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독일 합작 드라마 <고요한 바다>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프랑스·독일 합작 드라마 <고요한 바다>
프랑스·독일 합작 드라마 <고요한 바다>
1941년,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공산당 소속 레지스탕스 대원들에 의해 독일군 장교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히틀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50명의 프랑스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나치 반대 정치범들이 그 희생양으로 선택된다. 이때 처형당한 인물 중에 기 모케라는 소년이 있었다. 공산주의 홍보물을 배포하다 수용소로 끌려왔던 그는 사망 당시 17살에 불과했다. 생전에 남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편지로도 유명한 기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해 만든 단편 드라마 <고요한 바다>는 바로 이 소재를 극화했다. 기 모케가 중심인물이지만 그의 행적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웅서사가 아니라, 처형일 전까지 기가 있었던 수용소의 며칠간의 풍경을 담아내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영화 <양철북>으로 유명한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는 기 모케를 비롯한 희생자들의 편지와 당시 독일군 장교였던 작가 에른스트 윙거의 회고록 등 관련 자료들을 조합하여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극은 제목처럼 고요한 바다의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아름답고 잔잔한 풍경의 절반은 철조망에 가려 있다. 가까이서 함성이 들려온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중이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월등한 실력으로 앞서나간다. 기 모케(레오폴 살맹)였다. 철조망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청춘들과 곳곳에 배치된 총 든 군인들이 대비를 이루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다 구속됐고, 그중 일부는 며칠 뒤면 적의 총 앞에서 죽기 직전까지도 자유를 외치게 될 운명이었다.
<고요한 바다>는 이 비극을 단순히 적과 희생자의 구도로 설명하지 않는다. 처형 명령을 내린 자는 히틀러지만 죽어야 할 인물들을 선정해야 하는 것은 프랑스 지휘관들이다. 그들은 처형 대상 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선량한 나머지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을 우선적으로 명단에 올린다. 결국은 정치 이념에 따라 자국민들을 구분했고 그 결과 어린 소년까지 총살당하게 된 것이다. 조국과 신념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은 그렇게 적과 무능한 자국 정부로부터 동시에 죽임당한다.
드라마 결말부는 하나하나 호명되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음성으로 채워진다. 처형의 순간,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들 위로 실제 희생자들의 편지 속 문장이 흐르는 장면은 가슴을 짓누른다. 공포에 휘청이던 기가 동료의 격려를 받고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처형대로 가는 장면은 특히 그렇다. “억압받은 민중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상은 바야흐로 밑바닥부터 뒤바뀌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이 전부가 되리라”는 노랫말은 오늘을 생각하면 더 슬프게 들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세상은 아직 뒤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그럼에도 힘써 할 일이 있다면 그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김선영 서정민 이승한의 잉여싸롱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