을 의뢰하고, 8일 개막식에서 광주시립미술관 외벽에 내걸기로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 내용 등을 이유로 광주시에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홍성담 등은 박 대통령의 모습을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는 닭으로 대체하는 등 작품을 일부 수정했으나,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적으로 ‘광주정신’을 승화해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는데, 너무 직설적이고 특별프로젝트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전시를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한 광주지역 작가들은 시립미술관 계단에 걸개그림을 펼쳐놓고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반발했다. 책임큐레이터인 윤범모 교수(가천대)도 10일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문제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광주정신을 살리는 길”이라며 사퇴했다. 일각에선 걸개그림 전시 유보를 이유로 참여 작가들이 작품 전시를 거부할 경우 ‘광주정신’을 강조한 애초 전시 취지가 빛바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광주/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 논란으로 전시가 유보된 걸개그림 <세월 오월>을 펼쳐놓고 참여 작가와 시민 등이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광주비엔날레 제공
학살고발 일본 도미야마 판화 등
국가폭력 소재 14개국 작가 참여
광주의 아픔 단순 재조명 넘어 걸개그림 ‘세월 오월’ 전시 불발
책임 큐레이터 반발 사퇴 오점 이번 전시에는 진정호(<학살>, <민중의 힘>), 김석출(<광주> <1980.5.27>), 고삼권(<슬픈 광주>), 임남진(<오월 장막도-님을 위한 행진곡> <오월 감로행-떠도는 넋들을 위하여)> 등 80년 5월 광주를 직접 체험하거나, 외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작품으로 형상화한 재일 작가, 일본인 작가 등의 다양한 작품이 선보인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고발하는 판화를 제작해온 일본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시리즈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눈길을 끈다. 이 판화 연작은 광주학살 소식을 접한 작가가 전세계에 이를 고발·호소하려고 제작한 것으로 죽은 아들을 부여안고 울부짖는 아비와 무릎을 꿇고 허공으로 손을 뻗어 온몸으로 호소하는 어미의 모습, 죽임 당한 어미의 배 밖으로 꺼내진 태아, 총칼로 무장한 군과 경찰 등 80년 광주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이면서도 절제된 형식으로 부각시킨다. 이 판화 연작은 슬라이드 영화 <자유 광주>로 제작돼 미국, 유럽 등지에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역할을 한 바 있다.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는 그러나 광주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폭력 치유의 장이 되고 20세기 민중미술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는 전시 의도에 따라 인도, 일본, 중국, 독일, 러시아, 미국, 아프가니스탄 등 14개국 작가들의 국가폭력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고, 나치 정권에 저항 운동을 한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의 판화가 대표적이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담은 그의 작품 <폭동>, <배고픔>, <희생자들>, <살아남은 자들> 등 49점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또 <광인일기>, <아Q정전> 등을 쓴 중국 문학가 루쉰(1881~1936)이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벌인 항일 목판화 운동의 대표작품들, 미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로 평가받는 벤 샨(1898~1969)의 작품도 전시된다. 일본 왕을 발가벗기고 분해조립하는 방식으로 일왕 체제를 비판한 오우라 노부유키의 14점의 석판화 및 영상 연작 ‘홀딩 퍼스펙티브’(Holding Perspective), 미얀마 군부의 민주화운동 탄압을 다룬 아마르 칸와르의 19채널 비디오 설치물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프로젝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혔던 홍성담 등 광주지역 작가들이 그린 초대형 걸개그림 <세월 오월>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 논란 끝에 전시되지 못하고, 전시를 총괄하는 책임큐레이터가 이에 반발해 사퇴하는 등 파행을 겪으면서 전시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 애초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걸개그림을 “광주발 미술운동의 꽃과 같은 상징적 존재”로 규정하며 걸개그림을 의뢰하고, 8일 개막식에서 광주시립미술관 외벽에 내걸기로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 내용 등을 이유로 광주시에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홍성담 등은 박 대통령의 모습을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는 닭으로 대체하는 등 작품을 일부 수정했으나,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적으로 ‘광주정신’을 승화해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는데, 너무 직설적이고 특별프로젝트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전시를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한 광주지역 작가들은 시립미술관 계단에 걸개그림을 펼쳐놓고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반발했다. 책임큐레이터인 윤범모 교수(가천대)도 10일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문제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광주정신을 살리는 길”이라며 사퇴했다. 일각에선 걸개그림 전시 유보를 이유로 참여 작가들이 작품 전시를 거부할 경우 ‘광주정신’을 강조한 애초 전시 취지가 빛바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광주/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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